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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간단한 대답 한가지
02/13/20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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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 교회의 세상, 정령 꿈이런가?                       

- 우문에 붙이는 현답 하나 -


 [오늘의 말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사도행전 2장44절 ~ 47 절 -



"만일 오늘 당장 당회가

초대교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과

나누어 쓴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이 될 말입니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이 성도들 간에 실행이 되겠습니까?"


얼핏 듣는 순간부터

분노가 치미는 질문이다.

잘 보아 준다해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발상임을 떨칠 수없다.


당회는 무엇이고 내린다는 결정은 무엇인가?

초대교회의 어디에 당회가 있고,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사람들이

누가 시켜서 재산과 소유를 나누고,

누가  종용하여 하루에 두번씩 예배를 드리며,

누가 강제로 하나님을 찬미하도록 결정했는가?


(교회가 관료적 구조의 [기관]으로 간주되는

무의식적인 표현은 평소에도 수도없이 들린다.

단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벗어나므로,

차제에 다루도록 하자.)


간단히 말할 수있다.

[그럼요!] Why not?

[그렇고 말고!]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  아니 마땅히 그리 되어야지요!]

그래도 굳이 저와같은 질문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일설교에 거론을 해야겠다면,

이와같이 대답은 간단하다는 얘기다.


"당회를 구성하는 담임목사나

당회원인 장로들이 자발적으로 그리한다면,

얼마든지 성도들 중에도 따라 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좀 더 조소적인 표현을 쓴다면,

"자기들이 먼저 해 보지!"

"한번 해 보기나 했나?"


담임목사나 여러 시무 장로들 중

어느 한 사람만이라도 성경에 나오는 데로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또 다른 장로들중 공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며,

나아가서는 권사들, 안수집사들 그리고 성도들 간에

본받을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옆에 앉은 힘없는 그 분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웬만큼 출석인원이 되는 교회들의 시무장로들 중에는

꽤 넉넉한 능력을 갖은 이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는 성도들 간에,

"장로가 되려면 재력도 좀 있어야지"하는 소리를, 적잖이 들어왔다. 


[주일말씀]에 까탈을 부리자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갖은 소유를, 아무리 넉넉하다 하여도,

아무런 조건없이 나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초대 교회의 그들이 사도행전에서 할 수있었던,

그 거룩한 행위들의 근거를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사랑이다.

주님이 살아생전에 주신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는 그 말씀을

그들은 분명히 기억하고,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님이 생전에 몸소 보이신 사랑의 행위들을

제자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또한 그들 자신의 의지와 결정이 아니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해 저마다의 거룩한 공감대가 되어

삶에서 자연스레 나타나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할 수없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성경을 따라) 하기 싫은 소중하고 거룩한 가치가

세상이 보는 기준에 따라,

마치 [그렇게 할 수없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하는

그 문맥이 싫다.   몹시 속상하다.

분명히 [영적 패배주의]는 아닌가?

오늘날의 교회가 이것 밖에 안되나?

이 시대의 교회의 현주소가 여기까지 밖에 되지 않는가?


그냥 잊어 버리려고 해도 떠오르는 생각이 줄을 잊는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겟는가?

주님이 몸소 행하시고 당부하던 여러 사랑의 메세지들,

제자들이 말씀 안에서 행하던 성령충만한,

소위[일러 가르치신 바]를 보고,

그 옛날엔, 아무리 사탄이라도 비집을 틈이라도 있었을까?

아담을 죄의 나락으로 빠지게 한 [옛 뱀]은,

이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당시로서는 더욱 하기 어려운 헌신을,

거침없이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재화와 재산의 범주가 오늘날 처럼 다양하지 않았던,

그 시대의 성도들에게,

소위 [나누어 주어야 할 것]들은 아주 제한 되어 있었고,

게 중에는 자신의 기본 생존에 관여하는,

먹을 것, 입을 것, 또한 주거 생활의 필수항목들을,

나누고 있었을 가능성을 짐작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최소한 오늘날처럼 다양한 재산의 형태와,

소유할 수있는 잉여가치의 다양한 종류를 선택할 입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눌 것이 너무도 많은 현대의 세상에선,

정말 나눔의 가치와 실천은 성경 속에만 갇혀 있는 것일까? 

한 낱, [누구도 마땅히 하지 않는 비현실적 작태]로 전락하고 마는가?


아쉽다.

자신의 갖은 것 전부라도

꼭 필요한 이웃에게 거침없이 나눌 수있는

단 한사람, 바보같은 목사는 없을까?

단 한 명의 어리숙한 장로는 있어서는 안되는 것인가?

단 하나의 곰처럼 미련한 믿음의 동료는 정말 없을까?

주여!


"우리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많이 듣는 이야기인가?

"정말 그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듣는 이들도 또한 얼마나 공감하며 그리던 [새 하늘과 새 땅] 이야기이던가?

이제는 냉철하게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과연 그런 세상, 그런 교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초대교회는 단지 꿈일 뿐인가?

영적으로 깨어있고,

사랑이 넘치며,

성령이 충만하다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보여준 행동은 거저 당연할 뿐이다.

오늘날이라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는 하지 못합니다.] 

부끄럽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시인할 것은,

단 한 가지, 이 말 뿐이다.

꼭 그 당시 믿음의 선배들이 했던 데로

똑같이 해야한다고 생떼를 부리자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랑, 그 충만했던 성령의 힘,

그리고 침잠하는 우리의 영을 일깨워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날마다,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을

전전긍긍하고 안타까워하며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러한 교회, 그러한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마땅히 사랑의 열병을 알아야할 것이다.


그립다.

내 모든 것 함께 나누고, 

하루에 몇번이라도 떡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주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리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그런 세상이 그립다.


그 사람들과 그들의 향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교회를 목숨처럼 사랑하고 싶다.




살며 사랑하며

- Feb 11, 2018 주일예배에 붙임 -




초대교회, 성령충만, 주일설교, 나눔, 교회의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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