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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깨우기
01/10/201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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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69.xx.xx.103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는데 찬 기운이 산뜻하게 느껴진다.

오랜 기간 해오던 일이 이제는 잘 익은 버릇이 된 모양이다.

다음 순서로 커피콩을 분쇄기에 큰 숟가락으로 두어 술 집어넣고 갈기 시작 한다.


전기로 작동 되는 커피 분쇄기가 있지만 나는 굳이 수동을 고집한다.

물론 거기에는 두어 가지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전기 분쇄기는 거의 굉음에 가까운 소음을 만들어 싫고,

손으로 분쇄를 하면 내가 커피를 만든다는 정겨운 느낌과 함께

분쇄될 때 은은히 퍼지는 커피 향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가 부서지면서 조금씩 커피 향이 올라오기 시작 한다.

너무 미미한 향기라 조금 훈련 되지 않으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후각을 간질이는 미미한 그 향기에 이미 가슴까지 들어와 있는 숨을 더 깊이 밀어 넣는다.

이런 나를 보고 예전에 한 친구가

너 영화에 나오는 마약 하는 사람 같다라고 말 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천신만고 끝에 어렵사리 구한 코카인 가루를 바라보며

     실없이 실쭉 씰쭉 입 주위를 비트는 텁수룩한 수염의 사내.

     보일 듯 말듯 입술을 비틀 던 사내가 허겁지겁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 한다.

     가루를 흡입 할 때 쓰는 빨대를 찾는 것이다그러나 빨대는 없다.

     순간 사내는 코카인 가루가 놓여있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깔때기처럼 만듦과 동시

코에 쏟아 넣으며 숨을 깊이 들이 쉰다그러나 양이 안차는지 몇 번 더 가슴속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밀어 내리듯 심호흡을 한다.


나를 유혹 했던 커피 향이 더는 깊어 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너무 미세해서 한번 느꼈다 하면 이미 사라지는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곧더 확실한 향기 속에 있을 것이니 아쉬울 것도 없다.


커피가루를 드립퍼로 옮기기 위해 커피가 들어 있는 병을 분쇄기에서 떼어낸다.

아까 보다 훨씬 강한 커피 향이 코 주변을 맴돈다이쯤 되면 괜스레 손이 좀 더 바빠진다,

더 강한 향이 아니라 맛에 대한 유혹으로뜨거운 물을 드립퍼에 천천히 붓기 시작하자

커피가 거품을 물고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그러면서 밀려나오는 커피 향이 온 부엌을

꽉 채우며 내 인내를 자극한다허나 이제는 커피가 드립퍼에서 다 내려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뒤에 자리한 식탁에 앉아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 진 것이다.

한 3, 4분 밖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다가 들어오자그러면 커피가 준비 되어 있겠지.”


실제로 커피를 제대로 내리려면 옆에 지켜 서있어야 한다커피에 물 조금 부은 후 가루에 

물이 푹 배도록 3,40초 기다려야 하고그 후에는 피어오르는 거품 속으로 조금씩 계속해서 

물을 부어 주어야 한다이렇게 조심스레 원하는 양의 커피를 걸러낸다.

그러니까 나의 방식이란어느 정도 커피를 마실 줄 아는 사람이 보면 참으로 무식한

커피 내리기이다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늘 격식에 맞는 방법만 고집하며 살 수 있겠는가?

거쳐야 할 작업이지만 가끔 그냥 지나가는 여유를 갖기도 한다.


밖으로 나와 의자를 당겨 앉으며그리 작지 않은 화단에 자라나기 시작 하는 화초들을

바라봤다그러다가부엌에서 커피가 걸러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상기 하며 물 호스를 집어 든다화단의 땅이 조금 마른 것 같아 물을 주어야겠다고 생각 한 것이다

커피를 다시 상기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깜박 해서 엉뚱한 일에 빠져 있다가 짙은 커피 향은 고사하고 

써늘하게 식은 커피를 대했던 경험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물주기를 끝내고 부엌으로 되돌아왔을 때 커피 향은 이미 부엌문 언저리까지 번져 와

있었다급격히 코 속으로 밀려들어오는 강한 향기에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듯 머그잔에

설탕을 넣는다찻숟가락으로 한술 두술 세술남들이 보면 조금 많다고 여겨질 법 한

양이다그렇지만 아침에는 괜찮다고 생각 한다몸을 깨우고 머리가 활발히 활동 할 수

있는 영양을 제공 하려면 적당량의 당분이 필요 하다는 생각에.


머그잔을 들고 식탁에 앉는다이제는 그냥 마실 뿐이다이미 코는 무뎌 졌고 맛이나

깊이 느껴 보는 수밖에커피를 입에 머금는다바로 이 순간은 외적인 그 무엇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순수하게 나에게 몰입되어 아무런 다른 생각 없이 나를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다기다렸다는 듯 아침부터의 움직임이 머리에 떠오른다.


마음은 한시도 나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생각은 시나브로 떠올라 나로 하여금

한시도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을 막았다겉으로 보면 참 여유롭게 아침 커피를 즐기는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겉모습일 뿐이 앉아 있는 시간 내 머릿속은 얼마나 바쁜가?


커피가 다 걸러지는 것을 지루해 하며 맑은 공기를 쐰다고

밖으로 나갔다그리고 그것도 잠시눈에 들어오는 꽃에 감탄을 하며 주의를 빼앗겼다.

또 거의 같은 순간 커피가 준비 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머릿속에 한 번 더 각인

시켰다꽃과 더불어 마른 흙이 내 망막에 맺히자마자,

물을 주어야지하며 물 호스를 집어 들었다.

물을 주면서도 나는 나에게 끊임없이 주절거렸다꽃에 대하여벌레에 대하여

그리고 흙에 대하여그러니까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을 제외 하고 나는 쉬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걸고 또 답하고 있었다.


그래 너는 언제나 너와 대화를 하지한시도 쉬지 않고.

그리고 또네 몸을 보라고 얼마나 잘 훈련이 되어져 있는 가

나의 몸은 놀랍게도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 있다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너는 네가 산다고 느껴왔겠지만 그건 네가 살아온 것이 아니야단지 살아진 것이지

살아지는 삶결국 주어진 길을 걸을 뿐이라는 건가?


커피를 한 모금 더 입에 머금었다또다시 떠오르는 생각 그리고

너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몸 깨우기를 하고 있는 거야” 라는 속삭임.

순간 나는 내가 왜 커피를 만들었는지 알았다커피를 맛있게 마시고 또 하루를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시간이 아닌가시방쓰게 웃으며 마지막 남은 커피를 마신 후

나를 돌아다본다그리고 또 한마디 잊지 않는다.

이제 몸이 깨끗이 깨워졌다.’.



커피, 모닝커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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