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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사진을 닦으며
04/23/201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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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71.xx.xx.181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드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드래요


라는,

노랫말 처럼 내 부모님은 한 마을에서 사셨다.

어머니가 열여덟이 되고 아버님이 스무살이 되셨을때

그 동안 동기간 처럼 편안하게 오빠동생 하던 사이였는데 

아마도 그때부터 이성을 느끼셨던것 같다.


어머니가 스무살이 되었을때,

딸 만 셋이던 백씨집안의 어르신은

평소에 데릴사위로 점 찍어 두었던 아버지와 혼인을 시키게 된다.

외할아버지는 당시,

꽤 많았던 전 재산을 다 물려주며 두 처제까지 부탁을 하셨다 한다.

사시면서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셨다. 


1남 3녀를 낳고 기르며 두 분이 다투는 모습을 난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큰소리를 내신다던지

역정을 내신다던지 하는 기억이 내겐 없다.

어머니는 가슴이 넉넉한 여장부 셨다.

남의 나라에서의 40년 가까운 세월에도 두 분은 항상 변함이 없었고

그렇게 두 분은 결혼 하신지 65년이 넘었다.


큰 수술을 받으신 어머님은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 에 의존했고

그런 어머니 에게 아버지는 기꺼이 어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고

한번도 그 문제로 불평 하시는 걸 우리 사남매는 들어보지 못했다.


긴병에 효자 없다지만,

한점의 불평도 없으셨던 아버님도 간병에 한계를 느끼셨다.

어머니의 대소변 을 받아내는 일 과

어쩌다 외출할때 휠체어를 미는것은 물론이고

목욕까지 시키는 일은 아버지 에게 무리였다.

더구나 살짝 치매까지 오셔서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 하시는 걸 보고

자식들은 의논했다.

어머님을 요양원에 모시자고.

그 동안 아버님의 반대에 부딪혀 미뤄왔던 걸

이제 아버님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은 미룰수 없다고.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던날,

어머니는 어린아이 처럼 아버지 에게서 안 떨어지려고 떼를 쓰셨다.

3일후에 병원에서 요양원 으로 가시기로 했는데

어머니는 극심한 불안증세를 보이며 스트레스로 소변에 피 가 섞여 나와

바로 요양원 으로 가시지 못했다.


집에 남겨진 아버지는,

자책감에 꺼억꺼억 우시다 어머니를 다시 집으로 모셔오라고 난리셨다

살아도 같이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다고.

 65년을 해로한 노부부는 마치 이것이 긴 이별 이라도 될것같은 불안감에

좌불안석 이었고 자식들도 우왕좌왕 했다.

초췌해진 모습으로 어머니는 무사히 요양원 으로 가셨다.

곧 돌아가실것만 같은 불안감에 자식들은 노심초사 했다.


아버지가 큰누나에게 말했다.

나도 네 엄마랑 같이 갈수 없느냐고.

큰 누나가 말했다.

아버지 같이 멀쩡히 걸어 다니시는 분 은 갈수가 없다고.

그냥 일주일에 두어번씩 면회나 가시라고.


나도 바쁘다는 핑계로 못 가 뵙다가 훌쩍 2주가 지났다.

큰누나 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병원을 통해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 으로 가셨다고.

이제 두 분 소원대로 한 방을 쓰고 같이먹고 같이 잔다고.

데체 어떻게?

어쩐 일 이야?

의아했다.

열일 제쳐두고 엄마아버지가 계시는 오렌지 카우니의 요양원 으로 갔다.


그 곳에서 나란히 휠체어를 타고 복도에 앉아계시는  부모님 을 뵈었다.

휠체어를 탄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었다. 

"아니 아버지 ..데체 어떻게 된 일예요?"

아버지는 대답대신  흡족한 미소를 띄었고

어머니는 어린애 같이 마냥 해맑은 모습으로  행복해 하셨다.

가끔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몰라볼때 가슴이 메어지긴 했지만

두 분의 행복한 모습에서 난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무릎은 굳어갔고,

걷는방법은 잊혀져 갔다.

아버지의 보행은 퇴화되어 갔다.

한번도,

두 발을 땅 에 딛고서서 걸어보지 않은 사람처럼..

그렇게..


내 아버지 내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바라고, 또 바라지만

만약에 이 세상의 소풍을 끝내고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간다면

그때,

부디 두 분이 손 잡고 함께 가시기를.. 

  

오늘,

부모님의 영정사진의 먼지를 닦아냈다.

그때가 언제인진 몰라도 이 사진을 내 가슴에 안고 갈 날이 오겠지만

그 날이 좀 더 오래있다 오기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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