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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의심: 서로 다른 두갈래의 길(道) (II)
06/21/2019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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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aware Water Gap on 06-19-2019]



(이상봉 박사 영성강좌: “, 지금 바로 여기에”)


믿음과 의심: 서로 다른 두갈래의 () (II)

 

                                                                      ~  이상봉 / 철학박사

 

        Ramakrishna (라마크리쉬나, 1836-86) 라는 신비주의자(mystic) 있었다.

그야말로 神性 속에 빠져서, 오직 황홀경 속에서 살다간 깨달은 사람이었다.

사람은 Feeling type(感性型)이어서, 神에 대한 믿음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를, 당시, 최고의 學者에 해당되는 Chandra (찬드라) 찾아왔다.

Keshav Chandra 인도가 배출한 최고의 지성인이었기에...

따라서, 예민한 분석력과 번뜩이는 이성(理性) 지니고 있는 지적인 학자였다.

 

그토록 대단한 지식인인 찬드라가,

배운 것은 전혀 없이 신에 대한 믿음(faith) 지니고 있다는

Ramakrishna (라마크리쉬나 ) 찾아 온다는 소문을 듣고서...

Calcutta 주변에 있는 수많은 학자, 지성인, Yogi (요가 수행자)

그리고 힌두교 성직자들이 모여 들었다.

 

배운 것이 전혀 없이 깨달았다!’ 하고 있는 사람을...

지성인이, 과연, 어떻게? 요리하고...

또한 어떻게? 시원하게 쳐부수나를 보고 싶어서…

 

지식과 토론에 능란한 학자인 Chandra,

먼저, () 관한 몇가지 질문을 가지고,

라마크리쉬나를 논쟁 속으로 끌어 들였다.

 

그런데...

학자는, 대번에, 상대방이 자기 보다도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의 논쟁을 대하고 있다!고 느껴졌고...

상대방은 자기의 질문을 받으면 받을수록 오히려 좋아 하면서...

껑충 껑충 뛰기도 하고, 이어서 춤까지 추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런 論爭(Argument) 있나? 정도였다.

 

 Chandra 어리둥절 해져서 이렇게 묻게 되었다.

선생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혀 하지도 않고...”

 

바로, ,

Ramakrishna에게서 나온 대답이 이랬다고 전해진다.

당신을 만나보니... 나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 깊어지게 되었기 때문이오!”


“…???”

 

당신의 그러한 질문, 당신의 그런 지적 능력은?

神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생길 없는 것들이오!

당신의 그런 높은 수준의 지식은?

하느님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적으로, 얻을 없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당신은 조만간에 보다도 깊고 철저한신의 신봉자 입니다.

같이 배우고, 보잘것 없는 바보도, 하느님을 찾을 있었는데…

좋은 머리로, 그런 지식으로,

어떻게 하느님을 찾을 있단 말이오?”


“…???”

 

그러자...

學者는 허리를 굽혀,

깨달은 사람의 발끝을 손으로 만지고, 공손하게 물러 나면서

선생의 눈을 보고...

더군다나 선생이 나를 대하는 모습 속에서...

저는 비로소 신성(神性)의 참모습을 보았습니다!” 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최고의 학자가, 논쟁에서 이길 없었던,

첫번째의 사람이,

배운 없이 믿음만 가지고 깨달은 라마크리쉬나 였다!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치 따듯한 가슴이 있었던 것이었다. 

 

바로, 그러한 라마크리쉬나의 聖者다운 모습을 직접 대면해 보고,

비로소, 神性(신성) 느껴 사람이,

바로, Intellectual type(知的型)  학자인 찬드라 (Chandra)였고.

 

Chandra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아무런 논쟁 조차도 없이, 한번에 나의 논쟁을 물리친 사람.

아무런 증명 조차도 없이,

나에게 진짜를 보여준 사람이, 바로, 스승이었노라!”

 

그렇다! 

극은 극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오직 출발 지점에만, 東과 西가 있을 뿐이다!

 

그대가 정상(頂上) 올라서는 순간에,

모든 길은 하나로 합쳐져 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정상에 올라가 사람만이 알게 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모든 길이 하나인 ,

오직, 정상에 올라가 사람에게만 진리일 뿐이다!

 

지적형(知的型) 사람은,

의심을 통하여 깨달음으로 있다.

지적인 사람들에게는 과학적인 방법이 알맞게 되어있다.

 

지적인 사람들이여!

자기에게는 통하지 않는 믿음(faith)이라는 것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기만하지 말아라.

 

자기에게 알맞은 방법이 있는데,

때문에,

평생을믿어질 수도 없는 그런 것들 기만하려고 하는가?

 

세상에는 feeling type(감성형) 사람도 있어서,

믿음(faith)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대의 성격 속에, 그대의  마음 속에,

믿음을 받아 들일 만한 Seed() 들어 있지 않은 ?

믿음이라는 것은, 그대에게, 부대낌만을 주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보기로 할까?

 

If someone strikes you on the right cheek, turn to him the other also.

    ~ (Mt 5:39, LK 6:29) 

누가 오른 뺨을 치거든 마저 돌려 주어라.라고, 예수는 말했다.

 

그대는, 과연, 그렇게 있겠는가?

그대가 예수를 구세주(救世主) 믿고 있다고 해도

과연? 그대가 그렇게 까지 있겠는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든…

또는 예수를 위해서든…

아니면, 직업이 성직자라서 남들에게 시범을 보여 주기 위해서든.

 

나의 질문은,

그대에게, 그와같은 실천력이 있나? 없나? 물어 보는 것이 아니다.

실천력이 있고 없고는 하등의 문제 꺼리도 안된다.

 

그런 연기력은 배우들에게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  

 

어느 대규모의 커다란 예배당에서 목사가 강론를 하고 있었다.

 

목사는, 누가 오른 뺨을 치거든 마저 돌려 주어라

라는, 것을 강론의 주제로 써먹고 있었는데


신자 中의 사람이,

단상 위로 올라가서, 목사의 오른 뺨을 후려쳤다!

정말로, 왼쪽 뺨을 주는가? 아닌가? 확인해 보고 싶어서

 

목사는 몹시 화가 솟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터라,

없이, 왼쪽 뺨을 돌려 주게 되었는데

 

신자는 정말로 떨어진 者였는지?

이번에는, 왼쪽 마저 세게 후려치는 것이었다!

 

그러자...

목사는 갑자기 달겨 들더니, 신자를 죽도록 패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더니

목사가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Bible 속에는왼쪽 뺨만 돌려 주어라라고 되어 있을 !

이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지 않습니까?

Bible 이상의  아무런 언급이 없으니...

저는 제式 대로 있는 것입니다!

덜떨어진 인간은 그것도 모르고서 

나의 왼쪽 뺨까지 때리니당연히 얻어 맞아야지요!

제가 병신 입니까? 언제까지 계속 가만히 맞고만 있게…”

“…???”

 

그렇다!

내가 묻는 것은,

그대의 연기력의 깊이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실천력이나 연기력이 좋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있다!

 

내가 묻는 것은,

? 그래야만 하는가?” 나의 관심사 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말을 직접한, 예수 자신은 그럼 어떠 했을 같은가?

과연, 자기가 말을 실천 했을 같은가?

 

사실은... 실제에 있어서는

말을 예수 자신도 실천하지 않았다! 알겠는가?

 

그대가 믿거나 말거나예수 자신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았다!

 

그렇다!

예수 자신 조차도, 경비병이 예수의 뺨을 때렸을 때에,

다른 뺨을 돌려 대주기는 커녕

( 기독경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놓아보면...)

 

내가 말에 잘못이 있다면 어디 보아라.

그러나 잘못이 없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느냐?” 하고 대들었다.

                                             ~(요한 18: 22-23)

되어있다. 

예수 자신도, 이렇게, 대들었을 뿐이다!

 

그렇다!  분명히 예수 자신도 뺨을 돌려 대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찌된 일인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영문이란 말인가?

 

실천 없는 믿음이란 과연 어떤 믿음인가?

그런 것이야, 믿음 (faith)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한가지만, 물어 보는 것으로,

나의 이야기를 끝내야 되겠다!

 

이것은, 나의 이성(理性)에서 나오는 농담같은 질문인데…

 

여자의 경우에,

어떤 치한이나 파렴치한이 한쪽  乳房을 만진다면?

다른쪽  乳房도 대어 주어야 하겠는가?

 

더군다나,

다른쪽  乳房마저 만진다면?

다음에는 어디를 대어 주어야 한단 말인가?

 

이것, 저것, 제발,  깊이 생각하여 보시라!

 

그대의 의심이 끝장 까지...

의심하고  생각하여 보시라!


그리고,

더욱 깊이 觀照(관조) 보시라!

그대에게 맞는 () 과연 어떤 것인가? 를…

 

[* 이상봉의 의심하라! 끝까지 의심하라!” (Pp. 23-27)에서]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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