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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宗敎)와 여성(女性)
06/13/2019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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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dson Valley, Anthony's nose trail in New York, on 06-12-2019]



(*Courtesy of Pyong Yi)



     (*Courtesy of Pyong Yi)

(* Courtesy of  Pyong Yi)


[ Hudson Valley, Anthony's nose trail in New York, on 06-12-2019]



종교(宗敎)와 여성(女性)[1]          

             

                    ~ 이상봉 / 철학박사


“종교의 창시자여! 성직자여! 단체의 우두머리들이여!

그리고 남자여, 여자여, 모든 인류들이여…

그대들 중에서,

여자의 몸에서 나오지 않은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시오?

 

 

(1) 미래를 향한 우리의 기대(期待)

 

일년을 마무리 한다는 연말이라는 것이 있고,

새로운 해라는 새해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들은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직은 우리 앞에 닥아오지 않았다고 해서,

먼 훗날이니 미래(未來)니 하는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미래는 따로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미래에 대한 예측(豫測)은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예측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예측하는 것 뿐이니까!

그런데, 그런 예측을 豫測으로 보려고 하지를 않고, 엉뚱하게도

“예언豫言”으로 받아 드리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리가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일기, 과학, 경제 등등에 대한 전망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고 있으면서도,

종교에 관한 전망에 대해서는 갑자기 태도가 살벌하게 되는데,

이와같은 보통 사람들의 오해를 가능하면 피해 보려는 의도에서

나는 미래에 대한 “기대(期待)” 라고 부르겠다.

 

우선, 이야기의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야기를 하나 들려 주고 싶다.

 

(한국어로 번역을 시도해 보았으나,

전혀 내용의 뉴앙스 (Nuance)가 살아나지를 않기에…

할수없이, 영문을 그대로 사용하겠으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This is a story about four people named

Everybody, Somebody, Anybody and Nobody.

There was an important job to be done

and everybody was sure that somebody would do it.

Anybody could have done it, but nobody did it.

So somebody got angry about that because it was everybodys job.

Everybody thought anybody could do it,

But nobody realized that everybody wouldnt do it!

It ended up that everybody blamed somebody when nobody did

What anybody could have.

 

그렇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없이 모두 다

이와같은 4가지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Everybody, Somebody, Anybody, Nobody가 바로 그것인데…

실제로는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은채,

방관된 태도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비난 할 수 있는 것 뿐이다.

 

예를 들어 보기로 할까?

 

어느 모임에서,

연사가 “여러분! 이런 짓을 하시면 됩니까?” 라고 외쳤을 때에…

그 “여러분”이라는 이상한 단어 속에는

모든 사람이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두 다 빠져 나가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곳에 있는 청중들 모두가, 서로 서로,

“나는 빼 놓고…” 라고, 받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연사 자신도 자기는 쏘옥 빼놓고,

다른  사람들만 비난 하고 있는 것이고…

이와같이, 모든 기준을 자기 자신의 “이익”에만 두고 있기에,

모든 대명사는 오직 “나 말고… 바로 너 말야!”라는,

핑계만을 도와 주고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온 엄연한 역사적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단체 측에서는 쉬쉬 하면서 덮어 두려고만 하는데…

덮어 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은 단지 자기 자신의 종교관의 나약함과

모자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도피 행각일 뿐이다.

 

(실제로, 나는 지금, 어느 종교 집단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며,

또 그래야 될 하등의 이유나 숨은 의도도 전혀 없다.)

 

단지, 엄연한 역사적인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살펴보고,

그 원인을 제대로 깨닫고…

그리하여 앞으로는 “좀 달라지자!”는 소망이요 기대일 뿐이다.

그렇다! 이제는 확실히 달라져야만 한다.

서로 서로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2) ()차별 하는 종교들     

 

이 지구 상에 존재하고 있는 잘 조직된 모든 종교 단체의

하느님은 한결같이

“남성(男性)”으로만 묘사 되어 있다. 

하다못해 “聖父와 聖子와 聖神” 이라는 삼위일체 속에 조차도

“여성(女性)”은 들어가 있지 못하다.

 

그대들이 믿거나 말거나 천사(Angel)라고 묘사되어 있는 것들도,

그 생김새나 설명은 여자처럼 보여지지만,

알고보면, 모두 다 남자들 일색이다.

 

마찬가지로 Jainism(자이나敎)에서는

남자들만이 진리를 발견 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여자는 아에 진리 조차도 찾지 못하게 정해 놓았으니,

여자는 남자로 다시 태어 나지 않고서는 진리 조차도 찾지 못한다는 소리다!)

 

Islam(이슬람敎)에서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아서,

여자들이 사원 안으로 들어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

 

Judaism(유태敎)에서는 여자들을 따로 떨어진 장소에 모여 있도록 했다.

 

Hinduism(힌두敎)에서는 여자가 Veda(베다 經)이나

Upanishads (우파니샤드)를 읽는 것까지 금지 해 놓았다.

 

어디 그뿐인가? 

 

예의네 도덕이네 군자네… 하면서,

동양 사회를 수천년 동안이나 지배 해오고 있는 孔子(공자)라는 사람은,

어느 정도였다고 짐작이 되는가?

공자의 행동과 생활 방식을 자세히 적어 놓은 책,

동양의 고전으로 가장 높이 평가되는

“논어 論語”라는 책의 ‘양화 25 장’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유독,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조금만 가까이 하면 공손치 못하고,

조금만 멀리하면 원망을 하게 된다.

 

여자와 소인을 그렇게 단정지어 놓았는데…

여기서 소인이란?

철 모르는 어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소인배 즉 천민(賤民)을 지칭한 말이다.

그야말로 여자를 멸시한 발언이다.

 

그런데도 구설수에 오르지도 않은채,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사람으로 존경을 받아오고 있다.

 

한국의 제사 지내는 모습을 보라!

여자들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가?

 

이와같이, 잘 조직된 종교 단체의 하느님은 男子일 뿐이다.

 

사실상, 하느님이 남성으로 되어 있는 곳에서는,

‘남성이 하느님’으로 행세 할 수 밖에!

 

모든 종교 집단의 하느님만 남자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종교 집단의 창시자들은 실제로 남자들일 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 창시자 이후에도, 높은 자리는 계속 남자들이 독점한 채,

명예와 부와 권력을 즐겨오고 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수천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왔으며

지금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이와같이 종교집단을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들은 남자들 일색이다.

 

(3) 그런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은…

 

지금 당장 “종교 모임”엘 가 보아라!

대부분의 좌석들이 여자들로 메꾸어져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여자들에게는, 그토록 “회개” 해야 할 죄가 많으며,

소원 성취 해야 할 기원이 그토록 많으며,

‘남성 神’과 ‘男子 성직자들’ 에게서 구원 받아야 될 일이 그토록 많을까?

 

그렇다면?

과연 속칭 그대로, “여자로 태어 난 것이 죄라서…” 인가?

아니면 “죄가 많기에 여자로 태어 났다!”는 자기 비하인가?

 

이상스럽게도 종교 단체는 여자들에게 애시당초 부터 공평치 못했다.

역사의 기록에 나타나 있는 모든 사실들이 그렇다.

생각하여 보자!

예수에게는 아예 “女子 제자” 란 있지도 않았다.

자그만치 12명의 제자들이 있었으나, 그중에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여자를 제자로 아에 받아 들이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니…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어 갈 때,

그 밑에서 끝까지 지키면서 남아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여자들이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이모, 막달레나 마리아,

그리고 또다른 마리아가 있었다. ~요한 복음 19:25, 마태오 복음 27:56)

 

그리고,

그 죽은 예수의 시체를 동굴 속으로 옮긴 것도 바로 그 여인들이었다.

 

(잊지말고 기억해 두시라!

예수가 가장 많은 재정적인 도움을 받았고, 가장 많이 신세를 진 사람은?

바로 막달레나 마리아 라는 여자다!)

 

스스로, 예수의 제자라고 자처하던 남자들은,

비겁하게도, 모두 다, 피해서 달아나 있었다.

                                        

그렇다면...

석가모니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석가모니는 영적 진화의 최고봉에 올라 간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 역사상 석가모니가 영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올라 간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따라서, 깨달은 이후의 그에게서 “비난할 점”을 찾아 낸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못해 불가능할 정도다. 쉽게 말하면 그는 그만치 완벽했다.

 

그와같이 완벽한 사람조차도

여자를 제자로 받아 들이는 데 있어서는 시간을

끌었다고 느껴지고 있다.

 

사실상 여자들의 입문을 선뜻 응하지 않고 있다가,

자기를 친어머니 대신에 키워준 이모가 계()를 받겠다고 찾아 왔기 때문에…

그 여자를 받아 들여야 했고,

그 일로 해서 사실상 다른 여자들의 입문(入門)이 덩달아 시작된 셈이다.

 

이와같이,

모든 종교 단체에서의 여자들의 위치는,

정말로, 불공평하고 보잘 것 없다.

 

그런데도…

사실상 그 종교 단체의 생명을 이어 나가게 해주는 것은 바로 여자들이다!

 

왜냐하면?

신자들의 대부분은 여자들이며,

바로, 그 여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꾸려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4) 빗나간 교리(敎理)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독자분들에게,

아마도 가장 친숙한  책은 힌두경도 아니고,

베다경도 아니고, 마호멧경도 아니고…

Bible(기독경)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교의 이야기를 하면서 Bible(기독경)의 구절을

예로 자주 들고 있는 것 뿐이지,

내가 편파적인 사람이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그  Bible 속에 들어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놓고 한번 살펴 보기로 할까? 

 

Bible 속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와서…

“인류를 사랑 하시어 독생자를 보내셨나니…”

“인류를 사랑 하시어 우리의 죄를 대신 하여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으니…”

“원수를 사랑하라!” 라고 까지 되어 있는데…

어찌하여, 여자들에게는 그다지도 공평하지 못하였을까?

 

이제 직접 경문 속으로 들어 보기로 하자!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시고는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다음…

~ 창세기 2:21-22.

 

여자들은 정숙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해야 합니다.

머리를 지나치게 꾸미거나 금이나 진주로 치장을 하거나

비싼 옷을 입지 말고 오직 착한 행실로써 단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공경한다는 여자에게 어울립니다.

여자는 조용히 복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 1 Timothy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번째 편지 2: 9-12

 

남자는 하느님의 모습과 영광을 지니고 있으니

머리를 가리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을 입니다.

여자에게서 남자가 창조된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서 여자가 창조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 1 Corinthians고린토 전서 11:7-10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입지말고 남자는 여자의 옷을 입지 말라.

이런 짓을 하는 자는 모두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역겨워하신다.

~ Deuteronomy신명기 22:5

 

“여자들은 교회 집회에서 말 할 권리가 없으니 말을 하지 마십시오.

율법에도 있듯이 여자들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 남편들에게 물어 보도록 하십시오.

여자가 교회집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수치가 됩니다. 

~ 고린토 I. 14:34-35.

 

“여자는 조용히 복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나는 여자가 남을 가르치고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먼저 아담이 창조되었고, 하와(이브)는 그 다음에 창조된 것 입니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하와(이브)가 속아서 죄에 빠진 것 입니다.

~ 디모데오I. 2:11-14.

 

어찌하여...

이토록  “男子”와 “女子”를 차별하고  갈라 놓아야 했을까?

 

그런데도…

과연 “人類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여자”를 그토록 별나게 취급 해 놓은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5) 단체의 만행(蠻行)

 

어디 그뿐인가?

이쯤에서 아주 간단하게 나마 “과거의 기록들”을  짚어 보기로 할까?

모슬렘들이 점령하고 있었던 성지(聖地)라는 곳을 탈환 한답시고,

십자군(Crusader)이네 뭐네 하면서,

700년 동안에 죽어간 사람의 목숨이 3백만.

종교재판 (Inquisition)이라는 것에 의하여 죽어 간 생명이 1천만.

12세기 초, 기독교 국가 간의 전쟁에서 죽어 간 목숨이 3천만.

19세기에 있었던 기독교 국가 간의 전쟁에서 죽어 간 생명이 1 4백만.

콘스탄틴(Constantine)시대 이후에,

기독교도들이 기독교를 믿게 하기 위하여 죽인 사람의 숫자가 2억 …

 

이것 외에도,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종교 단체들의 만행”으로 점철되어 있다.

 

만약에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가운데,

“그런 것쯤이야…”

“뭐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잘한 짓이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있는 한,

새 천년에 거는 기대는 더욱 더 어두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종교 문제는,

바로 그 종교 단체 내에서 그들 스스로 만들었듯이,

해결도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문제는 언제쯤이면 해결이 나게 될 것인가? 에 대해서는,

나에게 묻지를 말고…

그네들 스스로 지금 당장 부터 고치고 실천하면 되는 것 뿐이다.

 

어느 누구에게 물어 보고 말고 할 것도 못된다.

 

왜냐하면?

진정한 종교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함”에 있는 것 뿐이니까!

 

나는  “집단의 행위” “집단의 범죄” “집단의 심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는 것도,

일단 “단체” 또는 “집단화” 되면,

모든 순수함은 순식간에 없어져 버리고,

오직 집단화된 행동으로서의

“내 편” 과 “네 편”과의 적대감(敵對感) 뿐이다.

 

“단체, , 집단, 조직”을 만든다는 것이,

순수한 개인의 감정을 어떻게 변하게 할 것 같은가?

“편”을 갈라 놓는다는 것이, 사람들을 어떻게 돌변하게 하는지…

 

그 예를 들어 볼까?

 

한 교실에 60명이라는 학생이 있는데,

짝수 번호와 홀수 번호를 나누어서,

경기 시합을 시켜보면…

갑자기 두 패로 갈라지면서, 승부를 위하여

얼마나 잔인해 지는가를 금방 알게 된다.

 

아무리 친한 옆자리의 친구도,

그리고,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함께 등하교 하는

바로 옆집 친구도, 일단 청군과 백군이라는 “패”로 갈라지고 나면…

서로 서로 적대감을 가지고…

오직, 자기 패, 자기 팀의 승리를 위하여, 별 짓을 다 한다!

 

그렇다!

패가 나누어 지는 순간에,

친구의 관계가 금방 적(Enemy)으로 변하면서,

적개심까지 가지고 해치기까지 서슴치 않는다!

 

그렇다!

알고보면, 하찮은 그 “패”가르기 때문에…

이념이라는 것 때문에…

종교라는 것 때문에…

형제 사이에서도 총질을 하고, 부모 형제도 모두 팽가치고,

하다못해 가족애 조차도 별 것이 아닌 것으로 되어 버린다!

 

따라서, 그때에 남게 되는 것은?

오직 “내 편이냐?” “네 편이냐?” 하는 패거리에 대한

맹목적인 소속감과 충성심만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맹목적인 패거리 근성 때문에…

그러한 비정상적인 비행과 만행이 미화되고 또한 정당화 되는 것이 문제다!

 

(6) 오늘의 행위가 바로…

 

‘인과응보(因果應報)’ 라는 말이 있다.

너무나 불교 색채를 풍기고 있어서 웬만해서는 사용하고 싶지 않으나…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과학적인 의미의 용어인 것 만큼은 사실이다.

 

따라서 ‘인과응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것을,

The law of cause and effect (原因과 結果의 法則)이라고 생각 하시라!

 

인류 스스로가, 오늘, 어떻게, 행동 하는가? 에 따라서,

내일 결과가 어떻게 나타 나는가? 로 보면 될 것이다.

 

“업(), 인과응보(因果應報)”를

전생(前生)의 의미나 운명(運命)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행위가, 바로 다음 순간,

또는 내일의 결과를 가져 온다고 생각 하시라! 

 

바로 지금(Now), 오늘(Today), 현재(Present)가 중요하다는 것을,

짤막하게 詩로 써 놓은 작품이 있는데…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Thats why its called the Present.

 

그렇다!

미래의 종교에서는, 영적인 것(Spirituality)하고 거리가 멀거나,

전혀 관계가 없는 “패 가르기” “단체행위” “집단의식” “숭배행위” “교리”

따위는 없어져야 한다.

더군다나,

여성을 차별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조차 없는 만행일 뿐이다.

알겠는가?

 

(7) 바람직한 미래의 종교는…

 

따라서… 내가 보는 가장 바람직한 ‘미래의 종교’는…

A religion in which there are no doctrines, so that nothing is spoken.

Because the essence of religion can have nothing to do with

what is say-able.

(敎理가 전혀 없어야 된다, 교리가 있는 한, 입으로만 떠들게 되는데…

원래의 宗敎의 本質은 결코 입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죽어 간 종교의 창시자들이

여자들을 어떻게 취급하였든  간에,

내가 직접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실제로 하느님을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들은 여성들이다! 

 

다시 말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영적으로 성숙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남자들이 설칠 수 있는 곳은, “단체, 조직”일 뿐이다.

 

아직도,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 글을, 이렇게 물어 보는 것으로, 끝내야만 되겠다.

 

“종교의 창시자여! 성직자여! 단체의 우두머리들이여!

그리고 남자여, 여자여, 모든 인류들이여…

그대들 중에서,

여자의 몸에서 나오지 않은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시오?

 

-------------------------------------  

 

사족(蛇足):

 

끝으로, 그야말로, 농담 하나를 덧붙여 보면...

 

그렇다면?

  무슨 이유에서...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기에...

神이, 남자를 여자보다 먼저 만들었다!’ 라고,

주장하고 떠들게 되었을까나?

 

그것에 대하여,

내가 들려주고 싶은 대답이 있으니... 

대답을 귀담아 듣고, 깊히 觀照(관조)하여 보고,

그리고 기억해 두시라!

모든 여성들이여! 제발, 잊지 말고, , 기억해 두시라!

(아니다! 여성 중에서도  종교에 미친 여자들 예외로 해야만 되겠다.)

 

God made man before woman so as to give him

Time to think of an answer for her first question!

(神이, 남자를 여자보다 먼저 만들어 놓은 이유는...

여자에게서 나올 있는 질문에,

대답을 생각해 있는 시간을 미리 주기 위한 것이다!)

 

아마도...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 없는 사람들은, 주로, 남자들이 같은데...

그들 중의 대부분은, 틀림없이, 聖職者(성직자) 라는 부류들이거나,

종교 단체에서 설치는 자들일 것이리라!

그렇지 않은가? 말이 틀렸는가?


[ ~ 더러운 종교, 못된 신 (Pp. 127-135) 에서]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All rights reserved and



[1] 글은, 서울대학교 동창회보

(새천년을 향한 전망 : 2000) 발표된 입니다.

더러운 종교, 못된 신 (Pp. 127-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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