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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 관계의 시작
11/23/201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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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73.xx.xx.242

한국 현대시 100년을 기념해서 2004년 가을에 시 전문 계간지인 <시인세계>는 현역 시인 240명을 대상으로 평소 즐겨 읽는 애송시를 조사했다. 결과는 1위가 김춘수의 <꽃>이었고, 그다음이 윤동주의 <서시>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님의 시 <꽃>의 첫 소절이다. 꽃은 어떤 이유로 뭇 시인들의 가슴을 그토록 시리게 문지른 것일까? 몸짓에 불과하던 그 무엇을 시인이 이름을 불러 주었더니 꽃이 되었을까?



이름을 불러주면 관계가 시작된다. 들판에 널려 있는 수많은 꽃들은 그저 몸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꽃은 수많은 꽃 중에 하나가 아니라, 너와 나의 관계를 이어주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생령, 즉 살아있는 영혼의 존재가 되게 하셨다. 생기를 불어 넣기 전까지 사람은 그저 티끌로 만들어진 존재일 뿐이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에게 호흡을 주는 것과 같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이 말과 형제인 구절이 있다. ‘이름은 존재의 집’! 우리 주변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잡초 취급을 당한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목각인형에 불과하던 피노키오가 숨을 쉬고 춤을 추도록 혼을 불어넣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누구든지 특별한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한다. 바로 여기에 복음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신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땅속의 돌은 그저 돌멩이일 뿐이다. 그러나 역사가에 의해 발굴된 돌은 수천 년의 혼이 깃들은 유물이 되어,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힘과 자부심을 준다.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시는 순간, 몸짓에 불과하던 우리가 하늘의 꽃으로 피어난다. 하나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시고, 내가 그 부름에 응답하는 순간부터 우리 인생에는 여명이 찾아온다. 이는 마치 비바람 몰아치는 폭풍의 밤바다에서 등대를 찾았을 때의 환희와 같다.



시몬은 우유부단하고 혈기를 제어하지 못하는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베드로’, 즉 ‘반석’이라고 부르셨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요 1:42)



우리는 성경에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하나님을 만난다. “아담아!”, “아브라함아!”,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삭개오야!” “사울아!”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시다니! 이에 더 이상 의미 없는 몸짓과 눈짓으로 살지 않겠다고 “아멘” 하며 응답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3)



이름을 불러줄 때 잡초가 되지 않고 꽃이 된다. 단추를 눌러 줄 때 사각 입면체 라디오는 전파가 된다. 감동으로 들어줄 때 음악은 다시 태어난다. 누군가를 살리고 싶으면 불러주고 눌러주고 들어주어야 한다. 김춘수 님의 <꽃> 후반부는 이렇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어떤 인생이라도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린다. 어느 누구도 하나의 몸짓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누군가의 꽃으로 피고 싶고, 눈짓이 되고, 의미로 남고 싶은 것이다. 키케로는 “명예를 가볍게 여기라고 책에 쓰는 사람도 자기 이름을 그 책에 쓴다”라고 했다. 그만큼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이 바로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하늘나라의 꽃으로 피어나도록 하는 거룩한 행위다. 한 영혼의 이름을 불러주어 그가 하늘나라의 꽃으로 피어나는데 쓰임을 받는다면 이처럼 보람 있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도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다. (https://blog.naver.com/peteroh42))



(한 재욱 지음. <인문학을 하나님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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