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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택(peteroh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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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가 지붕 위에 올라앉았던 날
10/21/201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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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애완견 푸들을 키우고 있다. 이 녀석은 산책을 무척 좋아한다. 식구들의 대화를 엿듣는지 산책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귀를 쫑긋하고 펄쩍펄쩍 뛰며 흥분한다. 가끔 이 녀석을 위하여 내키지 않은 산책을 나설 때도 있다.



동네 공원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주민이 많다. 공원에 가면 몸집이 커다란 저먼 셰퍼드부터 아주 작은 치와와까지 다양한 개와 주인을 만난다. 우리 개는 이들 개를 만날 때면 금세 싸울 기세로 덤빈다. 나는 이 녀석이 덩치 큰 개를 만나 혼이라도 나지 않을까 조바심과 염려를 하면서 산책을 하곤 한다.



한번은 목줄이 풀려버린 우리 개가 커다란 저먼 셰퍼드를 공격했다. 자기보다 몸집이 열배도 넘는 송아지 같은 개였다. 개 주인도 나보다 덩치가 큰 히스패닉계 청년이었다. 키도 커서 농구선수 같은 사내였다. 그 개의 코 밑에서 온 힘을 다해 짖어대는 우리 개를 바라보며 셰퍼드는 으르렁거리며 같이 짖기도 하고 이빨을 드러내며 금세 덤빌 기세였다. 그럴수록 더욱 세차게 짖어대는 우리 개의 위세에 눌린 셰퍼드는 꼬리를 감추고 주인 뒤에 숨기 바빴다. 목숨 걸고 덤비는데 주눅이라도 든 건지, 덩치에 걸맞지 않게 꼬리를 감추는 셰퍼드를 보면서 이민 초기 혼자서 자동차 정비할 때의 일이 떠올랐다.



이민 초기, 한국에서 경험했던 일을 해야 수월할 것 같아 자동차 매연 검사와 정비소를 시작하게 되었다. 정비소라 해봐야 규모가 작아 리프트 한 대에 매연 검사하는 기계가 고작이었다. 시작한 지 오륙 개월이 지나니 제법 손님들이 찾아주어 수입도 안정되어 갈 즈음의 일이다.



그날은 아침부터 손님이 없었다.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올 무렵에야 한 건장한 청년이 정비를 의뢰했다. 날도 저물어가고 서툰 영어로 설명하기 힘들어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덩치도 크고 온몸에는 문신이 가득해서 빨리 보내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검사해 보고 문제를 찾아 정비를 끝내고 청구서를 작성했다. 많지 않은 돈이지만 그래도 하루 허탕은 아니구나! 스스로 안도하며 고객에게 청구서를 내미니 험상궂은 표정을 하며, “너, 나 모르느냐” 라며 금세 덤빌 기세로 화를 냈다.



누구냐고 묻자, 자기는 이 동네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토박이며 한 번도 돈을 내고 차를 고친 적이 없다며, 그냥 가겠다는 심사였다. 차를 고쳤으니 당연히 돈을 지불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차를 내줄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러자 그가 “너 여기서 비즈니스 하기 싫어? 내 말 한마디면 많이 힘들 거야!”라며 협박성 발언을 하며 큰 키로 나를 내려다보며 화를 냈다.



순간 여기서 포기하고 조용히 보내느냐, 아니면 끝까지 해 보아야 하느냐, 갈등이 일었다. 지금 당장은 이 상황을 끝낼 수

는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이런 일들을 감당해야 할까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죽기 살기로 하지 않으면,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돈을 지불하기 전에는 차를 내줄 수 없다고 얘기한 다음, 녀석이 보는 앞에서 자동차 키를 지붕 위로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녀석이 좀 움찔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내 길길이 뛰며, “너 목숨이 몇 개냐, 눈이 찢어져 안 보이느냐”며 온갖 협박을 했다. 영어가 짧은 나는 


그게 욕이라는 것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경찰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십여 분이 지났다. 이 친구 화가 조금 진정됐는지 아니면 경찰이 오는 게 두려웠던지 돈을 내밀며 키를 가져오라고 했다. 사다리를 꺼내 지붕으로 올라가는데 다리에 힘이 빠져 후들거렸다. 지붕에 올라가니 그간의 긴장이 풀렸는지 먼지투성이인 지붕의 골진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고작 돈 90불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그간의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설움이 복받쳤다. 앞으로 어떻게 이런 시간을 헤쳐 나갈까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남의 땅에서 살아갈 날이 아득하고 괜히 이민을 왔나 싶기도 했다. 자신이 한없이 처량했다. 그렇게 한참을 지붕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이 친구 지붕으로 올라와 내가 불쌍했는지 조용히 껴안아 주면서, “아이 엠 쏘리”라고 했다. 키를 건네주고 내려오니, 그때야 경찰이 왔다.



이 녀석이 경찰과 잘 아는 사이인 듯 서로 인사하며 별일 아니라고 하자, 경찰은 나에게 진짜 별일 아니냐고 물었다. 작은 해프닝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도와주어 잘 해결됐다고 말해주었다. 경찰은 필요하면 또 연락하라며 명함 한 장을 주고 갔다. 고객과 경찰을 보내놓고도 나는 긴장이 풀리지 않아 멍한 정신으로 한참을 책상머리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 밖은 이미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날 이후 이 친구는 우리 정비소를 지나며 아침저녁으로 손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가끔은 내가 쳐다보든지 않든지 “헤이, 마이 프렌드, 해부 굿데이”라고 소리치며 지나곤 한다. 그 후 우리는 친구가 되어 파티에도 초대받아 가서 대접도 받고, 한국 바비큐 식당에도 초대해서 교제하며 살고 있다. 이 친구의 아내도 무척 친절하여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정비소를 운영하며 고객과 분쟁이 생길 때면 이 친구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하여 십오 년 넘게 한곳에서 정비소를 운영하며 큰 다툼이나 문제없이 잘해 올 수 있었다.



그리고 2년 전, 큰 바디샵과 정비소를 열어 이사했다. 이사하고 첫날 이 친구가 커다란 화분을 가져와 축하해 주었다. 지금은 자주 차를 공짜로 고쳐주지만, 그때마다 그보다 몇 배 값진 선물을 받곤 한다.



요즈음도 공원 산책길에서 저먼 셰퍼드를 만나곤 하는데 녀석은 우리 집 푸들을 보면 꼬리를 내린다.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녀석 앞에 주눅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열쇠가 지붕 위에 올라앉았던 날’이 다시 떠오른다.



(김 홍기. 2019년 미주 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수필부문 당선작)



★ 당선소감



중학생 때 어느 신문사 문예 백일장에서 상품 없는 상장만 받았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그 일이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잡으려 하면 저만치 멀어져 간 꿈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왔습니다.



우연히 오렌지 글사랑에서 하는 “밥하기보다 쉬운 글쓰기” 수업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년이 무척 행복했습니다. 문우들과 함께 하며 문학에 빠진 시간이었습니다. 고향 집 대청마루에서 여름 한때를 보내듯 포근한 나날이었습니다. 당선이라는 큰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쁘면서도 어깨가 무겁습니다. 새벽녘 산사에서 울리는 종소리같이 여운이 긴 글,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놓인 듯한 맑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고난의 때나 기쁨의 때나 늘 함께 해주신 내가 믿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글을 쓰겠습니다.



그동안 어린아이 걸음마를 엄마의 마음으로 안타까이 지켜보았을 정 찬열 선생님, 그리고 문우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말도 안 되는 몇 마디 글에도 감동해주고 아낌없이 칭찬해준 사랑하는 아내와 어려운 고비 고비를 잘 이겨낸 가족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모국어의 위대함을 일깨우고 지키고자 애쓰는 미주 한국일보에 감사를 드립니다. (김 홍기) (https://blog.naver.com/peteroh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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