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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택(peteroh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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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바라보며
01/31/202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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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듯 가까웁고 가까운 듯 멀리 선 잡목 우거진 산 숲을 바라본다. 오랫동안 맘으로도 정답게 느끼고 이따금 거닐어도 보는, 건넛마을 뒤편의 산 숲이다. 먼동이 트는 새벽, 지축을 울리며 굴러가는 차바퀴 소리에 서서히 잠 깨어나 창가에 설 때면, 맨 먼저 우윳빛 안개를 헤치고 다가오는 숲, 어둠을 거쳤어도 도무지 어둠의 흔적을 내 뵈지 않는 의연한 숲이다.



나는 숲의 이슬 젖은 손을 잡아 흔들며 새날의 기수 같은 그의 푸른 함성을 가슴으로 듣는다. 이럴 땐 꿈자리에서도 거르지 못한 삶의 찌꺼기들이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등 숲의 협주곡 속에 휘말려 깡그리 사라지는 듯하다. 그리고 숲의 하모니와 더불어 새날을 향한 희망찬 기도가 내 맘에 바람 속 깃발처럼 나부끼기도 한다. 새로이 연주되리라, 고운 음색으로만 이 하루의 악보를 그려 가리라 하고.



숲은 오늘도 침묵으로 거느린 많은 애기들을 그 품속에서 가만가만 끌러놓아 줄 것이다. 식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텅 빈 적료가 집안 공기를 가득 채울 때, 혹은 홀로 한 잔의 차를 대하고 앉았을 때 등.



지금 산의 능선을 따라 하늘에 선명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숲의 모습은 마치 키만 껑충 자라서 건들거리는 순박한 시골 머슴아 같아 뵈기도 하고, 소문의 꼬리를 달아 웅성거리는 군중인 것도 같고, 창과 방패를 세워들고 성곽을 지키고 선 고대의 병사들 같기도 하며 또 촛불을 켜든 성가대의 대열같이도 뵌다.



어깨와 어깨를 비비고 손에 손을 맞잡으며 바람결에 토해내는 그의 체취는 아침이면 티 없는 유년기를 뺨처럼 싱그럽고 안개로 앞가슴을 여민 양이 시골 새색시처럼 은근하고도 조신하다. 그리고 한낮이면 태양 아래 젊음의 혈기가 성글성글 무더기 지어 뿜어나듯 피어오르고, 해거름 녘이면 비껴가는 노을에 고개 숙여 묵상과 회오에 젖는 장년기의 뒤태 같은 쓸쓸함을 풍겨낸다. 또한 모든 물상이 고요로이 눕는 밤이면 숲은 죽음과 생명의 색실을 교직하는 신비의 신령처럼 엄숙하고 삼라만상의 정적을 홀로 다스리는 듯한 장엄함과 두려운 근엄이 깃들인다.



봄이면 연록의 속옷을 껴입고 여름이면 파티에라도 가려는 듯 눈부신 성장을 차리고 가을이면 생의 절정을 추수하는 다짐의 매무새로 옷을 벗어 대지와 뿌리를 덮어 재활의 봄을 기다리는 숲, 어김없이 사계에 순응하는 숲의 유순함이 득도한 인자처럼 지혜롭고, 쓰러지고 부활하는 끈질긴 생명력이 삶의 탄력을 부추긴다.



숲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 풍요의 대명사요, 안식의 별장인가 한다. 늘 열어놓은 대문처럼 누구나를 가리지 않고 낯선 이도 낯설지 않게 맞아주는 숲, 애태워 누굴 기다린 적 없으면서 많은 자연의 숨결로 누구든 맞을 채비가 돼 있어 여유롭고 서둘지 않는 숲, 그는 마치 넉넉하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속 같다. 그리고 또 언제 들러도 빈손, 빈 맘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신뢰의 지기와 같다.



사노라 둘러진 몇 겹의 갑옷, 채워진 가슴의 빗장이 못내 답답해질 때면 그의 품으로 나래를 접어보라. 서로의 안색을 읽으며 희로애락을 엮던 번거로운 인연의 고리들이 벗겨져 나가며 오직 진정한 자아와 만나 대화하고 휴식함으로써 마냥 홀가분해지리라. 그리고 먼데 흩어졌던 희미한 인연들이 추억의 고리를 물고 대화 속으로 끼어들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홀로 섰을 때 삶의 애정이 더 새록새록 살아나는 곳이다.



또 숲은 늘 깨어있는 생명의 화폭이다. 때 묻지 않는 그의 싱그런 숨결은 우리의 오관을 새롭게 열어주어 예사롭던 그의 오지랖이 늘 깨어있는 생명의 화폭임을 깨닫고 놀라게 한다. 가까이할수록 실망을 안겨주는 인간의 일과 달리 가까이할수록 오묘하고 신비에 찬 그의 품 안, 무성한 정적 속에 그토록 많은 생명이 질서와 조화로 꼼지락거리고 있음은 실로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푸드덕대며 정적을 깨는 꿩이며 산새, 날 잡아보란 듯이 달아나는 산토끼 다람쥐는 물론, 무당벌레, 개미 송충이, 거미, 지렁이, 노래기 등 내노라 내세우지 않는 소리 없는 미물과 이름이나 있을까 싶은 작은 뭇 생명이 어우러져 생을 화답하는 엄숙함에, 감히 풀잎에 앉거나 징그럽다는 표현조차 송구스러워진다. 그리고 왜소한 삶이 꿈꾸는 자신이 스스로 왜소한 미물이 되어 생명의 존엄과 겸허를 깨우친다. 숲은 그래서 왜 사는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듯 모를 듯 말해주고 열병을 않지 않고도 실망하지 않고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숲의 머리 위로 얼핏얼핏 조각 진 구름들, 이 구름의 진실이 숲의 가지들 끝에 걸려 퉁긴 가야금 현처럼 애처로이 우는 날은 숲도 마냥 가슴이 시리다.



-하루는 사랑하였고, 하루는 미워하였나이다. 하루는 헤어졌고 그리곤 잊었나이다.-



저무는 노을에 실려 덧없는 삶의 앙금을 실바람에 헹구며 흐르는 구름, 숲의 가지 끝으로만 오던 구름이 어느 날 비가 되어, 나무들의 발치에 엎딘 돌 위에 내리면, 오랜 세월을 침묵하던 돌도 뜨거움이 걸린 목구멍 밖으로 숲만이 알아듣는 소리를 만들어 비안개 속으로 모락모락 그의 애소를 지펴 올린다.



-뜨거운 열망, 안으로 잠재워 흐르는 세월 굽어보며, 먼 훗날 비상의 나래 펴고 치솟을 꿈을 위해 지금은 다만 무겁게 놓인 한 개의 돌이 뿐이라는-



짐승처럼 우짖는 돌의 외침이 숲속을 안쓰러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숲은 이럴 제 마른침을 삼켜가며 신열을 앓고 그 품속 생명의 설친 잠들을 달래노라 설레고 안간힘을 쓴다. 그래도 숲은 그의 아픔을 숨겨놓고 인간의 수고의 땀을 닦는다.



나는 이제 헤아리리라. 한 여름의 폭양, 풍우, 한설, 동짓밤 긴 어둠 속에서도 외로이 버텨 온 인고의 그 긴 터널, 푸르름의 풍요 뒤에 숨은 그의 빛나는 상흔을. 대지의 젖줄에 뿌리를 내리고 죽지 않는 부활의 생명을 다스려온 숲. 언제나 그 넉넉한 품속을 들추고 소리 없이 많은 애기를 쏟아내어 주는 숲.



그 안에 참으로 무거웠던 삶의 절규, 발돋움하는 삶의 열정, 몇 번이나 돌아눕던 어지런 꿈, 어디론가 소멸되어 가고 조금씩만 기뻐하고 조금씩만 슬퍼하던 조심스런 이승의 잠긴 음성이 꿈처럼 환히 툭 트여 오기도 한다. 마음의 주인이지 못하고 흔들릴 때면 농부가 토양을 고르듯 고른 숨결을 되찾아주는 다감한 숲, 촛불처럼 주위를 밝히며 사위어가는, 땀의 목숨을 위해선 한없이 만나야 할 숲이기도 하다.



바람은 나뭇가지들을 이리저리 헤살 짓고 나뭇가지들은 서서히 하늘을 베어 물고 청록의 푸르름으로 아침을 물살 지운다. 내 영혼도 숲일 수 있을까. 어떠한 어둠도 한 아름 감싸 안을 수 있는 아늑한 요람일 수 있을까. 새들도 와서 놀고 빛들도 내려와 열매를 익히는 아, 내 영혼도 풍요의 숲일 수 있다면.



(김 미정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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