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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이 필요하다
12/28/2019 06:02
조회  343   |  추천   2   |  스크랩   0
IP 73.xx.xx.242

이런 유머가 있다. 어느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다가 숨이 막혀 죽었다고 한다. 이유를 알고 보니 악보에 쉼표가 없었다고 한다. 악보 중간에 나오는 쉼표도 음악의 일부이다. 쉼표는 노래의 여백이다. 여백 없는 악보, 쉼표 없는 악보는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질식하게 한다.



빈 곳을 보면 견디지 못하고, 여백을 보면 무엇이든지 구겨 넣으려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이 편지를 쓰면 띄어쓰기나 줄 바꿈 없이 빽빽이 채운다. 그 편지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그것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숨이 막힐까?



그림과 사진에도 여백이 있는 것이 넉넉하고 좋다. 여백은 독자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창조의 공간이다. 흔히들 동양의 미학은 ‘여백의 미’라고 한다. 넘침보다는 모자람을 선택한 것이다. 동양화는 선의 예술이요, 서양화는 면의 예술이다. 동양화는 선이 중심인지라 면이 비어 여백이 있다. ‘없음’으로 인해 ‘있음’이 빛난다. 붓을 대지 않은 흰 여백은 감상하는 사람이 들어갈 공간이다. 감상하는 사람은 그 여백 속으로 들어가서 하늘이 되기도 하고, 물이 되기도, 산이 되기도 한다.



책의 여백도 그렇다. 독자는 그 여백에 생각과 감동을 메모하며 책에 동참한다. 시도 절제와 여백이 있는 짧은 시가 긴 시보다도 많은 울림을 준다. 이론도 그러하다. 웃을 수 있는 여유와 여백이 없는 이론은 복수와 증오에 불타오르는 이론이다.



사람도 여백이 있는 사람이 좋다. 틈이 없고 매끈한 유리 같은 사람에게는 이웃의 눈물이 스며들지 못한다. 넉넉한 무명천같이 여백이 있는 사람은 이웃의 눈물과 습기를 흡수하며, 소통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된다. 손해 볼 줄도 알고, 낮아질 줄도 아는 그 넉넉함이 사람들을 품는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머리에 기억되지만, 이렇듯 배려의 여백이 있는 사람은 가슴에 남는다.



뿐만 아니다. 나무가 서로 살아가는데 간격이 필요하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구속하듯 구속하지 않는 간격, 애태울 정도의 거리가 있는 미학이 관계의 미학이다. 열정에 불타는 사람, 의욕이 강한 사람이 역사를 변화시킨다. 그런데 이런 부류의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다 태워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승리의 깃발을 꽂기 위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마침내 고지에 올라보니 전우들이 다 죽어 있다.



예수님은 여백의 넉넉하심이 가득하신 분이다. 황홀하게 타오르지만, 곁 물상을 파괴하지 않는 성스러운 불꽃, 열정으로 뜨겁지만 날카롭지 않은 리더, 이렇게 규형 잡힌 리더쉽을 가진 분이 예수님이셨다. 예수님보다 바쁜 생애가 있을까? 예수님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인생이 있을까? 예수님은 이러한 무게 속에서도 여백이 있으셨다.



우리의 신앙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신앙의 여백은 내가 다 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을 가리킨다. 삶을 살다 보면 내 손을 떠난 일, 즉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내 손을 떠난 빈 공간이 바로 하나님이 전적으로 일하시는 공간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하며 기도하는 것이 겸손한 삶이다.



또한 기도했으면 믿고 기다려야 한다. 기도할 때도 며칠까지 해내라고 하나님의 팔을 비틀며 협박하는 듯한 기도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기도이다. 주님이 역사하실 틈을 자신이 꾸역꾸역 메꾸려 하는 교만함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공간을 인정하고 기다리며 바라보는 ‘신앙의 여백’이 필요하다. 여백이 클수록 하나님의 도우심과 채우심도 크다. 빈틈없는 나의 완벽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중요하다.



(한 재욱 지음. <인문학을 하나님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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