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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해군장군 이순신
03/20/20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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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아! 대한민국이 그냥 저절로 생겨난 나라인줄 아느냐?








세계 최고의 해군장군 이순신” (1)


우리가 진짜 몰랐던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배경과 경과를 살펴보고, 이순신의 불패신화와 백의종군 내막을 들어본다.



세계 최고의 해군장군 이순신 (2) 명량


이순신과 구루시마 등 영화 속 등장인물 집중탐구!

아울러 조선과 왜군의 해전술 비교를 통해

명량, 그 기적의 승리를 파헤친다.



보충설명 by Peter Hong

< 이순신은 누구인가? >

이순신 장군님은 2323! 그것도 압도적인 전력의 열세에서 싸워서 100퍼센트의 승률입니다. 게다가 피해도 훨씬 적지요. 불패명장, 불패제독이라고 불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군님이십니다.

 

* 도고 제독의 변론

러일전쟁 당시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괴멸시켜 일약 세계적인 해군 지휘관이 된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자신에 대한 영웅적인 평가가 있을 때마다 이순신 장군을 거론하며 겸손해하곤 했다.

 

그는 자신이 영국의 유명한 해군제독 넬슨에 버금가는 군신(軍神)이라는 말을 듣고

"영국의 넬슨은 군신(軍神)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제독이 있다면 오직 이순신 장군뿐이다. 이순신 장군과 비교한다면 나는 일개 하사관도 못 된다"

 

당시 도고 제독의 함대는 정부가 외국에서 빚을 끌어다 전함을 사들이고 해군을 적극 육성하는 등 국가적, 국민적인 차원에서 더할 나위 없는 지원을 받아 상당한 전력을 보유했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조정의 지원도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수적 열세에 놓여 있던 함대를 이끌고 다수의 일본 수군을 상대로 눈부신 전공을 세웠다. 훗날 조정에 불려가 감옥에 갇히고, 수군을 포기하고 육지에서 싸우라는 조정의 명이 떨어졌지만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사오니...”라는 말을 남기고 분전하여 결국 일본 수군과 23번 싸워 23번을 모두 이기는 세계 해전사에 유례가 없는 전적을 남겼다.

 

아울러 도고 제독은 자신을 이순신 장군과 비교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변론을 펼쳤다.

 

"나를 조선의 이순신 장군에게 비교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소리이다. 나는 천왕 폐하의 부름을 받고 온 국민의 정성어린 지원으로 단 한 번의 싸움을 이겨냈다. 그러나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조정에서조차 버림받고 백성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무기를 만들고 스스로 식량을 조달하여 수없이 일본 군대를 쳐부숨으로써 그가 지키는 지역에는 일본 군대가 한 발짝도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했다. 당대의 어떤 과학자가 거북선이라는 우수한 과학병기를 만들 수 있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군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충성심과 애국심을 놓고 볼 때, 동서고금을 통해 이순신 장군에 비견될 인물이 그 누가 있겠는가? 죄인복을 입으면서까지도 죽음으로써 조국에 최후까지 봉사하지 않았던가? 나를 이순신 장군에 비교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엄연한 모독이다"

 

* 일본 해군준장 사토-데쯔라로의 이순신 장군 논평

1926"조선 지방행정" 62월호 "절세의 명장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인격, 뛰어난 전략, 천제적인 창의력, 외교적인 수완 등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절세의 명장이다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해군장군인 나로서는 평생을 두고 경모하는 바다의 장수로 네덜란드의 Ruyter Michiel과 조선의 이순신이 있다. 그중에서 갑과 을을 정하라 한다면 서슴지 않고 이순신을 갑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영국의 넬슨이 세계적인 명장으로 명성이 높은 것은 누구나 잘 아는 바이지만 그 인격에 있어서나 창의성에 있어서는 도저히 이순신의 짝이 될 수 없다.

 

프랑스의 장군 "스후란", 미국의 장군 "아랏카트"와 같은 세계적인 명장들도 존경할 만하다 하지만 넬슨 이하의 인물이다. 로이테르는 인격과 역량, 경력도 이 장군과 비슷하지만 장군으로서 필요로 하는 창의성에 있어서는 한 수 꺾이는 것같이 보인다. 이순신 장군은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목적을 좌절케 하였으며 바다를 제압하는 것이 국방상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실적으로 증명한 명장이었는데 중도에서 모함을 당하여 백의종군 하였으나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고 고통을 달게 받았으니 이 한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장군의 인격의 고매함을 알 수 있다.

 

장군은 군기에 엄하고 위엄이 있으며 부하 사랑하기를 친자식같이 하였으며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매사에 정성으로 임하는 모범적인 장군이었다.

 

장군은 평소 그의 뜻을 전하기를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서 나라에 쓰이게 되면 죽음으로 충성을 다 할 것이오, 만약 쓰이지 못하면 들에서 밭갈이 하는 것으로 족하다. 사람에게 아부하여 영화를 도모하는 것은 나의 큰 수치다"라고 하였으니 이 한마디로 그의 인격을 알아보기 충분하다.

 

* 영국 해군준장 G. A. Ballard 의 논평

이순신은 서양 사학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원칙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의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이 아니었다. 영국인에게 Nelson과 견줄 수 있는 해군제독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이순신이 동양의 위대한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 ·서양의 혁혁한 전공을 세운 해군사령관의 비교 >

* 동양의 이순신 장군(1545~1598)

본관 덕수(德水), 자 여해(汝諧), 시호 충무(忠武), 서울 출생이다. 1576(선조 9) 식년무과(式年武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권지훈련원봉사로 처음 관직에 나갔다가 1591(선조 24) 유성룡의 천거로 절충장군·진도군수 등을 지내고 같은 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승진, 좌수영에 부임하여 군비 확충에 힘썼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에서 적선 30여 척을 격파하고 이어 사천에서 거북선을 처음 사용, 적선 13척을 분쇄한 것을 비롯하여 당포에서 20, 당항포에서 100여 척을 각각 격파하여, 자헌대부에 승품되고 7월 한산도에서 적선 70척을 무찔러 한산도대첩의 큰 무공을 세웠다. 1597년 원균의 모함으로 서울에 압송되어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으나 우의정 정탁(鄭琢)의 변호로 도원수 권율(權慄)의 막하에서 두 번째 백의종군을 하였다. 왜군이 다시 침입하여, 정유재란 때 원균이 참패하자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되어, 12척의 함선과 빈약한 병력을 거느리고 명량에서 133척의 적군과 대결, 31척을 부수었다.

 

다음 해, 고금도로 진을 옮겨 철수하는 적선 500여 척이 노량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 진인의 수군과 연합작전을 펴, 적군을 기습하여 혼전 중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 서양의 넬슨제독(1758~1805)

노퍽 출생. 1770년 해군에 입대하여 1780년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후, 프랑스의 혁명전쟁에 종군하여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싸웠다. 1794년에는 코르시카 섬 점령에 공을 세웠으나 오른쪽 눈을 잃었으며, 1797년의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도 수훈을 세웠으나 오른쪽 팔을 잃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나폴레옹 대두와 더불어 프랑스 함대와 대결하는 중심인물이 되었다. 1798년 나일강 입구의 아부키르만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하여 나일강의 남작이라 불렸다. 그러나 나폴리 체재 중 알게 된 해밀턴 부인과의 친교로 일시 군무(軍務)를 포기하고 귀국하였다. 1801년부터 다시 해상에 나갔고, 같은 해에 자작이 되었으며, 1803년부터는 지중해 함대 사령관으로서 프랑스 함대를 견제하였다. 1805년 봉쇄한 풀롱항()에서 탈출한 프랑스 함대를 추격하여, 그 해 1021일 트라팔가르 해협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 함대를 포착, 대담한 분단작전으로 이를 격멸시켰으나, 완승 직전에 적의 저격을 받아, “하나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라는 최후의 말을 남기고 기함 빅토리아호()에서 전사하였다.

 

 

·서양의 두 장군을 비교하여 보았습니다.

여러 나라의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생도들에게 역사적으로 유명한 세계 4대 해전(世界四大海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1) B.C. 480년 그리스의 데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제독의 살라미스(Salamis)해전

2) 1588년 영국 하워드(Howard) 제독의 칼레(Calais) 해전

3) 1592년 거북선을 앞세워 승리를 거둔 이순신(李舜臣) 제독의 한산대첩(閑山大捷)

4) 1805년 영국 넬슨(Nelson) 제독의 트라팔가(Trapalgar) 해전 등이 있습니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를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구한 세계적인 위인으로 존경 받고 있으며, 그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거북선은 미국 워싱톤의 전쟁기념관(War Memorial Museum), 영국 해사박물관(Maritime Museum), 중국, 독일, 불란서, 캐나다 등 세계 각지의 역사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이순신장군의 전공은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해전사의 선봉에 서있습니다.

 

넬슨 제독은 영국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전장에 나섰고 프랑스, 에스파냐 연합함대와 비슷한 전력에서 이긴 것입니다. 물론 넬슨 제독도 영국이 자랑할 만한 세계적인 전공을 세운 것이지만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조정에서 버림받은 처지에서도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애민정신으로 23번 싸움에 단 한 번도 진적이 없으니 그 경이적인 이순신 장군의 전공은 전 세계 해전사에 누구도 따를 수없는 전적을 세운 것입니다.








구루지마 미치후사 없는 영화 명량!’

상상할 수 있을까요?

일찍이 그 어떤 사극에서도 연출된 적 없는 카리스마

그리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명량의 극적 재미는 구루지마 미치후사에서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관점으로

영화 명량을 재구성해보았습니다.


   

< 설민석의 왜곡된 KBS-TV 「제주 4.3사건 특강」에 대하여 >

설민석 요놈도 도올 김용옥과 똑같은 좌~빨문빠ㅆㄲ였군! ㅋ

http://blog.koreadaily.com/view/myhome.html?fod_style=B&med_usrid=peterhong7523&cid=1099304&fod_no=28



너무나도 잘못된 문재인의 역사의식

“진짜 빨갱이 문재인!

http://blog.koreadaily.com/view/myhome.html?fod_style=B&gellery_style=&med_usrid=peterhong7523&fod_no=28&c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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