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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171): 신학논쟁은 도토리 키재기
01/14/201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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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171): 신학논쟁은 도토리 키재기

 

미국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중에, “사람들과 얘기할 때 정치얘기와 종교얘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각자 정치적인 견해와 종교적인 입장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치얘기와 종교얘기를 하다가 견해의 차이때문에 의견충돌이 일어나고 논쟁이 벌어지고 말다툼으로 확대되기 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친구중에 창원에 있는 큰 교회의 장로로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가정도 화목하고 인품도 좋아서 저는 그 친구를 명품인간이라 부르며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그 친구랑은 중학교때부터 알고 지내 왔기때문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편하고 즐거운 귀한 친구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랑 제가 한 가지가 틀려서 요즘 티격태격 말다툼을 할 때가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그 친구와 저는 신학적으로 견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카톡으로 그 친구에게 전화하여, “새해 복 많이 받아라.”하는 덕담을 하다가, 제가 그 친구에게, “나 치즈공장 생활은 올해 6월까지만 하고, 7월 부터는 다시 미국인 교회 목회로 돌아 간다.”고 얘기했더니, 그 친구는 , 목회하기 싫고 설교하기 싫다고 목회를 떠나지 않았냐? 이제 너도 복음주의 신앙으로 돌아 온나.”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니가 좋아하는 복음주의 신앙에도 장단점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진보적인 신앙에도 장단점이 있다.”하고 말하니 그 친구는, “너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육체적인 부활도 믿지 않는다면서 어떻게 목사 생활하겠느냐?”하는 말을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그냥 허허웃고 넘어갔으면 좋았을텐데 저는 말대꾸를 하는 바람에 신학논쟁으로 진행되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동정녀탄생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역사적인 기정사실로 알고 있지만, 사복음서중 제일 먼저 씌여졌다는 마가복음서에는 예수의 탄생이야기 자체가 나오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야기는 예수의 인물됨을 강조하기 위해 나중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가령, 로마신화에 의하면, 로마를 건국했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는 어머니인 실비아가 전쟁의 신이었던 마르스에게 겁탈을 당해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고, 그리스 신화에는 제우스 신이 알크메네라는 여자와 자는 바람에 헤라클레스가 태어났다는 신화가 있고, 고구려를 건립한 동명왕 주몽은 알에서 태어났다는 탄생설화가 있고, 부처님은 어머니의 옆구리를 통해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것처럼, 예수의 동정녀 탄생도 후대사람들이 만들어 낸 탄생설화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학이 발달되기전에 살던 고대인들은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정자와 난자의 존재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여자가 신과의 교접을 통해 영웅적인 인물을 탄생시켰다는 신화적인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신과 여자와 결합하여 예수가 태어 났다고 하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지 마라. 그런 허황된 신화를 곧이 곧대로 믿는 것이 신앙이라면 나는 그만 둘란다. 그렇게 믿는 것은 무지몽매한 맹신이고 광신이지 진정한 신앙은 아니다.”하는 말을 듣기 쉬울 것입니다.

 

왜 후대의 사람들은 유태교에서 뛰쳐나온 파격적인 설교가였던 예수를 동정녀탄생으로 태어난 신적인 존재였다고 신격화시켰을까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 분의 가르침과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비범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는 말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고 신들린 사람, 하나님의 성령으로 가득찬 하늘이 내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서를 최초로 쓴 사람이 신앙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예수탄생 이야기를 만들어 내어 붙였던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제 친구는 또 예수의 육체적인 부활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저한테 말을 하더군요. 저는 예수가 육체부활을 하여 승천을 했다면, 지금 우주공간 어디쯤 있겠느냐? 우주선을 타고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우주에는 산소가 희박하고 추워서 사람의 몸이 얼어버리거나 산소부족으로 죽을텐데 육체의 몸을 가진 예수도 별 수 있겠냐?”하며 비위를 거슬리는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육체적인 부활이 대수라면 구약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은 선지자 엘리야의 도움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있고, 신약에는 예수의 도움으로 나사로가 무덤에서 죽은지 나흘만에 다시 살아 났다고 하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있고, 교회당 3층 난간에서 바울의 설교를 듣던 유두고는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바울이 다시 살렸다는 이야기등 죽었다가 육체적으로 다시 살아난 이야기는 고대사회에서 흔히 있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N.T. Wright 같은 신약신학자는 예수의 육체적인 부활을 믿는다는 전통적인 신앙고백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예수의 육체부활 이야기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John Dominique Crossan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엘살바도르의 군사독재치하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하나 둘씩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쓰레기더미에서 시체로 발견될때 카톨릭 교회의 주교이던 Oscar Romero주교는 분연히 일어나, “독재자여, 시민들을 그만 죽이시오.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시민들을 그만 죽이시오하며 독재에 항거하는 목소리를 높혔습니다.

 

그는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 군부 독재자가 보낸 암살단의 총탄을 맞고 죽었는데, 그가 죽기전 얼마전에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군부독재가 나를 죽인다면, 나는 엘살바도르의 민중속에 다시 부활할 것이다.” (“If they kill me, I will rise again in the Salvadoran people.”)

 

Oscar Romero주교가 내 육체는 죽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정의와 평화를 지향했던 정신은 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후세사람들을 통해 그 정신은 면면히 살아 있을 것이다.”는 뜻으로 한 말일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도 예수개인의 육체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허황되고 가소로운 신화이야기에 머물것이 아니라, 예수가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인류사랑의 정신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그를 흠모하고 따르던 사람들, 성 프랜시스, 마틴 루터 킹목사, 마더 데레사, 손양원 목사 그외에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친구는 또 옛날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을 못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양심에 입각하여 선한 양심을 갖고 살던 조선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고, 악한 양심을 갖고 살던 사람은 구원받지 못해 지옥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예수의 이름이 전 세계에 전파가 되었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없이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가고 예수만 믿어야 천당간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런 소리는 무식한 목사들이 하는 설교에 세뇌당한 무지몽매한 광신자들이나 하는 소리다. 사우디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없어서 그 나라의 국민으로 살려면 이슬람 종교를 믿어야 하는데, 사우디 국민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지 않고 이슬람 신앙을 믿다가 죽었다는 이유로 모두 지옥간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너는 기독교인이니까 속편한 소리하지, 니가 사우디에서 태어나 이슬람문화권에서 이슬람신앙인으로 평생을 살고 죽었다는 이유로 지옥에 간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느냐?”하는 말도 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나 달라이 라마와 같은 인류의 스승들도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지옥간다는 말은 무식한 기독교인들이나 하는 말이지,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의 생각과 다르다 .” (이사야서 55:8)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저는 또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길이 있다. 내가 가는 길만 산정상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주장하면 다른 사람들이 정상에 오르는 길에 대해 몰라서 하는 소리가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 너처럼 종교다원주의를 믿는 사람은 별로 안되고 기독교만이 구원을 주는 종교라는 믿는 기독교인들이 대부분이다.”고 하더군요.

 

저는 중세기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했고,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해와 달과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하는 천동설을 믿지 않았냐? “지구는 둥글고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번씩 돌아간다.”고 하는 지동설을 주장했던 사람은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와 같은 선각자들 뿐이었다. 이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들로 부터, “지구가 둥글다거나 지구가 돈다고 하는 낭설을 퍼뜨리고 다니면 잡아 죽인다.”는 협박을 받았지만,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하며 진리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지구가 평평하여 지구끝에 이르면 폭포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을 믿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구는 둥글고 지구는 우주는 중심이 아니다.”란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 친구는 기독교만 믿어야 구원을 받지 타종교를 믿으면 구원을 못받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기독교에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고, 타종교에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듯이, 구원은 어느 한 종교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교를 믿던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 점을 멀리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제 친구가 저한테 종교다원주의는 틀렸다.”는 말을 하길래 저는 그 친구에게 우물안의 개구리에게 넓은 바다에 고래가 있다는 말을 하면, 개구리가 헛소리 마라!”고 불쾌해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가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는 우물안 개구리 상태에서 벗어나 기독교 밖에 있는 유태교, 이슬람, 불교, 유교, 도교와도 어울리면서 넓고 깊은 바다와 같은 신앙의 세계를 헤엄쳐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원수는 죽여도 좋다.”고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지금 기독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좋은 종교라고 봅니다. 진정한 신앙이란 어떤 교리나 신조를 믿는 것에 있다기 보다는 조용히 친절과 사랑을 실천하는데에 있다고 봅니다.

 

신앙에 대해 티격태격하는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너희들 다 도토리 키재기다! 나도 조용히 있는데, 너희들은 무슨 말이 그리 많냐?”고 하실 줄 모르겠습니다. “노자는 모르는 사람은 말이 많고, 진짜 아는 사람은 말이 없다.”고 했으니, 저도 이제 말을 마쳐야 하겠습니다.

 

“A wise man once said nothing.” (지혜로운 사람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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