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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186): 나의 부업 이야기
11/14/20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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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186): 나의 부업 이야기

 

제가 일하는 치즈공장에 남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젊은이가 있습니다. 이름이 이브라힘인 것으로 보아 무슬림일 것으로 짐작했는데 제 짐작이 맞았습니다. 이브라힘은 휴식시간에 화장실에서 손과 얼굴을 물로 씻은 후 손에 물을 묻혀 양말을 신은 발꿈치를 쓱 닦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이브라힘에게 니가 발꿈치를 손으로 닦는 것은 종교적인 의식이냐?”하고 물어 보았더니 그렇다.”고 대답하더군요. “어떤 의미에서 손으로 발뒤꿈치를 닦느냐?”하고 계속 물어 보고 싶었지만 괞히 캐어 묻는 것 같아 그만 두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어두컴컴한 샤워장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이브라힘이 들어 오더니 종이판자를 펼치 놓고 무릎을 꿇고 알라신에게 기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져서 자리를 비껴 주었습니다. 제 판단이 틀렸는지 모르지만 이브라힘은 자기만의 신앙을 고수하는 것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브라힘에게 니가 알라신에게 기도할 때 무슨 내용으로 기도하냐?”하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괞히 종교적인 문제로 시비를 거는 것 같아 입을 다물었습니다. 보수적인 교회에 다니는 저의 미국인 친구인 Ron은 저한테 에이브러햄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자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Ron에게, “이브라힘은 자기가 믿는 종교가 있는데 우리가 기독교를 믿으라고 한다면 거부감을 가질 수 있으니 그러지 말자.”고 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만약 이브라힘이 기독교를 믿는 우리에게 너희가 믿는 기독교는 틀렸다. 내가 믿는 이슬람의 신인 알라를 믿으라고 한다면 우리 기분이 상하지 않겠냐? 그리고 이브라힘이 우리가 종교적인 문제로 자기를 불편하게 한다고 인사과에 가서 불평을 털어 놓을 수도 있다. 만약 이브라힘이 이슬람 신앙에 불만을 느끼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호기심을 보인다면 그때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 현재로서는 기독교 신앙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길은 이브라힘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 주는 길밖에 없는 것 같다.”Ron에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이 말도 잔소리가 될 것 같아 그만 두었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람 혹은 아브라함이 이슬람권에서 이브라힘으로 불리어 지고, 기독교 문화권인 미국에서는 에이브러햄이라고 불리어지니 종교의 뿌리는 같아도 곁가지가 퍼지면서 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아프리카출신인 이브라힘은 자기 나라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다가 가짜 여권을 만들어 멕시코를 거쳐 미국에 불법입국을 시도하다가 LA공항에 도착하는 즉시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가 2년을 지냈다고 했습니다. 2년의 감옥생활을 마친 후 미국에 올 때 가져온 돈으로 변호사를 고용하여 영주권을 얻게 되었다고 하며 그 후에 미국에서 닥치는데로 일을 하여 생활비를 벌었다고 저한테 말해 주었습니다. 이브라힘은 소도살장에서 큰 칼로 소의 목의 따서 피를 쏟는 일도 해 보았고, 트럭 운전일도 하다가 사고를 일으켜 그만 둔 적도 있고 지금은 저와 같이 치즈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브라힘은 치즈공장일외에도 부업으로 심신장애자들을 돌보는 간병인 일을 하면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하면서 저보고도 한번 해 보라고 했습니다. 이브라힘은 자기가 하는 일은 심신장애인이 사는 위탁시설에 가서 환자가 밤에 자는 동안 간병인 방에서 잠을 자다가 환자가 일어나 약이나 간식을 요청하면 도와 주고 환자가 잠을 자면 간병인도 잠을 자면 되는 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공장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부업을 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환자의 집에 가서 잠만 자고 나오면 되는 쉬운 일이라는 말을 듣고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브라힘이 알려준데로 간병인을 모집하는 인터넷 웹싸이트를 방문하여 제 이력서와 구직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있지 않아 간병인을 공급해 주는 사무실에서 연락이 와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게 된 일은 환자가 자는 방 옆에 있는 방에서 잠을 자다가 환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응급상황때만 환자를 도와주면 되는 파트타임 취침조 (sleep shift)일이었습니다.

 

심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일이었기 때문에 기본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시간에 맞추어 약을 주고 기록하는 법, 환자가 말이나 행동으로 공격성을 보일 때 대처하는 법, 천재지변이나 불이 났을 때 대피하는 법등에 대한 교육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보살피게 된 환자는 36살 먹은 백인 젊은이였습니다. 이 젊은이는 정신박약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신체적으로는 36세의 젊은이였지만 정신연령은 5살 정도되는 사람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24시간 간병인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말도 잘 못하고 글도 읽을 줄 모르지만 화가 나면 주먹으로 벽을 치고 발로 냉장고를 차서 가족들이 보살펴 줄 수 없어서 위탁시설에 맡겨져 간병인의 보호와 감시를 받으며 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하루에 세차례 약을 먹어야 하고 위탁시설에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것은 돈이 많이 드는데 정부의 사회보장제도에서 이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젊은이가 저를 처음 보았을 때 저에게 겁을 주어 저를 이용해 먹으려고 그랬던지 아니면 자기를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그랬던지 처음 부터 욕을 하고 고함을 지르며 벽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냉장고를 치면서 기선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이 젊은이는 체격이 작아 제가 겁을 먹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정신연령이 5살 정도 되는 이 젊은이는 단순하여 화를 냈다가도 쉽게 풀어지고 제 말을 잘 따르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가 양말과 신도 신켜 주고 면도도 해 주고 머리도 빗겨 주었습니다.

 

저는 그 젊은이와 함께 간단한 맨손체조를 하다가 예전에 배우다가 그만둔 태권도 기본운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젊은이가 여자 간병인과 말다툼을 하다가 그 여자를 때리는 일이 있었는데 그 간병인이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갇혀 있다가 정신병원으로 이감되어 가서 장기간 머무는 바람에 졸지에 저는 그 젊은이를 보살펴 주는 부업을 잃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다른 위탁시설에서 간병인이 부족할 때 주말에 저한테 연락이 오면 간병인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위탁시설에서 지내는 환자들 중에는 여러가지 심신장애를 안고 살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장애인은 가위나 칼을 부러뜨려 삼키는 바람에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는 젊은이도 있고 어떤 장애인은 기르던 애완동물을 발로 차서 죽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여자 심신 장애인은 화가 나면 자기 팔을 물어 뜯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폐증이 심한 젊은 장애인은 말을 전혀 하지 못했고 나이가 스무살이 넘어도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고 있으며, 나이가 삼십이 넘은 백인 청년은 용변을 본 후 휴지로 뒤를 닦을 줄을 몰라서 제가 비닐장갑을 끼고 화장지로 뒤를 닦아준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여자 장애인은 저한테, “약을 안 먹고 변기에 버리겠다. 오늘 저녁 나 감옥 갈란다. 나 오늘 자살해 버리겠다.”하며 심통을 부리다가 제 풀에 지쳐서 나중에는, “약을 먹고 잘란다.”하며 약을 순순히 먹는 일도 있었습니다.

 

미국에는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가족들도 보살펴 줄 수 없는 심신장애자들이 위탁시설에 맡겨져 간병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가족들이 중증의 심신장애인들을24시간 보살펴 주느라 가족들의 수고와 희생과 사랑이 무척 클 것이라 짐작됩니다.

 

오래전에 심한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딸을 목욕시키면서 잔잔하면서도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일본인 어머니와 딸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말도 못하는 딸을 사랑으로 보살피면서 얻게 되는 기쁨이 크다.”는 말을 하는 것을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먹구름을 헤치고 비쳐지는 햇살처럼, 불운을 헤치고 빛나는 사랑이 어둔 세상을 밝혀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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