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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지막 춤
11/30/201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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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

어느새 ‘이슬’(백로)의 계절을 지나 ‘서리’(상강)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이야 하루해의 길이나 쌀쌀함의 정도에 따라 갈아입는 옷으로 때를 짐작하게 되지만, 농촌의 일손은 그야말로 ‘부지깽이도 뛰는’ 계절이지요. 서리가 내리고 나면 모든 곡식이 다 타죽고 말기에 서리가 내리기 전 서둘러 거둬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때를 안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지금의 내 때가 언제인지를 안다는 것, 내 모습과 빛깔과 무게가 얼마쯤이어야 하는지를 안다는 것, 지금 이 때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안다는 것, 철이 든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자신의 때를 알지 못하거나, 나잇값을 못하면 언제까지나 철부지인 셈이지요.

‘철들자 망령’이라는 우리말은 생각할수록 마음이 조심스러워집니다. 긴 세월 보낸 뒤 어렵게 철이 들었는데, 철이 든 뒤 곧바로 찾아온 것이 망령이라면 그것처럼 허망한 삶도 드물겠다 싶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겨우 알게 되었는데 그 삶을 살아갈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죽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한 번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본인뿐 아니라 바라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안쓰럽게 만듭니다.

가을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서는 계절입니다. 푸름과 무성함을 뽐내던 나뭇잎들이 하나둘 바람을 탑니다. 무엇을 비운 것인지, 나뭇잎들은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물들인 뒤 떨어집니다. 돌아서는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나무의 이름이 다르듯 나뭇잎 모양은 다르지만 나뭇잎들의 생각은 모두가 같은 모양입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나는 모습은 새가 나는 모습 같기도 하고, 새가 나무 아래로 내려앉는 모습은 한 장의 나뭇잎 같기도 합니다. 나뭇잎은 그동안 자신을 찾아왔던 새를 눈여겨본 듯 하고, 새는 지는 나뭇잎이 아쉬워 오래 바라본 듯합니다. 돌아서는 길, 나뭇잎과 새는 문득 서로를 닮았습니다.

나를 키워준 곳은 대지, 대지의 품에 안기는 나뭇잎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때 되었다 싶으면 주저함 없이 안깁니다. 대지의 품에 안기는 나뭇잎의 흔쾌함은 춤으로 나타납니다. 플라타너스의 손바닥만한 잎새에서부터 자작의 자잘한 잎새에 이르기까지 모든 잎새는 춤으로 집니다. 억지가 없습니다. 마지막 걸음이 춤이라니요! 우리의 생도 마지막 걸음을 눈물이나 고통이 아닌 춤으로 마감할 수 있다면, 춤추듯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욕심처럼 바람을 가져봅니다.

영어로 ‘사람’을 뜻하는 'human'이나 ‘겸손’을 뜻하는 'humility'는 라틴어 '후무스'(humus)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후무스는 흙, 먼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우리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흙에서 와 흙으로 돌아갈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지내는 것이 겸손한 삶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겨집니다.

가을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서는 계절입니다. 나뭇잎이 그러하듯 우리 또한 흙에서 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하여 우리의 마음이 한결 푸근하고 겸손해지는 이 계절되기를 기대합니다.

- 한희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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