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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띄우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박근혜
10/20/201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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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광고모델 박근혜, 대한민국 이끌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 2010년 10월 20일(수) 오후 03:31
[오마이뉴스 김당 기자]


비키니 입은 박근혜, 광고모델 박근혜가 인터넷에서 화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경상남도 진해 저도(楮島)에서 비키니를 입고 찍은 사진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국정홍보처가 발간한 <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7권(1967~1968년)에 게재된 이 흑백사진은 발간 당시에도 화제가 된 바 있다.


인터넷과 일부 언론에서는 이 사진을 박 전 대표가 '1967년 7월 당시 성심여중 2학년 때 찍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1967년이면 성심여고 1학년 때다.  박근혜는 1970년에 성심여고를 졸업하고 그해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박정희의 가족 휴양지, 진해 저도 바닷가


박정희 대통령은 해군 휴양지였던 이곳을 1960년대부터 가족 휴양지로 애용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펴낸 박근혜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2007년, 위즈덤하우스)에도 저도의 바닷가에서 아버지의 선글라스를 끼고 동생들과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1970년대 당시 박 대통령을 수행했던 한 수석비서관에 따르면, 박정희는 저도에서 1~2주일 여름휴가를 보냈는데 휴가 말미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단을 이곳으로 초청해 기자들에게 휴가 구상을 밝히거나 간담회를 하곤 했다. 저도에서 박정희는 밤에는 퉁소를 불고 낮에는 그림을 그리면서 망중한을 즐겼다. 박근혜는 당시 아담한 백사장에서 가족들과 해수욕을 즐기거나 배드민턴을 즐겨 쳤다.





저도는 진해 해군기지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천혜의 섬이다. 그러나 앞서의 수석비서관은 1970년대 후반 저도 인근에 북한 잠수함이 출몰한다는 첩보와 경호실의 권유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 가족이 저도가 아닌 설악산에서 여름휴가를 지낸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북한 잠수함 출몰 첩보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통령 전용 휴양지를 청남대에 조성하게 된 요인이 되었다. 나중에 노무현 대통령은 청남대를 국민에게 돌려주었다.


박 근혜는 가톨릭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성심여중고를 졸업하고 역시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서강대에 입학했다. 박근혜는 고교 때에 문과였으나 청와대를 방문한 한 박사가 "대한민국은 전자산업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말한 것에 영향을 받아 진로를 전자공학 쪽으로 바꾸었다. 그때만 해도 이공계에 진학한 여학생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서강대 이공학부의 '공부벌레' 박근혜


대 통령의 딸이라는 특수한 신분 말고도 거친 남학생들 틈새에 낀 홍일점(당시 여학생은 박근혜를 포함해 2명)이었던 그의 대학생활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4년간의 대학생활에서 단 하루였던 어느 봄날, 등교해 강의실로 가는 척하다가 경호팀의 눈을 피해 뒷문으로 빠져나가 명동 나들이를 감행한 '일탈'을 빼놓고는 청와대와 학교를 오간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었다.


흔한 미팅 한 번 나가지 못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온실 속의 화초'였다. 당시 대통령의 딸인줄 모르고 박근혜를 따라다녔던 한 남학생이 모처에 불려가 혼쭐이 났던 얘기가 '신화'처럼 전해진다. 박근혜 스스로 자서전에서 "자유가 제한된 생활을 받아들여야 했던 나는 지식을 쌓은 일에서 새로운 만족을 느꼈다"면서 '공부벌레 여대생'이 되어갔다고 술회했다.





"내 뜻대로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간 것은 후회 없는 선택이었지만 공부는 만만치 않았다. 전자공학과에 가기 위해 문과에서 이과로 바꾸었기 때문에 수학을 비롯해서 공부할 것이 남들보다 더 많았다." (62쪽)


박근혜, "후진타오 주석과 메르켈 총리도 이공계"





서강대 자연과학부와 공학부가 고3 수험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18일 중앙일간지에 낸 전면광고에는 박 전 대표가 환하게 웃는 모습과 함께 '박근혜, 74년 전자공학과 졸업'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일류를 넘어 초일류로-


서강대학교 이공계가 대한민국을 이끌겠습니다.


박근혜 74년 전자공학과 졸업


박 근혜는 서강대 이공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러니 '정치인 박근혜'를 떠나서 충분히 광고모델로 나설 만도 하다. 박근혜 자신도 이공계 출신에 자긍심을 갖고 외국의 이공계 출신 국가 지도자를 만날 때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이를테면 2005년 5월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만나서는 "우리는 둘 다 이공계 출신으로 이공계 육성정책에 대한 시각이 같아 회담 내내 유쾌했다"고 밝힌 바 있다. 후 주석은 칭화(淸華)대에서 수리공정학을 전공했다.


2006 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습격을 당했을 때 외국 친구 중에서 가장 먼저 위로편지를 보내온 독일 메르켈 총리도 마찬가지다. 박근혜는 자서전에서 "메르켈 총리가 추구하는 경제정책이나 외교정책의 노선이 내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하고, 원칙과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나와 꼭 닮았다"면서 "둘 다 보수정당의 당수라는 점 그리고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잘 통하는 것 같다"고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 이끌겠다" 박근혜의 이공계 사랑은 곧 나라 사랑?


그 러니 서강대가 그를 이공학부 학생 모집 광고모델로 선정한 것은 그의 '이공계 사랑' 콘셉트와도 잘 어울린다. 또 박근혜 전 대표가 광고모델로 나선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는 2006년 11월에도 서강대 동문인 영화감독 박찬욱, 이휘성 한국IBM 대표 등과 함께 모교를 홍보하는 광고에 등장한 적이 있다. 다만, 단독 모델로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 학이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성공한 동문을 '롤 모델'로 삼아 광고모델로 내세우는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요즘은 주로 스포츠 스타들이 대학의 광고모델로 자주 등장하지만 법조인이나 정치인도 예외는 아니다.





김 영삼 정부 시절 '사정 드라이브' 정국에서 거악에 맞선 스타 검사로 떠올랐던 홍준표 의원이 모교인 고려대에서 세계적인 마라토너 황영조와 함께 '자랑스런 고대인'으로 선정돼 고려대 광고모델로 나선 적도 있고,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뒤에는 영남대가 학부나 대학원(특수대학원) 출신 국회의원 17명의 얼굴 사진을 싣고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영남대학교의 힘!'이라고 난데없는 '힘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박 전 대표의 비키니 사진과 신문광고 모델이 새삼 화제가 되는 것은 여성이라는 희소성과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라는 점이 상승작용을 한 결과로 보인다. "서강대학교 이공계가 대한민국을 이끌겠습니다"라는 광고문구가 "박근혜가 대한민국을 이끌겠습니다"라는 중의적 표현으로 읽힌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그래서 박근혜의 신문광고 출연은 기본적으로 모교의 요청에 따른 것이지만, 그가 장기적으로는 2012년 대선을 겨냥, 복지정책 '열공'과 함께 취약한 수도권과 20~30대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해 부드러운 이미지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과학기술 입국'(立國)과 박정희 그리고 박근혜의 3위일체


사실 박근혜의 과학기술, 혹은 이공계 사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근혜는 자서전의 곳곳에서 '과학기술 입국'(立國)과 아버지 박정희 그리고 박근혜 자신을 3위일체로 등치시키고 있다.


" 그(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던 1970년대 후반-편집자주) 무렵 나는 전자산업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것도 앞으로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하겠다는 포부 때문이다. 아버지는 전자산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계셨다…(중략)…



나 는 전자공학과 관련된 부분만큼은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9년 아버지를 설득해 제10회 한국전람회의 전자전에 참관한 것도 전자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높이고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과 학기술에 대한 아버지의 집념은 대단했다. '자원도, 돈도 없는 우리나라가 먹고살 길은 사람으로 하는 과학기술 연구밖에 없다'면서, 1966년 홍릉에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를 설립했다. 그리고 외국에 나가 있던 과학자들에게 조국으로 돌아와 달라고 호소하였다. 그러자 200명이 넘는 과학자가 척박한 연구환경에도 불구하고 애국심 하나만으로 조국에 돌아왔다." (104~105쪽)


박 정희의 과학기술 지원은 객관적 사실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자서전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을 먹여살리는(?) 삼성전자의 힘은 오롯이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남다른 과학기술 지원과 이공계 사랑 덕분인 것처럼 읽힌다. 더구나 박정희의 과학기술 및 이공계 사랑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버젓이 사실 왜곡을 하고 있다.


이공계 기피 현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탓?


그 는 자서전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지난 1960년대 중국은 경제발전과 공업화를 이루기 위해 많은 이공계 출신들을 키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분들이 사회의 지도층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한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오늘날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실을 지난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


" 후 주석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공계를 기피하는 우리네 현실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해졌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 먹고살 길은 기술혁신밖에 없다며 과학기술에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 당시 과학자들이 청와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고, 아버지는 틈만 나면 연구현장에 나가 과학자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격려했다. 그것이 우리 산업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IMF가 터지자 기술인력을 제일 먼저 구조조정하고 R&D 비용을 축소하면서 과학기술 기반이 일거에 무너져 내렸다. 40년에 걸쳐 쌓아온 기반이 무너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292쪽)


요 컨대, 박정희가 집권한 1960년대부터 전두환-노태우를 거쳐 IMF를 초래한 김영삼까지 군부독재-보수정권 40년 동안 과학기술 기반을 쌓았는데, IMF를 계기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그 기반이 일거에 무너져 내렸다는 논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IMF 사태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R&D) 예산을 축소하지 않았으며 과학기술 기반이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박 정희가 과학기술처(2실 2국 6과)를 신설한 것은 1967년이다. 정부는 과학기술처 개청일인 1967년 4월 21일을 기념해 이날을 '과학의 날'로 제정했다. 그 뒤로 30년 동안 국무총리 산하 '처'(處)였던 것을 독립된 장관의 예산 편성집행권이 있는 과학기술부(3실 3국 21과 9담당관)로 확대 개편한 것은 김대중 정부(1998년 2월)였다. 또 과학기술부에 R&D 예산편성 전문성을 높이고 국가우선순위에 따른 전략투자를 강화하기 위해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신설(1본부 1실 1조정관 6국 7관 30과)해 과기부장관을 부총리로 승격한 것은 노무현 정부(2004년 10월)였다.





박 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통계와 지표로 한눈에 볼 수 있는 <있는 그대로, 대한민국>(2007년, 지식공작소)에 따르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합친 '총연구개발비'는 ▲김영삼 정부 46조6천억원 ▲김대중 정부 70조4천억원으로 전 정부보다 김대중 정부에서 51%가 증가했다. 또 '공공부문의 R&D예산추이'를 보면 ▲김영삼 정부 10조원 ▲김대중 정부 23조원(증가율 130%) ▲노무현 정부 40조1천억원(74%)으로, 전 정부 대비 증가율이 더 가파르다.


부총리가 관장한 과학기술부를 2008년 2월 정부조직 개편으로 이리저리--일부는 산업자원부 및 정보통신부 일부와 통합해 지식경제부로, 일부는 교육인적자원부와 통합해 교육과학기술부로--찢어발겨 없앤 것은 이명박 정권이다. 그 사이 IT기업 경쟁력 지수(EIU 평가)는 2007년 세계 3위에서 2009년 16위로 불과 2년 만에 13단계나 하락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명박 정부는 최근 비상설 자문기구이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상설 행정위원회로 격상해 'R&D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는 등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다.


박근혜는 누구보다도 '말의 힘'이 실리는 정치인이다. 원칙과 신뢰를 중시하는 그의 정치 스타일 덕분이다. 박근혜의 아버지와 과학기술 사랑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띄우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거나 사실을 왜곡해선 안 될 일이다. 더구나 그는 누구보다도 '수리(數理)의 힘'을 중시하는 이공계 출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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