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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에는 독립운동가 가 없어다고...ㅋㅋㅋ 억지소설을 써라.
05/16/202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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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독립운동가 이종희선생 선정

국가보훈처 의열단원활동 등 업적 기려


 
 
 

9월의 독립운동가로 항일단체인 ‘의열단원’에서 활동한 이종희 선생이 선정됐다.

국가보훈처는 31일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공적을 기리고자 이종희 선생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종희 선생은 1890년 4월 19일 지금의 전라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에서 태어나 1919년 일본인 관리 암살 및 관청 파괴를 주도한 ‘의열단’에 가입해 일본군 다나카기이치 대장 살해사건에 가담했다.

또 1932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관으로서 한인청년사관 양성에 힘쓰며 1937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위원으로 약산 김원봉선생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이끈다. 1943년에는 김원봉선생의 뒤를 이어 광복군 총사령관 제 1지대장을 맡아 항일무장투쟁을 이끌다 194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전라도 대표 및 임시 의원정으로 활동했다.

병상에 해방을 맞은 선생은 1946년 고국땅을 밟기 위해 고국선을 타고 오던중 배안에서 눈을 감았다.

1977년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9월의독립운동가 이종희 선생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남정(南亭) 이종희(李鍾熙) 선생(1890.4.19~1946.3.28)을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1일부터 30일 까지 30일간 야외 특별 기획 전시관 제5·6통로에서 의열단·조선의용대·한국광복군·대한민국임시의정원 으로 활동한 당시 사진 등 관련자료 20점을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종희 선생은  1890년 4월 19일, 전라도 금구현(金溝縣) 귀미란 마을(현 전북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남정(南亭)이고, 독립운동 초기에는 이인홍(李仁洪)이라는 이름을 쓰다가, 1926년 이후부터는 이집중(李集中)이라는 이름만을 사용하였다.

고향에서 청년기를 보낸 선생은 1919년을 전후하여 중국으로 망명하면서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망명 후 선생은 대표적인 의열단체로 일제 식민수탈기구의 파괴와 일본 고위관리나 친일파의 처단을 활동목표로 하는 의열단에 정식단원으로 가입하여 의열 투쟁에 동참하였다.

 

1925년 북경에서 유자명의 지시로 일제의 밀정 김달하(金達河)를 처단한 선생은 이후 의열단의 독립운동 노선 전환에 따라 1926년 1월 광주(廣州)로 이동하여 10여 명의 의열 단원과 함께 황포군관학교 제4기 보병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에 선생은 재광동 조선혁명군인회와 유월한국혁명동지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26년 10월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 소위로 임관한 선생은 남창 주둔 중국군 부대에 배속되어 근무하면서 의열단 남창지부원 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남경으로 근거지를 옮긴 의열단은 혁명 간부 겸 항일투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에서 조선혁명 군사정치학교를 설립하였다. 선생은 이 학교의 교관으로 근무하며 한인청년 사관 양성에 힘썼다. 조선혁명 간부학교 운영으로 다수의 청년투사를 양성하여 조직의 위상을 재확립하고 항일운동 역량을 강화하는데 성공한 의열단은 1933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대동단결체 결선운동을 주도하여 1935년 7월 중국 관내의 민족유일당 으로서 민족혁명당 창립을 이룰 수 있었다.  

 

선생은 1937년 민족혁명당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며 김원봉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이끌어 갔다. 그리고 1938년에는 조선혁명 간부학교 졸업생을 포함한 100여 명의 정예요원으로 구성된 조선의용대 창설에 참여하여 총무조장에 임명되었다.

 

 

선생이 참여하였던 조선의용대는 직접적인 항일전을 위해 화북지역으로의 이동을 결의하고 1941년 초 황하를 건너 태항산 일대로 이동하였다. 그 후 조선의용대의 잔류 병력과 본부 요원은 1942년 12월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었는데, 이 때 선생은 제1지대 총무조장으로 임명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조선의용대의 한국광복군 편입을 이룬 직후 민족혁명당의 참여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42년 제34차 임시의정원 의회에서 선생은 민족혁명당 소속의 전라도 출신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43년 김원봉의 후임으로 한국광복군 제1지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던 중 선생은 폐병을 얻게 되었다. 중경(重慶)은 양자강과 가릉강(嘉陵江)이 만나는 지역이면서 분지지대로 1년 내내 안개가 끼는 고온다습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이종희 선생님의 가족사진

 

이런 기후 탓에 우리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은 폐병을 앓고 아까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병상에서 광복을 맞이한 선생은 1946년 4월 29일(음 3월 28일) 환국하는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하여 검역과 상륙 수속을 기다리던 중 광복된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선상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1977년 정부에서는 고인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9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자료제공=국가 보훈처`독립기념관

 

 

 전라도 독립 운동가 (펌)

 

1. 창평, 녹천 고광순 의병장

2. 광양 맹인 의병장 백낙구

3. 고흔, 의사 기산도

4. 보성, 머슴 출신 의병장 안규홍

5. 나주 김태원, 김율 형제 의병장

6. 광산 오성술 의병장

7. 광주 양진여, 양상기 부자 의병장

8. 함평 심남일 의병장

9. 영광 김용구, 김기봉 부자 의병장

10. 매천 황현선생

11. 장성 기삼연 의병장

12. 광주 조경환 의병장

13. 광주 김원범, 김원국 형제 의병장

14. 화순 양회일 의병장

15. 임실 이석용 의병장

16. 임병찬 의병장

17. 임실 전해산 의병장

18. 면암 최익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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