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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무엇이 문제인가?' '독립 축하금' 운운한 일본의 기만술 ⑥
08/20/20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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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가 '한일협정, 무엇이 문제인가?'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지금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빌미로 한국에 '무역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선전포고도 없이 사실상 '경제 전쟁'을 선언한 셈입니다. 현 상황은 매우 엄중합니다. 한일 관계에서 이른바 '1965년 체제'를 전환해야 할 시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1965년 체제'는 비단 한일 관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동북아 질서와 한일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965년 체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차분히 되새겨봐야 합니다. 그 시작점은 1965년 박정희 정권이 체결한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입니다.  

김민웅 교수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한일협정은 무엇인가'에 관한 글을 문답형으로 정리했습니다. <프레시안>은 김 교수의 '한일협정, 무엇이 문제인가'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 글이 한국과 일본의 독자들에게 널리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7) 결국 일본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가 국제법적으로 합법이었다, 이걸 출발점으로 해서 회담에 임했다는 거니까, 우리와 일본은 입장이나 자세가 완전히 극과 극이었군요.

그렇지요. 그래서 두 나라의 “기본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가 매우 본질적인 문제가 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그냥 두 나라로 설정하면 도무지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게 마련이지요. 

일본은 자신의 가해사실을 역사적으로 기록하는 걸 거부했고 우리는 그걸 기점으로 회담을 하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1차 회담 당시 우리는 “기본관계”라는 말을 주장했고 일본은 “우호관계”라는 말을 내세웠답니다. 이 말이 얼핏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식민지 지배 역사를 청산하는 문제를 담지 않으려 한 것이지요.  

(7-1)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제 안에서는 식민지 배상 문제가 제기되기 어렵게 되어 있다고 했잖아요. 

네, 그러니까 남은 것은 채무 관계를 정리하는 청구권 논쟁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근거한 회담은 청구권 협정에 한 한 것이고 식민지 배상, 전쟁배상은 따로 정리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전쟁배상도 교전국으로서의 배상요구,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당시의 피해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1965년 한일협정은 단지 청구권 논의에만 국한 한 것입니다. 정확히 따지면 일본은 우리에게 아직도 갚아야 할 빚이 엄청나게 있는 겁니다. 2012년과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관련 판결이 바로 이 문제를 거론한 거에요.  

(7-3) 대법원 판결 문제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셨으면 해요. 근데 일본은 청구권 논의도 나중엔 하려 들지 않았다면서요? 이게 무슨 말인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그렇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애초에는 청구권 논쟁으로 자기도 받아낼 게 있다고 역청구권 개념을 가져와 돈 문제를 상쇄하는 방식으로 마무리 하려 했어요. 그러다 이게 되지 않자 요시다 시게루 정권 이후 기시 노부스케 정권에서는 “역청구권 포기”로 정리합니다.  

그리고는 아예 청구권이라는 용어 자체를 쓰지 않고 경제협력이네, 독립 축하금이네 하는 식으로 방향을 몰고 가려 하지요. 

▲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세계2차대전 A급 전범이다.


(7-4) 아, 복잡하네요. 그것도 1차에서 7차에 이르는 회담을 정리할 때 다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하나 또 궁금해지는 건, 회담이 시작되었던 시기에 일본 정부나 일본 여론이 거의 모두 식민지 지배에 대한 합법성, 한일합병이 정당했다, 그렇게 여겼다는데 그래도 일본 파시즘에 맞서서 반전운동을 했거나 조선의 독립을 지지했던 일본 사람들도 있지 않았나요? 좀 중구난방으로 질문 드려 죄송합니다. 

무슨 요, 생각나는 건 그때 마다 하셔도 됩니다.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했던 일본사람들이라, 네, 있었지요. 무엇보다도 우선 일본 공산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미국의 냉전정책이 강화되면서 배제되었고 일본의 미군정 당국에 의해 묵살되고 말았습니다.

(7-5) 아. 조금 조심스러워지네요. “공산당”이라고 하니까.

- 그럴 거에요. 그러나 일본 공산당의 역사를 알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쟁 시기에 "일본 제국주의 타도와 피압박 민족 해방”을 주장했습니다. 

(7-6) 1945년 이후는 어떻게 입장을 표명했나요?  

패전 이후 일본 공산당은 천황제 지배에 대해 철저하게 비판적이었습니다. 천황제가 일본의 민주주의의 걸림돌이고 식민지 해방의 최대의 장애라고 밝혔습니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합니다. 천황제 비판논쟁은 일본 정치의 아킬레스 건이에요. 이와 함께 일본 공산당은 
민족차별을 반대했고 재일 조선인/한인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7-7) 당시 일본 사회 안에 그런 목소리가 있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고 지금으로서도 놀랍기만 합니다. 

당시 재일 조선인들을 해방이 되었다고 으쓱거리면서 일본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폭도라면서 요시다 정부의 차별과 핍박이 강화되자 일본 공산당 중의원 하야시 하쿠로(林白郞)는 이렇게 말합니다. 

“요시다 정부와 경찰이야 말로 폭도다. 일본 국민은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해 나섰던 조선 인민의 투쟁에 대해 오히려 깊은 경의를 가지고 있다.“ 

(7-8) 일본 공산당은 아니지만 지금도 이런 생각, 의식을 가진 일본 사람도 있겠지요?

네, 있습니다. 일본의 반핵평화운동을 하는 여러 시민운동가들이 바로 그런 분들입니다. 반 아베 운동을 하면서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켜나가려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나갈 분들이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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