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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우파와 박근혜가 나란히? 그것만은...
12/03/2012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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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29일 일본 정당 지도자 토론회에 참석한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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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1954년 도쿄 출생으로 올해 58세인 그는 지난 9월 26일 일본 자민당 총재로 선출되었다. 아베가 자민당 총재가 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2006년 9월 20일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재의 후임으로 자민당 총재에 당선된 뒤 공교롭게도 똑같은 날인 9월 26일 일본의 90대 총리로 취임하였다. 9월26일과 인연이 깊은 아베는 총리취임 꼭 1년 뒤인 2007년 9월26일 갑작스럽게 총리직을 사임했다.

아베의 부인인 아키에는 '욘사마'의 왕팬으로서 열렬한 한류팬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또한 아베의 집안은 원래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에서 건너 간 조선인의 후예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베는 일본 안에서도 대표적인 극우파 정치인으로 꼽힌다.

아베는 고이즈미 총리시절 관방 부장관으로 고이즈미의 북한 방문을 수행했는데, 이후 일본인 납치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서 일본 내 인기가 올라갔다. 총리로 재임할 때는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했고 과거사를 부정했다. 2006년 12월에는 애국교육을 강조하며 교육기본법을 개정했고, 2007년 3월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을 공개적으로 부인했다.

2006년 자민당 총재경선에 나섰을 때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 "갈 것인지 말 것인지는 외국의 지시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1년 동안의 총리 재임 동안에는 주변국을 의식해서인지 신사를 참배하지는 않고 공물을 대신 바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10월 9일 자민당 전국 간사장 회의에서 "총리 임기 중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은 통한"이라고 하더니 10월 17일 급기야 야스쿠니를 참배하기에 이른다.

"오른쪽으로 치우쳐도 너무 치우쳤다."

이 말 한 마디가 아마도 아베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일 것이다.

조선인의 후예가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역사의 아이러니로 비쳐지겠지만, 아베의 가까운 선조를 살펴보면 그의 극우성향은 어찌보면 당연한 면이 있다. 그가 2006년 총리로 취임할 때 이미 알려졌듯이, 아베의 외조부는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다가 극적으로 풀려난 기시 노부스케였다. 기시가 풀려난 날은 도조 히데키 등 7명의 전범들이 처형된 다음날인 1948년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렇게 처형된 7명의 전범, 그리고 감옥에서 죽은 7명의 전범들의 위패를 모은 곳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이다.

기시는 1936년에 만주국의 산업부 차관을 지내며 이른바 통제경제를 실험한 인물로 통한다. 기시가 만주에서 행했던 중요한 정책 중 하나는 1939년 총무청 차장으로 승진한 뒤에 추진한 만주국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이었다. 이후 일본 도조 내각에서 상공대신을 지내기도 했던 기시는 1957년부터 60년까지 일본의 총리를 역임했다.

기시 노부스케를 보며 박정희를 떠올리다

기시 노부스케의 행적을 보면서 박정희를 떠올리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박정희는 교직을 버리고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했다. 1차에서 탈락한 뒤에는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이라는 혈서를 쓰기도 했다. 이 내용은 <만주일보>가 1939년 3월 31일자로 보도했는데, 공교롭게도 기시 노부스케가 만주국 총무청 차장으로 승진했을 무렵이었다. 그 뒤 박정희는 일본육군사관학교에 편입했고 졸업한 후 1944년 12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사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0년 5월 18일 육사생도의 5.16지지 시위를 지켜보고 있다. (왼쪽부터) 박종규소령, 박정희 소장, 차지철 대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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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패망한 뒤에도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이른바 '만주인맥'이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박정희가 여순반란사건 관련 남로당 프락치로 체포돼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그를 구해 준 것은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선배였던 백선엽이었다. 그런 박정희가 5.16 쿠데타 직후 일본에서 기시 노부스케를 만났을 때는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둘의 첫 만남은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기 전이었다.

1961년 일본을 처음 방문한 박정희는 기시에게 유창한 일본어로 자신이 군사반란을 일으킨 것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 지사를 떠올리며 구국의 일념에 불탔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 방문 때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 시절 교장이었던 나구모 신이치로 중장에게 큰절을 올린 일은 '만주인맥'들에게는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후 기시 노부스케는 막후에서 한일협정 체결뿐만 아니라 박정희 시절 내내 한일관계에서 큰 역할을 했다. 박정희는 이런 기시 노부스케에게 1970년 6월18일 일등수교훈장을 수여했다. (<동아일보> 당시 기사 바로가기)

우리가 아베의 재집권을 우려하는 것은 단지 그가 A급 전범의 후손이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그가 전범의 후손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주변국이 걱정과 우려를 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수 있다. 선대의 잘못은 후손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연좌제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선대의 악행이 그대로 후대에 전승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서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후손이 선조의 잘못을 반성하고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아니, 선대의 행위가 잘못된 일이라고 자각 혹은 인식하는 일조차 쉽지가 않다.

만약에 A급 전범의 손자인 아베가 일본의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평범한 정치인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과거청산과 피해배상에 나선다면, 아마도 'A급 전범의 후손 아베'라는 호칭이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아베는 그와는 정반대, 즉 우리의 세속적인 우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A급 전범'의 후손 아베와 박정희의 딸 박근혜

아베의 사명은 헌법 개정이다. 그의 외조부였던 기시 노부스케는 총리시절 일본의 평화헌법 개헌과 일본식 자주국방을 추진하기도 했으니, 일종의 가업인 셈이다. 아베는 지난 2006년 선거에 나섰을 때도 개헌을 중요한 공약으로 내세웠다. 오는 12월16일 총선을 앞두고 아베 자민당 신임총재는 전쟁 및 군대보유를 금지한 현행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해 국방군을 보유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공약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공약들이 과거사를 부정하는 아베의 태도와 결부돼 있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아베는 미흡하나마 과거사에 대해 반성적인 내용을 담은 이전 총리들의 담화(고노 담화 등)를 아예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가 하면 다케시마의 날을 정부행사로 격상시키며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외국 홍보를 강화한다는 공약도 발표했다. 역시 A급 전범의 후손다운, 가히 극우공약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인 아베 총재(총선 승리로 총리가 확실시되는)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불편한 또 하나의 이유는, 메이지 유신의 정신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A급 전범 기시에게 외교훈장까지 수여했던 박정희의 딸이 한국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이기 때문이다.

외신들은 벌써부터 이 '독재자의 딸'에 관심이 많다. <뉴욕타임스>는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썼고, 영국의 BBC는 한국의 이번 대통령 선거를 "독재자의 딸과 인권변호사의 대결"로 보도했다.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보도한 언론은 르몽드, 로이터, AP, AFT 등 유수 언론사를 망라한다.(관련기사: <로이터>도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로 표현)

이렇게 외신들이 잇따라 약속이나 한 듯이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쓴 것은 'A급 전범의 손자 아베'를 바라보는 우리의 걱정스런 시선과 똑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만약 박근혜가 부친의 잘못된 과거사를 올바른 역사관으로 똑바로 직시하고 그 물줄기를 제대로 돌리기 위해 그 누구보다 노력해 왔다면, '독재자의 딸'이라는 외신들의 호칭은 오히려 존경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박근혜의 길은 아베의 길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베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박근혜는 여전히 5.16 쿠데타 혹은 유신체제가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 대신에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보상'(국가배상이 아닌)만 말할 뿐이다. 가해행위가 역사의 죄악이라는 자각이 없는 셈이다.

야당 후보에게 연일 NLL사수 의지가 있는지를 묻는 박근혜는 정작 권력찬탈을 위해 해병대와 특전사는 물론 휴전선을 지키던 포병부대를 서울로 끌어들인 자기 부친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옹호한다. 야당정부는 이념논쟁만 일삼는다는 '이념공세'가 다시 되살아났다.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도 은근슬쩍 사라져 버렸다. 쇄신의 화장발이 거추장스러웠던지 이제는 완전히 '70스타일'로 돌아간 느낌이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외신기사 제목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편치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동북아에 '만주인맥' 다시 부상하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9월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5·16과 유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논란이 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던 도중 박 후보가 잠시 눈을 감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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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총선은 오는 12월 16일 치러진다. 한국의 대선은 그로부터 꼭 3일 뒤이다. 일본에서는 아베 총재가 이끄는 자민당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가장 유력하니, 지금으로서는 동북아에서 이른바 '만주인맥'의 후손들이 다시 정치권력의 전면에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이들이 단지 핏줄로만 '만주인맥'의 후손일 뿐만 아니라 그 비뚤어진 역사관까지 제대로 물려받았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극우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그것도 A급 전범의 손자가 이웃나라 일본의 총리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마뜩찮아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일본 국민들이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아마 이번 선거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 심성의 보편성을 믿는다면 우리 주변에는 '독재자의 딸'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 국민들의 선택이 마뜩찮았다면, 그와 똑같은 기준으로 우리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독재자의 딸'을 선택해야만 하는, 꼭 그래야만 하는 필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동북아의 이런 극우적인 흐름을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좀 더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만약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외신들은 다시 똑같은 단어로,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보도할지 모른다. 비유컨대 그들의 눈에는 마치 나치의 후예가 권력을 잡은 것 마냥 우리가 비치지 않을까?

"오른쪽으로 치우쳐도 너무 치우쳤다."

'70스타일'로 복귀한 지금의 박근혜를 보면 아베 신조를 평가한 이 한마디가 문득 떠오른다. 이제는 외신들이 박근혜를 보고 이런 평가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그 평가가 진실이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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