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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채 366조 속의 박정희 삥땅액수
09/28/201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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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 속에 트위터질하는 박근혜
- 국가부채 366조 속의 박정희 삥땅액수

 
 
 
2009년9월 나온 서울경제가 보도한, 정부발표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나라빚이 366.9조이고 이것은 GDP대비 36.5%에 달한다고 한다. 국회정책위 통계에는 더 늘어나 367.5조다.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가 계속 늘어나는 수준 아닐까. 재정적자는 23조다. 이것은 국가빚이 줄어들기는 커녕 계속 앞으로도 늘어날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헌데 그 시작이 박정희의 수탈정책에서 비롯되었다면?
 
1963년은 박정희가 그 해 10월 군복을 벗고 사이비 민선대통령으로 당선된 해이다.
 
최 근 나온 중앙일보에 의하면 - 박정희 미화작업의 일환이겠지만, 박근혜 세력은 교묘하게도 곳곳에 깃들어 박의 지지율이 떨어지기만 하면, 득달같이 박정희 미화기사를 실어나른다. - 박정희가 서독에 가서 눈물을 철철 흘리며 차관 3천만달러를 들여온 해가 바로 이 1964년, 첫 민선대통령 선거가 있은 직후다.
 
박정희 홍보 웹사이트에서 내놓은 박정희 실적자료에 의하면,
 
"제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67년)의 초년도인 1962년의 우리나라 수출액은 5천5백만달러, 외환보유고는 1억6천8백만달러, 경제성장률은 2.2%였고 그후 1963년 6월에는 외환보유고가 1억1천4백만달러까지 감소되었고 수출 1억달러를 힘겹게 달성한 것은 1964년 11월말이었으며 미국의 無償경제원조로 어렵게 한나라 경제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
 
62년의 수출액이 5,500 만불이었다. 그런데 64년 1월 (눈물로) 얻어온 서독차관에서도 박정희는 5%를 빼돌렸을 것이니, 그 액수는 62년 국가수출액의 1/4 이다.
 
1962 년에는 유명한 증권파동이 있었다. 박정희의 매형이 되는 김종필은 62년1월 증권회사를 설립하고 중앙정보부 운영비 9억8천만환(현재 가치 약 900억) 을 빼내 증권운영자금으로 돌렸다. 또한 금융위에 압력, 증권거래소에 한도외의 융자를 하도록 100억환(현재 가치 1조)를 빼돌리게 함으로써 다른 정부예산 집행에 차질을 빚게 했다.  1963년3월 중앙정보부는 증권파동 수사를 하면서 몇명을 특정범죄혐의로 처벌했으나 김종필은 풀어주었다.
 
바로 그 해 9월부터 - 선거가 목전인데 - 박정희 부부는 전국 문화재 보수사업이란 미명하에 전국 사찰에 거금을 퍼부으며 산중까지 도로포장 등 일련의 불교국교화 사업을 벌였다. 이것이 외화고갈한 국가 원수가 할 일인가.
 
그 해 10월에 윤보선으로부터 용공혐의 비난을 받아가면서 선거에 당선된 후,  바로 여름[8.30]에 김일성의 밀파로 내려왔던 황태성을 전격 사형집행하고[1963.12.14], 다음달인 1964년1월 서독에 가서 광부, 간호원들 앞에서 눈물, 서독대통령 앞에 눈물을 흘린 끝에 얻어온 차관이 3천만불인 것이다. (1963-1968 사이 들여온 것)
 
또한 미쓰비시는 나중에 화력발전수주 때 되돌려받는 조건으로 1963년 박정희에게 선거자금으로 100만달러를 주었다. 당시 가치로 4억[1달러 대 약 400환] 이고 현재 가치로는 400억 또는 그 이상이다.
 
증 권파동으로 빼돌린 액수가 약 900억에서 1조, 알려진 것으로 미쓰비시에서 챙긴 것이 400억, 서독차관에서 챙긴 것이 3천만 달러의 5% 150만 달러,  당시 환율로 6억, 오늘날 가치 600억 또는 그 이상, 우리에게 알려진 단 세 곳에서만 이토록 막대한 금액이 1963년 선거와 박정희 일당의 일신영달용으로 뒤로 챙겨진 돈이다.
 
그 러므로, 1963년10월 선거에서 그토록 많은 돈이 쏟아 퍼부어졌다고 본다면, 박정희가 바로 두 달뒤 독일에 한국 간호사, 광부 7천명을 파견하고 그들 월급 담보 3천만 달러 긴급차관을 눈물을 흘리며까지 들여올 절박한 개인적 이유가 절로 납득되는 것이다.
 
미쓰비시에서 백만달러를 단 1기의 화력발전 오더 리베이트로 요구했던 것이 1963년 선거직전의 박정희 실태다.
 
우 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박정희가 눈물을 흘려 들여왔건, 안 흘리고 들여왔건 국가지도자 이름으로 외국 차관을 들여왔을 때는 그 돈은 전액 국가와 국민의 것이고 앞으로 국민들이 피땀흘려가며 원금과 복리이자까지 되갚아주어야 하는 피같은 돈이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그것을 가로챘다. 그것이 선거자금용이든지, 부하들의 충성심에의 상응보상용이든지, 지방출장시마다 연예인들 불러 밤연주회와 수청들리게 하는 비용이든지, 안가에서의 술좌석용이든지,
 
그러면서 그들 부부는 에어콘 얘기부터 시작해, 티슈 한장을 반 갈라 썼다는 둥의, 논바닥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대통령 사진을 내보내며 국민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 러나, 그 같은 시기 박근혜가 입고 나온 입성들은 어지간한 서민들은 평생 걸치기도 힘들 정도의 고가 복장들이었다. 박은 또한 스케이트를 신고 폼재는 사진도 찍고 나왔다. 그 사진은 김연아가 뜰 때, 자신도 스케이트 탔노라 자랑취지로 공개되었다.
 
박정희는 서독 에르하르트 총리에게 눈물을 흘려보이면서, "우리를 믿어주세요." 라고 말했다 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들여온 돈에서 뒤로 5% 또는 그 이상 정식으로 부하들에게 삥땅 치게 하다니.
 
서독총리가 허락한 차관은 한국국민들의 몫이며, 그들이 앞으로 자손대대까지 갚아나가야 할 돈이다.
 
반면, 박정희 후손들은 지금 어찌 사는지 보라. 무려 1조가 넘는 재산에다 "공익"이란 이름을 붙여놓고 재산다툼으로 여념이 없다.
 
게다가 대통령을 넘본다는 박근혜는 천안함 피격 및 국제적 경제위기와 세종시 위기 상황에서, 당당하게 "트위터"를 개설하고 연예인 및 초등생과 "대화" 중이다.
 
박이 최근 트위터를 개설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천안함으로 비통하고 눈물 흘릴 동안 박은 틀어앉아서 - 칩거 - 트위터 학습을 그 때부터 했다는 정황증거나 마찬가지다.  싸가지 있는 정치인인가?
 
국민들은 지금도 국가빚 갚느라고 허리 휠 지경인데, 김종필, 박정희 후예들은, 국가차관에서 기숙하여 뜯어낸 돈으로 지금까지 호사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이것이 타당한가?  100년 전의 일제 만행에 대해서도 과거사 조사가 필요하다면, 젊은이들의 정기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박정희 과거사 조사는 더더욱 필요하다.
 
1978.10.16. 당시 경제기획원장관 남덕우는 국회 증언에서 당시까지 들여온 총차관액수는 168억5,100만달러 라고 증언했다. 그 해부터 박정희 죽은 다음해까지만 66억달러가 더 들어왔다. 그리고 박정희가 죽지 않았다면 더 들여오기로 한 차관은 줄을 선 상태였다. 김재규 손에 피살 안되었으면 삥땅액수는 더 늘어났을 것이다.
 
단순 계산하여 그 액수의 5%만 잡더라도, 박정희 일당이 국가가 빌린 차관에서 삥땅한 금액은 11억7,255만 달러나 된다. 당시 가치로 1조1,725억5천만원에 달하며 오늘날 가치로 단순환산하면 100조 규모다.
 
현 국가부채 규모 366조, 저 속에 박정희정권이 가로챈 100조 규모의 도둑질한 돈이 - 거의 1/3 - 포함돼 있다고 보면, 그리고 그 이자가 매일 늘어나고 있다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도 박정희가 고마운가?
 
천 안함 피격이란 초유의 국난 사태속에도 박근혜는 트위터질이고, 대통령과 우리는 그 부친 박정희가 물려준 국가부채 366조를 감당 안되어 허덕이고 있다. 그 안의 약 1/3이 박정희 일당의 삥땅금액이다.  현실을 바로보자. 그래도 여전히 박정희가 고마운 존잰가?
 
박근혜는 지난 대선 때 강원 일대를 돌며 자기 손을 걷어보이며 이 손으로 부친의 피흘린 유품을 빨았노라 광고했지만 사실은 거짓말이다. 자기 동생 근령에게 언니가 시킨 것이 월간조선 기사 인터뷰로 드러났다.
 
"믿어주세요"라며 박정희는 서독차관을 얻어왔고 국민들 표를 얻었다. 똑같은 말을 그 후예 박근혜도 오늘날 하고 다닌다. 뒤로는 트위터질이나 하면서ㅡ. 그런 것을 가증하다고 부르는 법이다
 
2010.7.05. 파아란 한은경.
 
 
검소한 박.육 부부의 딸] 고가 옷과 고가의 핸드백, 고가의 코사지, 가발까지 곁들인 트레머리로 치장했다. 박근혜는 자칭,
"튤립이 목련 되려고 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듯이..." 이라고 말했다.
그들 집안이 목련이라면, 썩은 목련일 뿐이다. 파헤칠 수록 악취나는. 

리플 사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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