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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무엇이 문제인가] ⑨ '식민지배는 일본의 은혜'에 그들이 집착하는 이유
08/23/20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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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가 '한일협정, 무엇이 문제인가?'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지금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빌미로 한국에 '무역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선전포고도 없이 사실상 '경제 전쟁'을 선언한 셈입니다. 현 상황은 매우 엄중합니다. 한일 관계에서 이른바 '1965년 체제'를 전환해야 할 시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1965년 체제'는 비단 한일 관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동북아 질서와 한일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965년 체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차분히 되새겨봐야 합니다. 그 시작점은 1965년 박정희 정권이 체결한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입니다.  

김민웅 교수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한일협정은 무엇인가'에 관한 글을 문답형으로 정리했습니다. <프레시안>은 김 교수의 '한일협정, 무엇이 문제인가'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 글이 한국과 일본의 독자들에게 널리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10) 한일회담의 첫 단추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과 맞물리면서 1951년 예비회담이라고 하셨는데, 한구의 입장에서는 일본에게 배상을 요구하자면 그 내용에 대한 준비가 있었을 텐데 그런 게 있었나요? 

네, 있었습니다. 미군정 시기에 이미 일본의 배상 없이는 남한의 경제 건설이 어렵다는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말은 일본의 경제 지원이 없으면 한국 경제의 미래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해 피폐해진 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49년 작성된 '대일배상요구조서'는 바로 그런 논의와 요구의 결과물입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니까 이 문건은 우리 정부 최초의 배상요구 내용이 담긴 것입니다. 

(10-1) 그런 게 있었군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 가요? 

두 차례로 나눠 정리되었는데, 그렇게 된 까닭이 있습니다. 미국은 전쟁배상 논의는 제외시키고 “반환적 성격의 항목”만 일단 제출하라고 한 것입니다. 명확히 따지자면 배상이 아닌 거지요. 미국의 이런 지침에 따라 1949년 3월 1권이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현물반환과 확정채권에 대한 내용이 1부와 2부로 담겨 있습니다. 현물반환은 일본이 가져간 금 그리고 지금(地金)과 지은(地銀), 서적, 미술품과 골동품, 선박 등이고 확정채권은 유가증권, 보험금, 미수금 등이 포함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의 배상 요구에 대해 선을 그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이 있기 전의 시기였다는 점에서 배상 논의는 그때 가서 “고려”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인 겁니다. 이미 일본에 대한 정책이 달라져 일본의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방향이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에 언급했던 역코스(reverse course)에 따른 미국의 일방적 통고였습니다. 
  
(10-2) 한국정부로서는 너무 당혹스러웠겠어요.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절박했기 때문입니다. 

1권에 이은 속편을 정리합니다. 1949년 그해 9월에는 2권이 만들어집니다. 전쟁배상과 식민지 피해 일부 배상 요구가 담겨진 문건이었습니다. 

2권 역시도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중일전쟁 및 태평양 전쟁에 기인한 인적, 물적 피해, 2부에는 일본정부의 저가수탈에 의한 손해, 그러니까 강제공출에 의한 피해를 담았습니다.  이 두 권의 '대일배상요구조서'는 이후 청구권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재일(在日)재산문제”는 대단히 첨예한 논쟁을 가져온 대목이기도 합니다.  

(10-3) “재일재산 문제”라니요? 

흔히 식민지 지배에 따른 피해라고 하면 한반도에 조성된 재산으로만 국한해서 생각하기 쉬운데, 재산의 소재는 일본이지만 귀속은 조선/한국이라는 논지에 따른 문제 제기입니다.

가령 조선은행, 조선척산은행, 조선신탁주식회사의 지점이 일본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재산은 누구의 것으로 귀속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조선총독부의 동경 출장소 재산도 여기에 포함되어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요구였습니다. 

이렇게 현물부터 전쟁배상에 이르기까지 다 계산해서 나온 액수가 당시의 환율로 치면 최소 24억 달러(1달러=15엔)에서 최고 75억 달러(1달러=4.35엔)에 달합니다. 이 액수의 차이는 일본 엔화를 어느 수준으로 평가하는가에 달려 있는 문제였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정리된 차관을 뺀 3억 달러와 비교하면 그 사이의 환율변동을 고려해도 엄청난 차이가 되지요. 

(10-4) 이런 내용들이 나중에 실제로 회담과정에서 청구권 논쟁으로 들어가면서 한-일간에 상당한 격돌을 불러 일으켰겠네요.  

그 충돌의 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 일본의 “역청구권” 개념입니다. 일본은 한국에 투여한 자본과 재화가 훨씬 많고 이미 미군정이 몰수해간 일본의 재산까지 합치면 일본이야말로 청구할 게 더 많다는 논리를 폈던 겁니다.  

(10-5)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일본은 청구의 권리를 포기한다고 되어 있지 않았나요?

당연히 그렇게 명시되어 있지요. 여기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해당 항목에 대한 미국의 해석이 중요해지는데 미국은 서로 '퉁' 쳐라, 그런 식으로 나오게 됩니다. 이른바 “상쇄론”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자세히 다룰게요. 일본의 “역청구권” 논리는 이 상쇄작전을 염두에 두고 제기한 것입니다.   

(10-6) 하나 잘 몰라서 묻는데요, 지금(地金) 그리고 지은(地銀) 이게 뭐지요?

네, 화폐 등으로 조물하기 위한 소재가 되는 금이나 은을 말하는데 그 말대로는 땅에서 캔 금과 은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금괴”라고 이해하면 가장 빠를 겁니다. 그런데 이게 중요한 까닭은 은행의 준비금으로 쓰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지금이나 지은의 보유고가 낮거나 고갈되면 화폐 발행 결정에 중대한 문제가 생겨납니다.  

“지금”만 따져서 조선은행 통계에 따라 정리된 내용을 살펴보면, 1909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의 지금 생산총량이 407톤, 이 중에 조선은행을 통해 일본으로 간 지금이 250톤 그러니까 총량의 60퍼센트가 넘는 양이지요. 이 대금이 5억 6천만 엔을 넘는데 이걸 일본에게 돌려 줄테니 현물로 도로 반환하라는 요구를 한 겁니다. 금괴반환 요구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조선총독부는 1945년 8월 15일 패전 이후 9월 8일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기 전 화폐를 마구 발행해서 엄청난 인플레이션의 고통을 주고 떠났습니다. 물가가 두 배 이상 뛰어 그 피해가 막심했던 거지요.  

▲ MBC 취재 기자를 폭행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연구자 이영훈 교수. 식민지 근대화론, 이른바 '일본의 식민지배는 한국에 은혜'라는 논리는 '식민 지배 불법'을 기를 쓰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에 그 근거가 된다. 한국의 '극우'가 만든 논리는 일본 '극우'의 논리의 숙주가 된다. ⓒMBC 화면 갈무리


(10-7) 그런데 '대일배상요구조서'는 1권이 반환항목, 2권이 전쟁피해 배상으로 되어 있다면 식민지 지배에 따른 피해 문제는 정면으로 제기하지 않은 셈이 되나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묘한 대답이지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고 그에 따른 손실 전부를 요구할 수 있지만 이 정도로 요구 수준을 정리할 테니 응하라, 이게 '대일배상요구조서'의 입장이었습니다.  

배상요구 조서의 서문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의 과거 36년간의 지배를 비합법적 통치로 각인하는 동시에 그간에 피해 입은 방대하고도 무한한 손실에 대해 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대일배상요구의 정신에 비추어 차제에 이에 대해서는 전면 불문에 부치는 바이다. 다만, 중일전쟁 및 태평양 전쟁 기간 중에 한하여 직접 전쟁으로 인하여 우리가 받은 인적 물적 피해만을 조사하여 그 배상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10-8) 아,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은 제기하고 배상요구의 수준은 과도하지 않게 하겠다, 이런 논지였군요. 일본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이 '대일배상요구조서'를 직접 일본에 전달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지침에 따른 조사보고였고 향후 한일회담 기본 자료로 작성한 것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후 한일회담의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과 논지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 있는 거지요.

일본은 이미 여러 번 말했듯이 “적법한 한국병합이었다, 그러니 채권이나 보험금 등의 것은 국가의 분리에 따른 인계처리라는 의미로 해결할 수 있지만 배상은 택도 없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은 역청구권 논리를 붕괴시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불법적 재산 형성에 대해 청구할 권리는 애초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논의가 가장 첨예하게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 “일본의 한국지배가 한국에게 은혜를 끼쳤다”는 구보타 망언이 나온 제3차 한일회담이었습니다. 우리는 총독부 통계를 입증자료로 내세웠습니다. 한일합병 당시 일본 재산의 구성은 없었는데 이후 95퍼센트가 일본인의 손에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일본의 식민지배가 얼마나 가혹한 착취체제였는가를 보여준다고 강조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인들의 노예상태”라고 지적한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10-9) 역시 식민지 지배의 본질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가 최대의 관건이군요.

그렇습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채로 합의를 하는 순간, 문제는 미래로 넘어가게 되고 그 미래는 끊임없이 과거의 반격에 직면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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