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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이별
04/13/201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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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의 이별

 

    볼사치카(Bolsachica) 산책길을 정신없이 달렸다. 칙칙한 가랑이를 쩍 벌리고 누운 고목나무에 털썩 걸터앉았다. 벌렁대던 가슴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공주께서 잠 드셨습니다' 담담하게 내 뱉던 의사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한 생명을 지상에서 영원히 지워버리며 어떻게 저리 담담할 수 있는지. 뜨뜻한 눈물이 계속 내 손등을 적셨다.

   자그마치 15년이었다. 백설 공주가 나와 함께한 사간이. 개의 일 년 수명이 인간의 칠 년과 같다니 사람으로 치면 100세를 넘긴 셈이다. 웬만큼 장수했으니 너무 섭섭해 하지 말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면 가슴 저 밑에서 분수처럼 틀고 올라오는 이 슬픔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늘 곁에서 졸졸 맴돌든 공주가 눈에 밟혀 내 눈은 또 뿌옇게 흐려졌다. 그래 잘 가라 공주야. 세상의 모든 생명은 한 번 왔다 다시 가는 것을. 누가 그것을 비켜갈 수 있으리. 이별은 헤어짐이 아니라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라고 나를 다잡았다.

   공주는 친구의 아들이 준 개였다. 친구아들은 중국산 피크니스 종() 개들을 여러 마리 키우고 있었다. 개가 한꺼번에 강아지를 낳자 그들을 입양시킬 사람을 찾았다. 애완견 센터에 내다팔아도 되련만 그는 돈보다는 강아지를 사랑해 줄 부모를 찾고 있었다. 친구가 내게 입양을 권했다. 나는 그때 일을 하는 중이고 또 이미 미스 티란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싫다는 나를 친구는 한 번 보기나 하라며 한사코 아들 집으로 데리고 갔다.

   목화송이 같은 하얀 털에, 흑진주 같은 똥그란 눈을 가진 공주를 본 순간, 나는 이미 공주를 가슴에 담아버렸다. 공주는 여느 강아지들처럼 부접을 떨지도, 귀가 따갑게 짖지도 그리고 코가 미어지게 땅을 파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내 주위를 그림자처럼 누볐다. 그런 공주가 딸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했다. 개가 무슨 생각을 하랴마는 공주는 늘 화단의 꽃향기에 취하고 새 소리를 노래삼아 명상에 잠기는 듯 했다. 나는 스노우 화이트-백설 공주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남편은 외골수로 나만 따르는 공주에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때때로 일부러 공주한테 소리를 질러 겁을 주기도 했다. 그런 남편한테 내가 눈을 흘기면 허허허 하고 사람 좋은 웃음으로 떼우곤했다. 그러나 그 웃음속에 남편은 진짜 진짜 공주를 질투했는지도 몰랐다. 공주는 남편이 밥을 줘도 그에게 가지 않기 때문이였다. 공주가 외골수外骨髓인 것은 나를 닮은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 공주를 싫어한 가족이 남편만은 아니었다. 공주보다 먼저 온 미스 티 또한 공주를 질투하며 텃세를 부렸다. 개도 사람과 똑같이 미워하고 질투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Tiny 미스 티는 앙증스런 외모와는 달리 몹시 사납고 먹을 탐이 세고 의심도 많았다. 한번은 자기 것을 빨리 먹고 공주 것을 뺏어 먹으려고 고기를 씹지 않고 삼키다 그것이 목에 걸려 죽을 뻔 하기도 했다. 미스 티의 입을 벌려 목에 걸린 고기를 빼내며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그런 미스 티의 텃세와 식탐에도 불구하고 둘은 사이가 좋았다. 공주가 미스 티를 자극하지 않고 늘 양보하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미스티를 그렇게 만든 것은 엄마의 공주에 대한 편애때문이라고 했다.

   얼마 전부터 백설공주의 건강상태가 심각했다. 공주가 비실비실 일어나 오줌을 누고 간신히 걸어와 시멘트 바닥에 누어버린다. 푸시시한 말라버린 머리털이 톡 불거진 갈비뼈위에서 거미줄처럼 하늘거렸다. 공주의 가슴을 쓸어주며 죽을힘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주를 허벅지에 누이고 시멘트바닥에 앉아 등을 살살 문질러 주었다. 공주야, 기운 차려, 그래야 산책도 하고 바닷가도 가지. 빨리 일어나. 알았지.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가만히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전처럼 내 손을 핥고 볼에 키스를 하며 열렬한 사랑표현을 하지도 못 했다. 주적주적 말라붙은 눈곱을 젖은 타월로 살살 닦아 눈썹을 가지런히 펴주었다. 공주의 희미한 동공이 뜨뜻한 눈물로 채워졌다. 너도 나만큼 슬픈거지. 공주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십 년 전 여행을 떠나며 백설 공주를 올케한테 맡겼다. 내가 없는 동안 공주는 거의 밥을 먹지 않았단다. 실연당한 여인처럼 하늘만 쳐다보는 애잔한 모습이 엄마 잃은 아이보다 더 불쌍했다고 올케는 다시는 공주의 개 시터 (dog sitter) 같은 것은 시키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내가 돌아왔을 때 미친 듯 내 품에 안겨 주룩주룩 흘리던 공주의 눈물. 그 눈물의 의미는 다시는 자기 곁을 떠나지 말라는 다짐이었을 터. 그런데 이제 공주가 나를 떠나려 했다. 그 눈물의 맹세를 깨고.

   공주가 우리 집에 온 한참 후 첫 손자가 태어났다. 집안에서 키우던 공주를 밖으로 내보냈다. 손자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손자를 보는 재미에 공주의 슬픔, 마음의 상처 같은 것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혼자무척이나 가슴앓이를 했던 모양이었다. 아니 그것이 공주를 쓰러지게 한 것은 아닌지.

   4년 전 무심코 그녀의 가슴을 쓸어주다 츄잉껌 만한 딱지를 발견했다. 진찰결과 암이었다. 가슴 저린 사랑 때문이었을까,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의사는 수술 대신 처방약을 주었다. 그때 공주가 4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수술을 해 줄 것을. 나는 그녀에게 늘 비정한 연인戀人이요 무심한 친구였다.

   공주와 미스 티는 나와 함께 볼사치카 산책길을 자주 걸었다. 미스 티는 씩씩대면서도 끝까지 잘 따라왔지만 공주는 산책코스를 반쯤 돌면 헐떡거렸다. 나는 그때마다 미스 티의 끈을 손에 쥐고 공주를 품에 안고 산책을 마쳤다. 그때 공주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 손에 수없이 키스를 해댔는데 아마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지 않앗을까. 그때가 나와 함께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음으로.

   3년 전 공주의 유일한 친구 미스 티가 저세상으로 갔다. 공주는 몹시 슬퍼보였다. 작은 아들이 그녀를 아들 집으로 데려갔다. 그의 개 쿠키와 친구를 만들어 주었다. 그 뒤 가끔 공주가 아들과 함께 집에 왔는데 왠지 나를 보고 서먹서먹해 했다. 몸이 멀어져 마음까지 멀어졌나 했지만 공주는 그때 못쓸 병마와 투병 중이었다. 몇 개월 전 공주가 우리 집으로 왔다.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갈비를 삶아줘도 소용이 없었다.

   남편이 안락사를 시키자고 했다.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가 공주를 태우고 시동을 걸자 나는 부엌일을 팽개치고 쫓아나갔다. 숨도 쉬지 못하는 공주를 안고 뜨거운 이별의 키스를 해주었다. 아직도 그녀의 체온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둥둥 떠가는 흰 구름 속에 공주가 나를 보며 방긋이 웃고 있었다.



      



공주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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