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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부는 소년
10/15/201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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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리부는 소년

 

(그리스도 탄생 후 1284 년 헤메른의 아이들 백 삼십 명이

파이드 파이퍼에 의해 산 속으로 사라졌다)

    이 글은 독일 헤메른 시를 방문했을 때 읽은 글이다. 헤메른 시에는 1284626일 아이들 백 삼십 명이 파이드 파이퍼와 함께 산속으로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시장과 시민들은 이 비극적인 사건을 헤메른 시가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타운 홀에 기록을 남겼다고 했다.

  독일은 아들이 프랭크프르트에서 유학을 하고 베를린에서 직장을 갖기도해 여러 번 여행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헤메른 시를 찾았다. 헤메른 시의 원래 이름은 라튼팽거 반 헤메른(Rattenfanger von Hameln)’이다. 직역하면 쥐 잡는 헤메른이란 뜻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는지는 알 수 없다. 헤메른은 독일 섹쇼니 지방 내륙 웨서 강에 인접한 인구 오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다. 나는 이곳을 방문하기 전까지 피리부는 소년으로 알려진 파이드 파이퍼의 이야기를 전혀 몰랐다. 피리부는 손년은 오랫동안 전설로 내려오던 것을 16세기경 괴테와 그림(Grimm)형제의 동화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단다.

   그 날도 마켓 성당 앞에는 파이드 파이퍼 공연을 보려고 많은 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은  검은 구름이 빗방울을 후드득 뿌렸다. 광장 안 길목에는 파이드 파이퍼 동상들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세워져 관광객들을 부르고 길바닥 타일에는 쥐들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었다.

   1284년 어느 날 헤메른 시에 괴상한 남자가 하나 나타났다. 울긋불긋한 색깔의 옷을 입고 플룻을 불어 사람들은 그를 파이드 파이퍼 (Pied Piper)라 불렀다. 그는 쥐 잡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때마침 헤메른 시는 페스트를 옮기는 쥐떼들로 온 시민이 골치를 앓고 있었다. 파이드 파이퍼는 쥐들을 깨끗이 몰아내 주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마침 시장과 시민들은 쥐떼들로 골머리를 앓던 차라 지푸라기라도 매달리고 싶었다, 그들은 파이드파이퍼가 쥐들을 몰아내주면 1000길더를 주기로 했다. 그러자 파이드 파이퍼는 호주머니에서 조그마한 플룻(fife)을 꺼내 처량하게 불기 시작했다. 풀룻 소리를 듣고 모든 쥐들이 모여들었다. 쥐들이 전부 모였다고 생각되자 그는 웨서 강(River Weser)으로 쥐들을 몰고 갔다. 그리고 코트를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린 뒤 강 속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 쥐들이 모두 그를 따라 강으로 뛰어들어 전부 수장이 되고 말았다.

   쥐에서 해방된 시민들은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파이드 파이퍼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쥐를 퇴치한 것을 보고 너무 많은 돈을 주기로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50길더만 주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뤘다. 파이드 파이퍼는 돈을 받기위해 별 짓을 다 했지만 허사였다. 그는 화를 내며 분노에 떨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시장과 시민들은 혹을 떼어냈다고 마냥 기뻐했다.

   파이드 파이퍼가 다시 돌아온 것은 626, 그 날은 세인트존세인트 폴이 순교한 날로 시민들이 성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어떤 사람들은 정오라고 했다. 그는 이번에는 요란한 밝은 색깔이 아닌 사냥꾼복장의 그린 색 옷을 입고 험악한 얼굴로 나타났다. 또 괴상한 빨간 모자를 쓰고 전처럼 길에서 파이프를 구슬프게 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쥐들이 아니라 애들이었다. 많은 소년 소녀들이 줄을 지어 그를 따르고 있었다. 헤메른 시장의  큰 딸도 끼어 있었다. 그는 소년소녀들을 모두 코펜버그 산(Koppenberg Mountain)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그 굴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 사실은 애기를 안고 뒤 따라가다 그들을 놓치고 돌아온 베이비시터가 타운에 알려 알게 되었다. 놀란 부모들이 타운 게이트로 달려와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엄마들이 울고불고 후회를 하며 가슴을 쳤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린 아이들을 찾을 길은 없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도시에 퍼졌고 강과 들판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이들은 흔적조차 없었다.

   백삼십 명의 아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뒤 뒤처진 세 명이 돌아왔다. 한 아이는 장님이었고 다른 하나는 벙어리였다. 장님아이는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지만 들은 것을 얘기했고 벙어리는 간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지만 들은 얘기를 설명하지 못했다. 다리를 절룩거린 작은아이는 따라가다 옷소매가 찢어져 집으로 와 갈아입고 쫓아가니 일행이 코펜버그 마운틴(Koppenberg Mountain)굴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그들은 애들이 걸어 나간 길을 벙겔루스-돌아오지 않는 길(bungelose)이라고 부른다. 사라진 애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정을 했다. 병으로 죽었거나 굶주림에 지치고 시달리다 천둥 번개에 산이 무너지면서 모두 웨서 강에 매장되었다든가 싱크 홀에 빠져 죽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또 굴속을 빠져 나와 트랜슬라베니아(Transylvania.)로 가 전쟁에 투입돼 이민자로서 살아갔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또 다른 이는 파이드 파이퍼가 죽음의 무도dance of macabre 라는 것, 헤메른 시를 재앙에서 구했지만 그는 다시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망 그 자체라는 것이다.

   헤메른 시는 18세기부터 지금까지 애들이 걸어갔던 뱅갈루스 길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 결혼식 때도 이 길을 지날 때는 음악을 중지한다고. 헤메른 시에는 파이드 파이퍼의 집이 있었지만 그는 이 집에 살지는 않았다.

   파이드 파이퍼가 어린 애들을 복수의 도구로 이용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돈? 아니면 이방인과 다름없는 파이드 파이퍼에게 돌아온 헤메른 시민들의 냉대에 대한 보복이었을까. 힘의 논리에 대항한 반항아였을까. 주위의 성당들을 돌아보고 이곳저곳을 들려보았지만 더 이상의 어떤 것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만일 그 때 헤메른 시민들이 약속대로 1000길더를 파이드파이퍼에게 주었더라면. 아이들은 모두 무사했을 것이고 파이드 파이퍼는 시민들과 소통해 행복했을까. 혹은 그 요술 피리로 1000길더의 두 배 아니 열배에 달하는 보답을 하지 않았을까. 과한 욕심은 언제나 재앙을 부른다.

   성당 앞 광장에 많은 관광객들이 파이드 파이퍼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찌푸린 하늘에서 우르릉 꽝 번개가 치더니 비가 쏟아졌다. 파이드 파이퍼의 후회의 눈물일까. 사라진 아이들의 눈물일까. 가슴이 흥건하게 젖도록 생각을 거듭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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