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darosa
snowwhite(pandarosa)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10.15.2011

전체     899828
오늘방문     26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157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목사님, 목사님, 존경하는 목사님
06/25/2015 09:41
조회  4627   |  추천   34   |  스크랩   1
IP 108.xx.xx.212

러셀 블라이스델 목사님!

09/04/1910-05/01/2007 Hayfield Minesota 태생

네바다 주 군인 묘지 장례

미 공군으로  세계 2차대전, 한국전쟁 참여 1938-1964

미 공군 소령 프랭클린 블라이스델의 아들

 

 

유모차 수송 작전 (Kiddy Car Airlift)

러셀 브레이즈델 중령은 군목으로 
1950 년 한국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1950 년 9월 부터 12월 20일

한국 고아들을 무사히 제주도로 피난 시킨 휴메니즘 실화임니다.
연합군의 서울 수복으로 정부와 국민들은 서울에  
발을 들여 놓았지만 그 분의 눈에는 

온통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어린 아이들만 보였습니다.
종로의 초등학교 한켠에 
고아들을 모아 돌보기 시작했는데

한 두어 달 지나고 보니 그 수가

천 명 가까이 되었슴니다.

그해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은 급변하게 되었습니다.
연합군은 후퇴 명령을 내렸고,
피난 행렬이 줄을 이었씀니다.
그러나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돌보거나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중령은 어떻게든 아이들을 
그곳에서 피난시키고 싶었습니다.
공군을 통해 가까스로 수송기는 마련을

했지만 아이들을 공항까지 운반할 
차량이 없었습니다.
중령은 하는 수 없이 
거짓 명령을 내렸습니다.
목사로써 거짓말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이들을 살려야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상부의 명령이라고 속여
14대의 트럭을 움직여, 

964 명의 고아들과 80명의 스탭들을 무사히 
제주도로 피난시켰슴니다.

이 사건을 1951 년 3월에 패시픽 스타 스트라이프 지가

보도를 햇슴니다. 그후 한국에서 몇개월 취재를 한 영국 BBC 방송의 기자인 르네 커트포스 씨가

이 사실을 리포트로 1952 년 보도를 했슴니다

결국 이 사건은 유모차 수송 작전으로 알려지게 되었슴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슴니다.

이 목사님은 거짓 명령을 
내린 이유로 군법에 회부되었습니다.
법정에 선 브레이즈델 중령은 
자신의 한 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내가 한 일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라면 
지금 바로 전역하겠습니다.”

2001년,
브레이즈델 중령은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50년 만에 만난 
늙은 고아들의 손을 잡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도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그 속에서 오직 사랑을 위해 
싸운 분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함니다.
이런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살릴 수 있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위대한

힘이며 무기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남모르게 사랑을 실천한 중령님께, 목사님께 감사를 드림니다. 



목사님, 목사님, 사랑하는 목사님!
이 블로그의 인기글

목사님, 목사님, 존경하는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