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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석과 일등 손님
02/24/201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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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등석과 일등 손님

 

    장거리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널찍하고 안락한 일등석을 거쳐 좁은 일반석으로 가며 다음에는 나도 꼭 일등석을 타겠다는 생각을 한다. 돈만 내면 누구나 탈 수 있는 일등석이지만 아직까지 타보지 못했다. 그 간절한 욕구는 늘 다음으로 미뤄진다. 일등 이등 하는 말 대신 요즘은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나믹 혹은 트레불러 클래스라 바꿔 부른다. 그러나 이름을 바꾼다고 느낌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어서비행기를 탈 때마다 절실한 계급의식을 느낀다. 때론 삼등 인생의 열등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여행을 하게 되면 나는 또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제일 싼 비행기의 일반석에 예약을 한다. 일등석과 삼등석의 비행기 값이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일등석은 일반석 요금의 다섯 배 이상의 돈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역시 나 같은 소 시민에게는 아득한 이야기다.

   국제선의 일반석, 즉 삼등석은 비행기의 왼쪽 창 옆으로 세 사람이 나란히 앉고 통로를 두고 가운데 네 사람을 앉힌 뒤 또 통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나머지 세 사람. 한 줄에 열사람이 앉게 되어있다. 앞 뒤 좌석 사이가 고양이 새끼 한 마리 들락거릴 정도라 나같이 짧은 다리도 오금을 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긴 다리의 고충이야 말해 무엇 하랴. 어디 앞 뒤 뿐인가. 옆 사람과의 좌석사이도 팔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인색하다.

   나는 비행기를 탈 때 창 쪽을 선호한다. 그나마 밖을 내다볼 수 있다는 윈도우 외출 때문인데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내다보면 가슴이 좀 후련해진다. 한 번은 체중이 오버한 여성이 바로 내 옆에 앉게 되었다. 그녀의 굵은 팔이 나와 그녀 좌석 사이의 경계를 넘어 내 가슴의 반 정도를 무단 점령해 버릴 때 아, 나는 삼등 인생의 비애를 또 한 번 느끼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그러나 정작 울고 싶었던 때는 변소를 가야할 때였다. 참다 참다 견딜 수 없어 내가 변소를 가려고 일어섰을 때 그녀가 먼저 일어서야했는데 그 뚝심 좋은 팔이 내 빈약한 가슴을 여지없이 뭉개버린 것이다.

   그 좁은 공간에 웅크려 앉아 장장 열 시간이상을 견디며 어찌 일등석 생각이 간절하지 않겠는가. 저절로 한숨을 쉰다. 다리를 쭉 펴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잠을 자든가 독서를 하든가 음악이나 영화를 감상하며 한정된 공간에서 나만의 세계를 마음껏 누리는 자리. 그 공간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일등석이다. 이 모든 것이 카지노 슬롯머신만큼 차별 없는 돈 값을 한다.

   일등석을 타지는 못해도 나는 그 쪽, 가려진 커튼 쪽의 사람들이 늘 궁금하다. 내가 앉은 자리의 다섯 배 값을 선뜻 내고 그 공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그들은 누구며 어떤 삶을 사는 사람들일까, 나는 삼등석 칸으로 이동하며 이미 일등석에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그들을 보며 불쑥 말을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16년간 국제선 퍼스트클래스를 담당했던 일본인 스튜어디스 미즈키 아키꼬(Mizuki Akiko)가 쓴 책의 제목이다. 퍼스트 클래스란 제목부터 뭔가 남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나도 늘 내 펜을 갖고 다닌다. 오랫동안 사업을 하며 몸에 밴 습관이다. 습관이란 그냥 놔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챙기지 않고는 뭔가 잃어버린 듯 이상한 것이다. 일등석을 타는 손님들의 습관 중 첫 번째라고 하니 나도 일등 손님이 될 첫 번 진입로를 통과한 셈이다.

   얼마 전 가진 자의 노블리스 오빌리즈로 한국인의 위신을 바닥까지 추락시킨 대한 항공 부사장 조현아 사건을 보며 비행기의 일등석이 삼등석과 어떻게 다른 지를 알아보았다. 그녀처럼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난 인생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늘고 작은 꿈 하나를 이루기 위해 평생 부단한 노력을 한다. 중간에 깨지는 꿈도 있고 죽을 때까지 이루지 못하는 꿈도 많다. 그러나 사는 동안 하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면 설령 이루지 못한 꿈이라 해도 그것은 헛된 꿈이 아니며 못 이룬 꿈이 아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등석 손님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거기선 어떤 서비스를 받을까. 비행기의 일, 이등석 그리고 삼등석 사이는 우선 칸이 갈린다. 세상에 칸을 가르는 곳이 어디 비행기뿐이겠는가 마는 얇은 한 장의 커튼으로 갈라진 세계, 그 제한된 공간에서 한 장의 얇은 커튼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그 커튼 뒤야말로 거기 앉은 손님들의 노블리스 오빌리즈를 실감케 하기 때문이다.

   일반석과 일등석의 서비스는 버스와 리무진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죽을 때 까지 리무진을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생에 한 번 결혼식 때 타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리무진을 타본 사람들은 그 화려함과 안락함을 잘 안다. 일등석은 얇은 담요 한 장을 던져주는 대신 거위 털 이불이 주어지고 비행 중 입는 실내복도 준다. 땅콩이나 월낫 같은 견과류를 서빙 할 때는 봉지 째 먼저 물어본 뒤 손님이 원하면 예쁜 공기에 담아서 삼패인 등 주문한 고급 음료와 함께 써브한다. 또 손님이 원하면 1:1의 개인 서비스도 가능하다.

   상류층 3% 정도가 탄다는 국제선의 경우 일반석 300석에 일등석이 9석이니 그야말로 상위 3%. 일등석 승객은 앞에 비상구를 통해 탑승한다. 승무원은 거기서 기다리다 손님을 자리로 안내하고 짐이나, 재킷, 코트 등을 받아 보관한다. 아기꼬가 말하는 일등석 손님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일등석 손님들은 독서광이다. 늘 손에 책을 갖고 있다. 베스트셀러나 소설이 아닌 전기전이나 역사서 같은 책들. 책을 읽으며 꼭꼭 메모를 하고 줄을 긋고 표시를 해서 언제든지 금방 찾을 수 있게 한다. 상대방을 먼저 배려한다. 가령 승무원에게 코트나 옷을 맡길 때도 걸기 쉽게 돌려서 준다든지 어쩌다 승무원의 실수를 지적할 때도 상대가 상처받지 않도록 운을 뗀 뒤 가볍게 얘기한다. 상대의 말을 경청한다. 남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자신의 것을 나물 줄 안다. 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누구하고나 쉽게 소통하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사람들. 그들의 밝고 너그러운 성품은 어디서나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을 것이다. 습관적으로 메모를 한다. 메모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인생에는 큰 차이가 난다.

   국제선에서 식사가 끝나면 입국서류 기입용지를 나눠준다. 그때 일반석에서는 여기저기서 펜을 빌려 쓴다. 승무원이 준비한 펜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분실되기 일쑤다. 일등석 손님은 펜을 빌리는 사람이 없다. 이미 자기 펜이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 여행에서 공간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언젠가는 나도 일반석의 다섯 배를 내고 일등석을 탈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른다. 그러나 일등석을 타기 전에 과연 그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지  한 번 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장거리 여행 때마다 부러워하던 일등석, 설사 로또에 당첨이 돼도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은 따로 있는 것 아닐까. 일등석을 돈으로 살 수는 있지만 거기 앉을 수 있는 일등 손님의 인격과 자격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을 알고 그 자리에 맞는 진정한 노블리스 오빌리제를 갖추는 사람만이 일등 손님의 자격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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