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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콩글리쉬
04/18/201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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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ybody home, no body home, only me body home

 

   미시즈 김은 계속 씩씩거렸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계산대 쪽의 흑인 아가씨를 계속 노려보는 그녀의 표정은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저 가시나, 흑인 주제에 한국 사람을 무시해, 지가 뭐가 잘났다고. 그녀는 한국말로 구시렁구시렁 욕을 해 댔다.정작 화근의 주인공인 흑인 아가씨는 입을 꼭 다물고 샐쭉한 표정으로 다른 손님들을 써브하고 있다. 자기를 완전히 무시하는 흑인 아가씨가 쥐어박고 싶도록 미운 것이다.

   어느 날 일행들과 타운에 있는 맥도날 식당에 들렸다. 나는 화장실이 급해 그곳으로 직행하고 미시즈 김이 드링크를 주문했다. 미시즈 김의 오더를 잘 못 알아들은 흑인 아가씨가 홧 듀 원트(무엇을 주문하세요)를 몇 번 되풀이 했다. 그러자 영어에 자신이 없는 미시즈 김의 말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흑인 아가씨가 다시 묻고 우습게도 같은 질문과 대답이 되풀이 되었다. 투박하고 뚝뚝한 흑인아가씨의 목소리와 태도가 미시즈 김을 더 불편하게 했을까. 반복되는 질문에 그녀는 흑인 아가씨가 일부러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몹시 상했다.

   미시즈 김이 침묵을 지키는 동안 흑인 아가씨가 그녀의 뒤에 선 다른 손님의 주문을 받았다. 계속 손님들이 밀려 미시즈 김은 한동안 멍하게 서있게 되었다. 문득 그녀는 자신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대뜸 흑인 아가씨에게 다가가 콩그리쉬로 따졌다. 그러나 흑인 아가씨는 사과는 커녕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실실 웃었다. 이죽대는 것 같은 흑인 아가씨의 태도에 미시즈 김의 감정은 폭발하고 말았다. 디립다 흑인 아가씨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한국말로 욕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오래전 라스베가스 MGM에 놀러갔을 때다. 카지노에서 어떤 흑인 여자가 두 대의 슬롯머신을 갖고 놀고 있었다. 한 대는 부지런히 돌렸지만 오른 쪽 기계는 돈만 몇 푼 넣어놓았지 놀고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아 쉬는 기계가 없어 나는 그녀 뒤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혹시 그녀가 뒤에 선 나를 생각해 놀지 않는 기계를 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30분 이상을 서서 기다리다 못해 기계 하나를 양보할 수 없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두말없이 노(No)라고 해 나는 멋쩍게 물러섰다. 몇 분 후 어떤 백인 여자가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자 그 흑인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예스하며 기계를 내 주었다.

   흑인들은 유난히 동양인을 무시하는 것 같다. 가끔 관공서 같은 데 가보면 그것이 더 두드러지는 것을 느낀다. 흑인 담당자에게 머무적거리며 질문을 하면 말투부터 위압적이고 불친절하다. 오히려 함께 일하는 백인들에게 질문을 하면 동양인들에게 보다 더 친절하고 싹싹하게 안내를 해 주는 것 같은 무엇 때문일까.

   다행히 식당 매니저가 재빨리 나서 정중히 사과를 하고 우리의 음료수도 돈을 받지 않아 좋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미시즈 김의 흑인주제란 말도 귀에 거슬렸지만 흑인 아가씨의 뻣뻣한 태도역시 동양인을 내리까는 흑인들의 유세 같아 편치가 않았다. 은연중 튀어나오는 말이 우리의 마음과 인격을 대변한다.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어하면 나도 늘 "G" “T" 발음이 명확하지 않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아주 쉬운 예가 내 이름이다. 나는 분명히 미국사람들에게 "My name is Gina" 라고 소개를 했는데 상대편은 ‘Tina? 하며 나를 Tina라고 부른다. No, Gina, like a Girl start G, G,I,N,A 라고 꼭 부연설명을 하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영어로 하는 회의나 모임에 참석하며 느끼는 소외감은 더 심각하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중요한 요점을 놓치면 그만큼 일의 속도는 늦어지고 때로는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우리가 늘 접하는 미국의 TV 뉴스도 마찬가지다. 아나운서가 먼저 한 뉴스를 이해하기도 전에 벌써 다른 뉴스가 나온다.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고 머리로 정리를 하려하니 문제가 된다. 가끔 코미디 쇼 같은 것을 볼 때는 그 빈약함이 서럽다. 미국 사람들이 배꼽을 쥘 때 나는 올빼미처럼 눈만 껌뻑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크루스 같은 여행에서는 코미디 쇼 같은 것은 아예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호놀룰루 할레칼라니 아파트에 살던 할아버지 얘기가 생각난다. 아들 내외가 직장에 가고 손자가 학교에 가고나면 노인은 혼자서 집을 지켰다. 아들은 늘 아무나 문열어주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개미 새끼 하나 찾아오지 않는 아파트에서 할아버지는 차라리 문열어줄 누구라도 왔으면 싶었다. 한국처럼 뜨내기 장사꾼이라도 왔으면 했다

   아침에 햇살이 잠깐 얼굴을 비치고 간 아파트에서 할아버지는 멍하니 밖을 내다보며 아득한 고향생각에 젖어있었다. 바로 그 때 누가 anybody home?(주인 계세요?) 하고 노크를 했다. 사람이 그리워 누구든, 거지라도 오면 좋겠다고, 그러면 지갑 속의 비상금이라도 털어 적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할아버지였다. 그러나 뜻 아닌 노크소리에 그는 더럭 겁이 났다. 삼년이 넘도록 any body home 하고 미국 사람이 문을 두드린 적은 없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할아버지는 괜히 몸이 움츠려들었다.

   일주일 내내 홀로 집을 지키다 일요일 날 한국교회에 가는 것이 전부였다.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영어도 못해 어디갈 수도 없었다. 교회 노인들과 어영구영 어울려도 되련만 그런 넉살조차 없어 노인은 늘 외로웠다. 할아버지는 아파트를, 아파트는 할아버지를 서로 동반자처럼 의지했다. 노인은 겁에 질려 문고리를 쳐다보며 숨을 죽였다. 그러나 노크 소리는 끈질기게 주인을 찾았다. anybody home? anybody home? 계속되는 노크소리에 견디다 못한 노인이 신경질적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nobody home, nobody home, only me body home, me body home.

   끝내 문을 열어 주지 않아 Any body home?은 한참 후 조용해졌다. 한국에서 온 긴급 전보를 가져온 우편배달부였지만 그는 긴급 전보를 전하지 못했다. 며칠 뒤 아들이 우체국에 가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訃告를 가져왔다. me body home only 때문에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한 불효를 저질렀다고 꺽꺽 울었다. 그 뒤 한동안 호놀룰루에서는 'only me body home'라는 웃지 못 할 유머가 교포들 사이에 퍼졌다. 이민자인 우리 1세들한테 영어는 살아온 시간만큼 늘지 않아 anybody home이란 질문에 me body home 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세계의 멜팅 팟 미국, 미국에서 살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 그러나 영어 못지않게

  마주치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 anybody home이란 질문에 me body home only 라고 대답해도 서로 통하는 곳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마음을 나누는 일도 중요하다. Gina 라는 내 발음을 잘못 알아들은 그들이 미안하다며 나는 Gina’라는 정확한 이름을 서로 손을 잡고 흔들면 우린 오랫동안 만난 옛 친구처럼 가까워진다. 말 한마디가 사랑을 나누고 서로를 소통하게 해 하루를 유쾌하게 한다. 하루가 유쾌해 한 달이 즐거운 삶, 듣기 좋은 말로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해야겠다.

 

 

 

슬픈 콩글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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