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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는 왜 좌파를 이기지 못하는가
05/26/20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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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너 박세원 "저 구름 흘러 가는 곳


* *



우파는 왜 좌파를 이기지 못하는가? 

 

구국의 강철대오익숙한가?

전대협이 주인이다.

 

주목할 단어는 구국이나 강철이 아니라 대오. ‘단일대오의 줄임말.

하나의 형식, 일렬로 늘어선 일련의 정연한 형태라는 의미다.

오직 하나의 목표와 달성할 의지를 갖춘 단일체라는 뜻이 강하게 내포됐다.

 

구국이 목표요, ‘강철이 결연한 의지라면 대오는 실행전략이다.

따라서 구국과 강철은 탄력적이나 대오라는 형식은 결코 바뀔 수 없다.

쉽게 말해 좌파의 내면을 채우는 특징은 바로 이 하나로 만들어진 형식적 완결성에 있다.

잘 이해가 안되는가?

 

좌파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이름들이 수두룩하다.

문은 말할 것도 없고, , , , , , 유 등등.

(국회에 자리를 튼 자들은 주류를 떠받드는 삼류 똘마니들이다.)

 

혹시 저들이에게 각자 나름의 개성과 특색을 갖춘 다양성이 보이는가?

! 하나의 색깔이다.

누군가 튄다면? ‘소영웅주의에 빠졌다는 혹독한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좌파를 지키는 중요한 키워드다.

좌파를 규정짓는 내적 규율의 핵심적 개념이다.

 

소영웅주의는 저들 이념의 준거 중 하나인 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기에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당성이 무엇이냐고?

모든 것을 바쳐 당의 결정을 관철해 나가자는 고상한 혁명정신이다.

대오를 유지해야 하는 근본이유이자 목적이다.

단일대오없이 혁명정신의 고양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튄다는 건 대오의 이탈이고 그건 혁명정신을 손상시키는 부패한 자유주의적 사고의 소치다.

 

사회적 생명체론이란 걸 들어 보셨을 게다.

전체는 하나를, 하나는 전체를.”

이 구호의 지향점이자 김일성이 표방한 사회조직 원리다.

사회주의 세계에서 개인의 존엄성이란 있을 수 없게되는 논리적 배경이다.

당이 곧 당원의 생명권을 쥔 유기체로 승격된다.

 

비슷한 뭔가가 떠오르시나?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노란 리본 캠페인.

전체는 하나를, 하나는 전체를의 전술적 변형으로 읽히지 않는가?

 

자본주의에 찌든 카피라이터의 손길로는 우연히 창작하기 어려운 개념인 거다.

사회주의를 모르면서도 이 문구에 혹하는 거짓정의감에 빠지기 십상인 착한(?) 백성들이 타켓이다.

 

이 왜 사라졌을까? 반면에 은 왜 살아남았나?

은 알아서 대오를 넘지 않은 것에 반해, 다른 둘은 지나치게 이탈했다.

 

좌파세계의 또다른 특징, 기사회생이란 있을 수 없다.

한번 봐준다는 개념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부패한 속성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사회주의에서 누군가를 한번 눈 감아 주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최고존엄만이 베풀 수 있는 특권이자 시혜를 대오에 선 자가 감히?

 

집단지도제체의 유혹과 그것을 정착시킨 중국이란 현실에 직면해서도 버틸 수 있는 북한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그들의 최고지도자는 이제 갓 삼십 대 중반에 이른 미숙한 성인임에도 청년취급 받을 수 없고, 이름 깨나 알린 수많은 남한의 좌파 유력인사들이 그를 영도자급으로 치켜세우면서도 부끄럽지 않아 하는 근본 까닭인 거다.

 

사회주의를 쫓는 개인이나 조직은 이 개념 위에 서 있다.

 

.... 정리하자면 이 용의주도한 행동원칙은 이념의 완결성과 사회적 생명체론을 지탱하는 핵심개념이다.

대오에 서 있어야할 자가 튀어 나오는 순간,

소영웅주의에 빠졌다는 통렬한 비판 앞에 대오로 복귀해야 사는 처세의 법칙.

수령(최고존엄이라 하든) 외에는 이 대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머지는 소품이다.

 

이 지적으로는 한없이 열등(다 안다)하면서도 저들이 흔들림 없는 이유는

비열한 인격이나 저급한 됨됨이, 지적 박약함은 하등의 장애요소가 안되기 때문이다.

저들은 단일대오를 구성한 하나의 세력이고 그것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니까

누군가의 우월함과 열등함이 대오를 흔드는 변수가 될 수 없다는 이치다.

 

반면, 똑똑해서 대오가 흔들린다면 그것은 당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

제거해야 한다.

 

사설이 길었다.

 

우파는 어떤가?

하나하나가 다 잘났다.

 

변희양승,’ 이 두 사람이 왜 실패했나?

그들을 지탱해줄 단일대오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각자가 다 소영웅들이기에 대영웅이 떠오르기 전까지 단일대오란 난망한 일이다.

생래적으로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여 대오를 구성하기 어렵다.

 

한때 이들도 하나의 대오를 엮어보고자 시도한 적이 있다.

십여 년 전 발족됐던 뉴라이트.’ 이름도 새로운 새로운 우파라니, 뭐가 새로왔는지 기억이 없다. 시나브로 사라진지 오래다. 그 때 활동했던, 현재도 현역인 떠오르는 이름이 있는가? 없다.

 

당성을 담보한 북한의 구호 중 하나가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이다.

결심이란 단어는 인격적이다.

그래서 자유주의 국가에서 조직은 결정을 할 뿐, 결심을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당이 결심한다는 표현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에 인격성을 의도적으로 부여했다.

 

여기서 당성이란 개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것은 특정 조직의 특별한 결정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인 당이 전 인민의 총화를 담아낸 결심이기에 이걸 거스르는 자 누구도 봐줄 수없게 된다는 거다.

이 얼마나 용의주도하고 일관하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이상적 사상인가!

 

이렇듯 주도면밀하고 일사불란한 좌파를 우파가 이길 수 있다고?

특공훈련을 받은 정예군 앞에 선 오합지졸 정도로 비칠 거다.

방법론에서 이미 진 게임인 거다.

 

그래서 우파는 보다 본질적인 가치에 천착해야 한다.

바로 진실이란 보이지 않는 가치의 힘에 의존해야 하는 거다.

 

여기서 진실이란 우아하고 고상한 이념이나 목표가 아니다.

객관적이고 입증가능한 과학적 진리도 아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심오한 종교적 진리도 아니다.

추하고 외면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의 진정성’, ‘삶의 적나라한 자리를 직면하는 일이 진실인 거다.

 

그 때 무엇을 했는가, 또는 하지 않았는가, 왜 그랬는가에 대한 뼈저린 반성의 고백이 진실을 대면하는 용기다.

 

좌파가 소영웅주의란 칼로 내부를 단련할 때, 우파는 진실이란 가치를 보는 안목을 키워야 했다.

 

진실을 보고 말할 수 있는 용기로 백의종군해야 천심을 얻는다.

 

그랬어야 할 우파는 이미 30년 전에 죽었다.

? 진실에 눈 감을 때 끝난 거다.

거짓과 적당히 타협하기 시작한 그 때 이미 좌파의 완전한 숙주로 전락한 거다.

 

오늘날 좌파의 득세는 긴 세월 갈고 닦은 그들만의 빛나는 내공의 열매가 아니라,

죽어버린 우파의 시체를 파먹으며 성체로 만개한 결과일 뿐이다.

 

암은 사람을 죽이지만 그 사람이 죽으면 암도 사라지듯 그들도 곧 죽을 날이 멀리 남진 않았을 성 싶다.

암세포가 가장 왕성했을 때가 말기인 것 처럼.

 

다만,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의 시간 속에서 굳이 지불하지 않아도 될 다양한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거다.

 

이 또한 역사의 필연일테지만. 과연 무엇이 희망일까.

 

출처: https://www.facebook.com/hyojin.kim.73157

 

 

* *


우익은 거짓에 화내고 

좌익은 진실에 화낸다.


'실리를 추구한다'라는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보수는 망한다.


* *




아침 바닷가

사진/ 날 저무는 하늘에


 


좌파, 빨갱이, 좌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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