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망래(考昨望來)
09/06/201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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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망래(考昨望來)


소리나는대로 적으면 '고작 막내'다.

내가 고작 막내둥이로 태어났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게 무슨 유명한 고사성어 사전에 있는 말도 아니다.

순전히 내가 지어낸 말이다.

또 모르지...언젠가 먼 훗날 이게 유명한 사자성어(四子成語)로 남게 될 날이 올지.

암튼 이건 지난날을 돌아보고 내일을 기약한다는 뜻으로 오늘 내가 지어낸 말이다.



얼마 전에,

한국에 계시는 형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귀한 자료 하나를 업어왔다.



조선 말기,

즉 대한제국 융희 4년(서기 1910년) 10월 10일,

순종황제 시대에 정부기관에서 발행한 여행증명서다.


당시에 지방에서 한양(지금의 서울시)에 가려면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나보다.

경상북도 함창군 남면 율곡리에 사는 민영석(閔泳奭)이라는 사람이,

한성부 정승들이 사는 계시동 민철훈(閔哲勳)씨 댁에 문상을 가기위해,

10월 11일에 떠나서 3개월 내에 돌아올 예정인 바,

이 기간이 지나면 이 증명서는 무효라는 것이고,

여기 기록된 사실은 허위가 없는 것이며,

명치 43년 10월 10일에

경상북도 함창 군수 이선호(李宣鎬)가 발행했다는 관인이 찍혀 있다.


내용 중의 여행 신청인은 필자의 증조할아버지시다.



민철훈(閔哲勳)은,

조선왕조 26대 왕(王) 고종황제 비(妃)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친족으로,

1884년 과거에 급제한 뒤 1889년 승정원 동부승지,

1893년 성균관 대사성 등 관직에 나갔다.

1897년 충청남도 천안에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근대식 교육을 실시했다.

1901년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영국을 겸임하는 특명전권공사로 발령 받아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1920년 윤덕영 등이 해동은행을 설립할 때 설립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 여행증명서가 발급된 날짜는,

한일 합병조약이 체결된 1910년 8월 22일로부터 채 두 달이 되지 않았던 때다.


대한제국(大韓帝國) 융희(隆熙) 4년(1910년) 

일본 제국은 순종에게 한일 합병조약에 공식적으로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순종은 조약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으며, 

8월 22일 결국 당시 총리대신인 이완용이 이에 대신 서명했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에 합병되면서 멸망하였으며,

역사상 조선왕조는 끝이 났다.


이후 순종은 모든 권한을 잃고 창덕궁에 거처했다.

그 해(융희4년, 명치43년)가 경술(庚戌)년 이라,

한일 합병조약을 경술국치(庚戌國恥)라 부르기도 한다.

경술년에 있었던 국가적 수치라는 말이다.



순종황제의 마지막 칙령


한일 합병조약은 1910년 8월 22일에 조인되어 8월 29일에 공포된,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이루어진 합병조약이다.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함께 서명해 조약을 통과시켰으며,

이때부터 1945년 세계 제 2차 대전 중에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함으로 해방될 때까지,

대한제국은 국권을 상실하고 일본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조약 전문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국 황제 폐하는,

두 나라 사이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시키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자고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에 두 나라 사이에 합병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하여,

한국 황제 폐하는 내각 총리 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을,

일본 황제 폐하는 통감(統監)인 자작(子爵) 사내정의(寺內正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각각 그 전권 위원(全權委員)으로 임명하는 동시에,

위의 전권 위원들이 공동으로 협의하여 아래에 적은 모든 조항들을 협정하게 한다.


1.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
1.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조항에 기재된 양여를 수락하고,

   완전히 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락함.
1. 일본국 황제 폐하는 한국 황제 폐하,

   태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와 그들의 황후, 황비 및 후손들로 하여금

   각기 지위를 응하여 적당한 존칭, 위신과 명예를 누리게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데 충분한 세비를 공급함을 약속함.
1.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 조항 이외에 한국황족 및 후손에 대해

   상당한 명예와 대우를 누리게 하고,

   또 이를 유지하기에 필요한 자금을 공여함을 약속함.
1. 일본국 황제 폐하는,

   공로가 있는 한국인으로서 특별히 표창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대하여,

   영예 작위를 주는 동시에 은금(恩金)을 줌.
1. 일본국 정부는 앞에 기록된 병합의 결과로,

   완전히 한국의 시정을 위임하여 해당 지역에 시행할 법규를 준수하는

   한국인의 신체 및 재산에 대하여 전적인 보호를 제공하고 또 그 복리의 증진을 도모함.
1. 일본국 정부는 성의충실히 새 제도를 존중하는 한국인으로

   적당한 자금이 있는 자를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한국에 있는 제국 관리에 등용함.


본 조약은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 황제 폐하의 재가를 받은 것이므로

공포일로부터 이를 시행함.
위 증거로 삼아 양 전권위원은 본 조약에 기명 조인함.
융희 4년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메이지 43년 8월 22일 통감 자작 데라우치 마사타케.


한일 합병을 알린 조선총독부 관보 제 1호. 왼쪽은 한국어 번역본임.



창덕궁 대조전에 있는 흥복헌.

1910년 8월 22일 이곳에서 한일 합병 조약을 찬성하는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옛 건물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 건물을 1920년 중건한 것이다.


이듬해 인 1911년에 안중근 의사가 이또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런 일들이 다시 일어나서야 되겠는가!



글 : 옹달샘


<여행증명서 외 다른 사진은 구글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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