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렇게 불행하게 죽어간 것은
07/13/201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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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1922 425홋카이도 아사히카와 시에서 태어났다

아사히카와 시립여고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7년간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퇴직 후 그는 폐결핵과 척추골양이 겹쳐 13년간 요양생활을 했다

1952년에 오노하라 린조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1959년에 아사히카와 시 공무원인 미우라 미쓰요와 결혼했다

하야시다 리츠코라는 필명으로 태양은 다시 지지 않고(太陽?せず)’를 투고해 입선했다

미우라 부부는 잡화점을 운영했는데, 가게가 번창하여 이웃 가게들이 장사에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

남편의 권유로 가게 규모를 줄이고 남는 시간에 글을 썼는데, 이때 쓴 글이 ‘빙점이다.

 

양치는 언덕빙점에 이은 작품으로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짊어진 고뇌와 좌절과 허무와 절망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나오미, 남자 주인공은 료이치. 나오미는 목사(牧師)의 딸이다

나오미는 여고시절에 알게 된 친구의 오빠 료이치를 졸업 후에 다시 만나게 되고

료이치와 눈이 맞아 부모를 버리고 집을 나간다


나오미는 몇 년을 료이치와 함께 살았지만 

술버릇이 나쁘고 바람기가 심한 남편과 도저히 더 함께 살 수가 없어서

도망을 나와 다시 친정으로 돌아온다. 얼마 후 폐병에 걸린 료이치가 나오미에게로 왔다

나오미는 받아주려 하지 않았지만, 친정 부모의 권면으로 받아준다.

 

아버지 고스케가 나오미에게 말했다. “사랑한다는 건 용서하는 것이란다

한두 번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용서하는 것이지!”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료이치를 믿지 못하는 나오미에게 아버지는 다시 말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살리는 것이다. 또 용서하는 것임을 잊지 마라!”

 

처가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료이치는 

장인 장모의 믿음에 감동을 받아 예수를 영접하게 되면서 점점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 간다

료이치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매일 다락방에 올라가 그림을 그린다

나오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기 위해 그리는 그림이라

그는 자기가 그리는 그림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언제나 하얀 천으로 덮어놓았다

나오미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전에 사귀던 데루꼬에게서 전화가 온다. 피할 수 없어 나가서 만난다

데루꼬가 술을 권했지만 마시지 않았다. 하룻밤 함께 지내자며 유혹했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데루꼬가 료이치 모르게 술에 수면제를 탄 후, 이 술 한잔만 마시면 그냥 가도 좋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료이치는 데루꼬가 권하는 술 한 잔을 마셨다

눈이 감기고 잠이 왔지만, 그곳에 더 머물지 않기로 작심한 료이치는

데루꼬의 방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어두운 밤길에서 잠이 들어 동사(凍死)했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료이치를 장례한 후 료이치의 그림을 벗겨보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는 예수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십자가 아래 한 청년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팔을 뻗어 십자가를 붙들고 있었다

십자가에서 흐르는 예수의 피가 청년의 머리를 적시고 있었다

그 청년은 료이치였다. 나오미의 아버지가 그림을 보고 말했다. “이 그림은 료이치의 신앙고백이다!” 


나오미는 스물 세 살의 젊은 나이지만 재혼을 하지 않고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언덕에서 들판을 바라보며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본다

양치는 언덕에서, 나오미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있던 선생님 다께야마와 함께 하늘을 바라본다

둘이 함께 길을 걷는다

나오미를 사랑했던 다께야마는, ‘더 이상 들어가지 마시요!’라고 쓰여진 푯말을 보고 깨닫는다

나오미를 사랑하기에 나오미를 떠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 책에는 근친상간(近親相姦) 비슷한, 막장드라마 같은 내용이 있다

목사인 나오미의 아버지는 지난 날 나오미의 이모와 불륜을 저질렀고

료이치는 어머니의 불륜상대인 남자의 딸이자 나오미의 여고 동창생인 데루꼬와 파람을 피웠다

그렇더라도 이 글의 테마가 사랑과 용서임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은 불완전한 죄인이며,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살아야 하는 존재다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얽힌 애증(愛憎)을 갖고 살아간다

불완전하기에 분노하고, 또 이기적인 사랑에 빠지며 서로 상처를 준다.

 

사랑할 수 없는 상대일수록 더 강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료이치의 말은

이젠 사회에서 흔해져버린 불륜의 근원이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죄악임을 확인하게 된다

한편 다께야마가 보여주는 갈등은

죄악임을 알면서도 이겨내기 힘들어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란 방황하는 양들보다 더 어리석은 존재임을


그리스도의 용서로 인간이 구원을 얻은 것처럼

신앙을 전혀 몰랐던 료이치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이해하면서 그린 그림이

독자(讀者)들에게 용서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한다

책의 제목 양치는 언덕은 사랑과 용서의 상징인 교회를 비유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용서받지 못할 사람도 없음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이 소설을 통해

모든 인간은 다 같은 죄인이기에 사람은 사람을 서로 끝없이 사랑해야 하며

죄 지은 상대방을 끝없이 용서해야 함을 말하고자 했다

그러나 독자(讀者)의 입장에서는 거기에서 그칠 수만은 없는 무엇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는데

그것은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죄를 짓는다

마음으로 죄를 짓기도 하고, 행동으로 죄를 더하기도 한다

나는 범죄 한 상대방을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용서한다고 해도

죄를 범한 당사자 본인은 어떨까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마지막에 예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면 모두 끝나는 것인가?

 

성경에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태복음 5:28)’는 예수의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을, 세상에 그 누구도 죄에서 자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함부로 남을 정죄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다 같은 죄인인 마당에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인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사람들 가운데 세우고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다.(요한복음 8:3-7)

 

이것은, 마음으로 짓는 죄와 행동으로 옮기는 죄가 같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씀은, 자기들은 죄가 없는 사람인 줄로 착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지적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가지고 마음으로 짓는 죄와 행동으로 옮기는 죄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논리의 비약(飛躍)이다


마음으로 짓는 죄를 벌할 법은 세상에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양심의 문제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는 죄는 다르다

마음으로 짓는 죄는 자신에게서 끝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죄는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준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죄를 범한 사람이 벌을 받지 않아도 되고

그런 사람에게 벌을 주지도 않는다면, 그 죄는 처음부터 죄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일반적으로, 

공동체적 관계 안에서 정해진 규범(規範)이나 윤리(倫理)에 어긋나거나 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종교에서는 대체로 계명(誡命)에 근거하여 그것과 어긋나거나 반하는 것을 말하고

일반 사회에서는 합의해 정해놓은 법률 조항(條項)에 근거해서 그것과 어긋나거나 반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사회통념(社會通念)상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은, 

마땅히 지켜야 할 것으로 정해진 규범(規範)이나 

윤리(倫理)에 어긋나거나 반하는 행위에 대한 제재(制裁) 수단(手段)이다

위법한 행동을 제재함으로 어그러진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내가 잘못을 했을 때는 할 수만 있다면 벌을 조금만 받기를 바란다

나아가서 벌을 받지 않을 수만 있다면 잘못에 대한 벌을 받지 않고 싶어 한다

반대로, 나와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가 잘못했을 경우에는 상당히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온갖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자기의 유익에 방해가 되면 법대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현실 사회의 모습임을 부인할 수 없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죄와 벌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포악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 불행을 당하면 사람들이 보통 말한다

그 사람 천벌(天罰)을 받았다

죄를 지으면 응분의 벌이 따르게 되어있다

죄를 짓는 자에게 벌이 따르지 않는다면 

사회질서는 무너지고 세상은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것이다


죄를 지었는데 벌을 받지 않는다고 그 삶이 행복한 삶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으로 정해진 법이 아니더라도 

양심(良心)의 법에 의해 판단을 받게 되어있다

양심이 살아있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고, 그것이 양심의 길을 어긴 벌이다

비록 체벌(體罰)은 받지 않았지만 

평생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죄에는 반드시 벌이 따라야 한다. 그래야 공의(公義)가 산다

어떤 이는, 사람이 죄를 짓는다고 하나님이 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벌은 자신이 저지른 죄의 결과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료이치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았을지는 몰라도

그가 그렇게 불행하게 죽어간 것은 바르게 살지 않은 죄에 대한 벌이다


하나님이 벌을 주신 것이든, 자신이 저지른 죄의 결과이든(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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