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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덴세(덴마크)
07/31/2020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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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mark







오덴세



Odense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일부 백인은 흑인을 몽키라 불렀다.

흑인들은 그 소리를 듣고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몽키라고 한 자는 회사의 백인 수퍼바이저였고 웃은 사람들은 백인, 흑인, 동양인 모두 함께 있는 자리였다.

이것은 내가 직접 보고 체험한 실제 이야기다.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 못했지만 흑인들은 집으로 퇴근하며 입술을 깨물었을 것이다.

만약 지금 그런 일이 유튜브에 떴다면 일은 어떻게 진행될까?

아마 큰 데모가 일어나고 그 백인은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세상은 많이 변했다. 북유럽의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하는 덴마크에서도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을 코펜하겐의 오랑우탄이라 부른 것이다.

바짝 마른 키, 매부리코, 긴 팔, 구부정한 어깨를 가졌던 안데르센.

하지만 지금 전세계에서 안데르센 만큼 동화작가로 이름을 떨친 작가는 없다.

가난하고 험난한 어려움을 떨쳐내고 그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동화작가가 됐다.

안데르센의 발자취를 찾아 그의 고향 오덴세로 향했.





성당 뒤에는 정원이 있고 다리를 건너면 안데르센 공원으로 연결된다.

정원에는 안데르센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안데르센 박물관 입장권을 사면 박물관, 유년기의 생가, 그가 태어난 집,

문화사 박물관, 어린이 문화센터 등 다섯 곳을 모두 입장할 수 있다.

다섯 곳은 서로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천천히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에 좋다.

다섯 곳을 다니며 느낀 것은 안데르센은 단순한 동화작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혁신가이자 발명가였다.

단어, 종이 클립, 사진, 낙서 등 모든 것이 그의 혁신적인 놀이를 위한 잠재적 자료였다.

그의 문학은 혁명을 일으켰으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속담과 표현이 바로 그에게서 나온 것이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805 4 2일 덴마크 오덴세에서 태어났다.

오덴세는 코펜하겐 남동쪽 핀섬에 있는 항구 도시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공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빨래하는 여인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22, 어머니는 30세의 재혼녀였다. 부모는 모두 배운 것이 없고 가난했다.

그들의 침대 조차 어느 귀족의 관을 뜯어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려 하는 노력은 여느 부모들과 똑같았다.

특히 아버지는 가난 때문에 학교를 못갔지만 원래는 지적이고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집에는 아라비안 나이트, 라 퐁텐 우화 등 많은 책들이 진열돼 있었다.

밤이 되면 그는 아들에게 인형극을 보여 주고 우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안데르센은 아버지 책장의 책을 읽으며 유명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안데르센이 11살 되는 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년 후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이후 안데르센은 공장에 나가 돈을 벌어야 했다. 직조 공장과 담배 공장, 재단사 견습생으로 일했다.

공장 사람들은 안데르센과 함께 일하며 그가 놀라운 재주를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린 안데르센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가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은 공장 기계를 멈추고 귀를 기울일 정도였다.

어떤 사람은 너는 반드시 무대에 서야 한다고 안데르센에게 말해 주기도 했다.

안데르센의 꿈은 무대에서 노래와 연기를 하는 연극배우였다.

당시 오덴세에는 극장이 하나 있었다. 덴마크에서는 코펜하겐과 함께 두 개 밖에 없는 극장이었다.

안데르센은 극장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그의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연극을 통채로 외워 거울 앞에서 연기를 재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극을 하기 위해서는 왕립극단 단원이 되어야 했다.

당시 덴마크 왕립극단은 코펜하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은 것도 바로 이때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안데르센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글을 쓰겠다는 꿈도 이때부터 생겼는지 모른다.





안데르센은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열네 살 되던 해 코펜하겐으로 떠났다.

지금은 섬마다 다리가 연결돼 있어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마차를 타고 항구로 가야 했으며 항구에서는 배를 타고 대해협을 건너야 했다.

그리고 다시 마차를 타고 하루종일 달려야 코펜하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며칠이 걸리는 대장정의 여행길이었다.

안데르센은 3년 동안 코펜하겐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살았다.

그는 가수, 댄서, 배우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변성기 때문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그는 가수나 배우가 되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했다.

그 때 안데르센에게 희망을 불러 넣어준 사람이 바로 요나스 콜린이다.

콜린은 덴마크 왕립극장의 감독이었다.

안데르센이 쓴 연극대본을 본 그는 안데르센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많은 후원을 해주었다.

당시 국왕(프레데릭 6)에게 안데르센의 교육 비용을 지불하도록 설득할 정도였다.

이후 안데르센은 슬라겔세와 헬싱괴르에서 교육을 받았다.

두 도시 모두 덴마크 최대의 섬인 셸란섬에 위치하고 있었다.

22살 때 안데르센은 코펜하겐으로 다시 돌아 왔다. 다음해 그는 코펜하겐 대학에 입학했다.





1829년 안데르센은 단편 소설, 코메디, 다양한 시를 출판하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1833년에는 국왕으로부터 여행 경비를 지원 받고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을 여행했다.

여러 국가 중 그가 가장 좋아한 국가는 이탈리아였다.

1835년 안데르센은 그의 첫 번째 소설 즉흥시인(Improvisatoren)을 발표한다.

전세계 수많은 독자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안겨준 그의 자서전적인 소설이다.

즉흥시인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 오해와 행복에 관한 소설이다.

이후 그는 분홍신,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벌거숭이 임금님, 미운 오리 새끼, 나이팅게일,

늪 임금님의 딸, 늙은 떡갈나무의 마지막 꿈, 얼음 공주, 치통 아줌마,

그림없는 그림책 등 총 160여펀의 동화 작품을 발표했다.

모두 주옥과 같은 최고의 작품들이다. 안데르센은 여행을 좋아했다.

그가 여행을 다니며 다른 국가에서 머문 기간만 15년 이상이 된다.

한 번 여행을 떠나면 1-2년은 기본이었다.

그가 책에서 인용한 가장 유명한 글도 여행하는 것이 사는 것이라는 문구였다.

데르센은 평생 독신으로 살다 1875 8 4일 코펜하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에는 국왕과 많은 시민들이 참석 덴마크 국보 제1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는 덴마크인으로는 아직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 사진: 서정




Hans Christian Ander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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