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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슈반슈타인 성(독일)
10/28/201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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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schland 






노이슈반슈타인 성



Schloss Neuschwanstein



10년만에 다시 찾은 백조의 성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며 디즈니랜드 성의 모티브가 된 노이슈반슈타인 성.

성의 옛 주인은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2세였다.





루트비히 2세는 어린 시절을 그의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가 건축한 호헨슈방가우(Hohenschwangau) 성에서 보냈다.

성의 내부는 로엔그린에 등장하는 백조의 기사와 탄호이저의 미네징거(음유시인)의 그림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다.





감수성 예민한 15세 때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감상하게 된다.

그 때부터 그는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바그너의 음악세계에 깊이 빠지게 됐다.

18살의 나이에 왕이 된 그가 처음으로 한 일도 바그너를 만나는 것이었다






왕은 32세 연상의 바그너를 나의 구세주, 나의 신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바그너, 그대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대가 없다면 나도 없습니다.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

그 것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왕이 바그너를 신뢰하고 사랑한 것은 무한적인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600통 정도의 편지를 교환했다.





왕이 국정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당시의 정치상황 때문이었다.

1864년 루트비히 2세는 왕의 자리에 오르지만 2년 후 바이에른은 프러시아에 의해 정복당한다.

실질적인 왕권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성()을 건축하는 일에 혼신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가 생전 지은 성은 린더호프 성, 헤렌킴제 성, 노이슈반슈타인 성 등 3개지만 그의 계획에는 또 한 개의 성이 있었다.

그만큼 성을 짓는데만 온 정열을 쏟은 기이한 왕이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크리스티안 양크(Christian Jank)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건축된 건축물이다.

호헨슈방가우 성 위쪽에 지어진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는 알프 호수와 호엔슈방가우 성이 그대로 내려다 보인다.





*2층으로 지은 공식 알현실(Throne Room)은 화려한 비잔틴 교회 벽화와 천장, 금촛대가 놓여있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왕좌는 없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내부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다. 2개 사진과 아래 4개의 사진은 구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외에도 이곳에는 루트비히 2세의 드레싱룸, 다이닝룸, 음악홀, 도서실 등 모두 14개의 방이 만들어져 있다.





성의 내부를 모두 관람한 관광객들은 마리엔 다리(Marienbrucke)로 발길을 옮긴다.





성을 배경으로 사진촬영하기에 가장 좋은장소이기 때문이다.





루트비히 2세가 좋아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출생하자 마자 아버지가 죽고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았는가 하면, 연상의 여인인 미나 플라너와 결혼했고,

빚쟁이로 늘 쫒겨다니기도 했으며, 상인의 예쁜 아내 마틸다 베젠동크와 사랑을 나누고,

제자(한스 폰 뵐로)의 아내이자 리스트의 딸이었던 코지마를 빼앗아 그의 두 번째 아내로 맞아 들이기도 했다.





그는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음악만큼은 완벽했다.

한 번 들으며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이 바그너의 신비로운 음악이다.

바그너리안이란 말이 생기고 그의 성지 바이로이트 축제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다.





노이슈반슈타인 성도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에게 헌정하기 위해 지은 성이다.

하지만, 바그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완성을 보지도 못한채 1883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년 후, 루트비히 2세는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입주한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총리와 각료들의 불만과 백성들의 원성뿐이었다.

그는 건축자금 조달을 위해 자신의 돈을 모두 탕진했으며 국가로 부터 돈을 빌리려 하기도 했다.





어려서 부터 쉴러의 시를 즐겨 읊고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했던 루트비히 2.

그는 시시(오스트리아 왕비)의 막내동생 소피와 파혼 한 뒤 여인과의 결혼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헝가리 출신의 남자 배우와 그를 호위하는 근위 장교 등 주위 남자들과 동성연애를 벌이기도 했다.

각료들은 그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루트비히 2세는 각료들에 의해 폐위(1886 6 9)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성에서 58마일 떨어져 있는 베르크 성으로 유배됐다(6 11).

베르크 성은 슈타른베르그 호수(당시에는 뷔름세 호수)에 위치해 있는 아주 작은 성이다.





나는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베르크 성을 찾았다.

이곳은 슈타른베르그역에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 가야 하는 오지 중 오지였다.

성은 숲속에 있었고 호수는 성 앞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누가 큰 소리로 살려 달라고 해도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외진 곳이다.

루트비히 2세가 유배된지 2일 후 그는 주치의와 함께 호수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6 13).

사인은 자살이었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다.

직접 호수에 가 보니 루트비히 2세가 죽은 장소는 물이 무릎에 닿는 얕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는 키(190 cm)도 크고 팔이 길어 어려서 부터 수영을 아주 잘 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얕은 곳에서 자살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 숲속에서 살해된 뒤 두 사람의 시체는 물가로 들려져 왔을 것이다.

많은 역사학자들도 루트비히 2세는 타살됐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백조의 기사를 자처하며 평생 ()에 집착한 루트비히 2.

그가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지낸 기간은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은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현재 매년 백 오십만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바이에른 최고의 명소가 됐다.

 

 

, 사진: 서정




Schloss Neuschwanstein


여행팁: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호헨슈방가우 성은 두 군데 모두 가이드를 통한 투어만 가능하다.

영어와 독일어로 따로 운영이 되는데, 투어때 마다 15명 정도의 그룹으로 나뉘어 진다.

투어 시간은 티켓을 구입 할 때 명시되어 나온다.

티켓 가격은 각각 13유로지만, 두 성을 모두 관람하는 것이 좋다.

가격은 25유로. (시니어 65세 이상은 23유로)

관람시간은 여름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

겨울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1 1, 12 24, 25, 31일은 문을 닫는다.

 매표소에서 노이슈바슈타인 성을 걸어서 올라 가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때는 마차(30) 또는 버스(5)를 이용하면 된다.

가격: 올라 갈 때는 마차 6유로, 버스 1.8유로.

내려 올 때는 마차 3유로, 버스 1유로.

 

호헨슈방가우 성은 걸어서 올라 가면 된다.

성 안에서는 두 개의 성 모두 사진촬영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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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의 이미지(6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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