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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쉬르 우아즈(프랑스)
01/24/2019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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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오베르 쉬르 우아즈

 


Auvers-sur-Oise



까마귀 나는 밀밭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고뇌와 열정의 사나이를 만나러 가는 길.

길은 군데군데 패였지만 담 옆으로 예쁜꽃이 보인다. 고흐가 좋아한 해바라기는 아니다.

그러나 보라색 리빙스턴데이지는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다.





드디어 고흐가 묻힌 오베르 공동묘지 앞에 섰다. ! 얼마나 오고 싶었던 곳인가?




고흐가 마지막 70일을 보내고 죽고 묻힌 마을.





그러나 나는 고흐의 묘지를 보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가슴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강물처럼 흐른다.





눈시울마저 빨개지자 함께 여행한 임변호사가 조용히 자리를 비킨다.





고흐와 테오가 묻힌 묘지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초라했다.





고흐의 묘지 앞으로는 화려한 대리석 무덤들이 펼쳐져 있고..




묘지 끝 중앙에는 프랑스 국기가 펄럭인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네델란드 북부 브라반트 지방, ‘준데르트에서 태어났다. (고흐 20세 때 사진)





*4년 뒤 동생 테오가 태어났다. 바로 고흐를 평생 뒷바라지 해준 의리의 동생이다. (테오 15세 때 사진)





테오는 고흐에게는 동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님보다 더 고흐를 인정해 주고 도운 도량 넓은 인물이었다.

오는 15(1872) 때부터 고흐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 (위 사진은 고흐가 그렸던 오베르 계단)





당시 고흐는 네델란드어, 프랑스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다. (위 사진은 네델란드의 잔세스칸스) 

신학대 입학시험을 준비하던 22살 때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편지는 네델란드어, 프랑스어, 가끔 영어로 글을 쓸 때도 있었다.





성서 이야기, 신학 이론, 읽을만한 책을 테오에게 추천해 주기도 했다. 어린 테오에게 고흐는 인생의 멘토였다.





테오는 고흐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형이 천재요 엄청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우울증이 있는 고흐가 화를 내거나 광기를 부려도 테오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결혼하고 아기가 생겨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아내를 이해시키고 첫아들의 이름을 빈센트라고 지었다.





고흐가 죽자 테오는 큰 충격을 받았다. 6개월 후 테오도 숨을 거두었다.





고흐는 평생 4개국에서 서른 여덟번이나 주소를 옮기며 살았다. 마지막 거주지가 바로 오베르 마을이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우아즈 강 위에 있는 오베르 마을이란 뜻이다. (위 사진은 오베르 마을의 고흐 청동상)





고흐는 테오에게 편지 쓰기를 오베르는 아주 아름답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라고 했다.

사실 오베르는 고흐 이전에 코로, 도비니, 피사로, 세잔 등 다른 화가들도 찾았던 마을이다.





특히 도비니는 고흐가 아주 존경한 화가였다. 그는 고흐가 마을로 오기 10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집은 현재 도비니 미술관(위 사진)으로 운영된다.





오베르는 고흐 이후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마을로 변했다.





2천명에 불과했던 주민수는 7천명으로 늘어났고 매년 방문객 30만명이 넘는다.





방문객들은 고흐의 체취가 있는 라부 여인숙, 시청사(위 사진), 마을의 계단,




오베르 교회(위 사진), 까마귀 나는 밀밭, 묘지 등을 방문한다.

2020년은 고흐가 세상을 떠난지 130년 되는 해다.





돈 맥클린이 작사 작곡한 빈센트는 위대한 화가에 대한 애도의 음악이다. (위 사진 = 오베르 교회)

누구나 이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찡해진다. 인지상정(人之常)이다.





맥클린도 힘든 결혼생활 중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빈센트를 부르고 있는 가수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리앤 라 하바스(Lianne La Havas).





*고흐는 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 팔았다.

1888년에 그린 붉은 포도밭이란 작품이다.

그림은 안나 보쉬라는 여인이 구입했는데 그녀는 고흐의 친구 외젠 보쉬의 누님이다.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그린 그림이다.

그림은 1890400프랑에 팔렸다. 요즘 시세로 2천달러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 정도로 고흐의 그림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었다.





그는 팔리지 않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읇조린다.






내 그림이 팔리지 않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언젠가 내 그림이 물감 값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친듯이 붓을 들었던 불타는 영혼의 철저히 고독했던 남자.





오늘날 그의 그림은 미술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꼽는 작품이 됐다.





*1990년에는 고흐의 가셰박사 초상화(Le Docteur Gachet) 8 2 5십만달러에 팔린 바 있다.





현재 시세로는 일억 오천만 달러가 넘는 액수다.




이 작품은 딱 100년 전인 1890년 고흐가 오베르 마을에서 그린 것이다.





고흐는 27살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10년 동안 그가 그린 작품은 모두 2,000점이 넘는다. 그 중 회화가 900여점이다.





이것은 고흐가 매주 4점 정도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뉴욕 현대미술관 =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가난하고 외로운 상황에서 그는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오베르 교회, 1890년)





나는 내 안에 끌어내야 할 힘, 도저히 끌 수 없어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할 큰 불길을 느끼지만,

그것이 어떤 결말에 도달할 지는 알 수 없구나. 그러나 결말이 설사 암울한 것이라 해도

나는 별로 놀라지 않을거야.” (워싱톤 국립미술관 = 고흐 자화상)






고흐가 죽기 6년 전(1882) 테오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다.





1890 7 27 아침, 고흐의 우울증이 악화됐다. (Green Wheat Fields, 1890 워싱톤 국립미술관)

그는 권총을 들고 밀밭으로 나간다. 하늘을 한 번 우러러 보고 그는 가슴에 총을 겨누었다.

 까마귀가 푸드득 밀밭을 날았다. 그는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틀 후, 빈센트 반 고흐는 오베르에서 눈을 감는다.

옆에는 테오가 있었다.


 

, 사진: 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