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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스페인)
04/16/202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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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ana




세비야



Sevilla



오늘은 그라나다에서 세비야까지 2시간 40분을 달렸다. 세비야는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도시다.

총인구는 69만명. 도시의 표어는 "성모는 우리를 져버리지 않는다이다.

투우와 플라멩코, 오페라의 배경 도시로도 유명하다.

비제의 카르멘, 로시니의 세비아의 이발사,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베토벤의 피델리오의 무대도 바로 세비아였다.

세비아 대성당은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 있는 성당 중에는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성당 내부에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무덤도 있다.

콜럼버스의 시신은 처음 바야돌리드에 묻혔다가 세비야의 카르투지오회 수도원,

도미니카 공화국(산토 도밍고), 쿠바(하바나)로 옮겨 졌다가 세비야 대성당으로 오게 된 것이다.

콜럼버스의 관은 스페인 왕국을 상징하는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 등

4명의 전령들이 어께에 메고 있는 모습이다.





세비야의 가로수는 오렌지 나무다.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렸지만 따서 먹는 사람은 없다.

현지인에게 물어 보니 비린 오렙지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수퍼에서는 보통 오렌지가 다른 과일보다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스페인 광장은 스페인에서는 가장 큰 광장이다.

반달형으로 지은 건축물은 탑과 다리, 분수가 잘 어울려져 장대한 광장을 만들었다.

건물 앞쪽으로는 역사적 사건들을 타일로 묘사한 작품들이 많다.

관광객들은 마차투어를 하며 광장의 낭만을 맛 보기도 한다.

과달키비르 강가에 있는 황금의 탑은 13세기 초에 지은 건축물이다.

중세시대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비제의 카르멘이 여공으로 일했던 담배공장(Fabrica de Tabacos)도 방문했다.

현재 여공들은 없고 대학생들만 있다. 대학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비아의 왕립 마에스트란사 투우장(Plaza de Toros de La Maestranza)은 스페인에서 가장 큰 투우장이다.

13,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바로크 양식의 투우장은 1762년부터 1881년 사이에 지은 것이다.

투우 씨즌은 3월 또는 4월에 시작 10월에 끝난다.

투우장 밖에는 세비야의 전설적인 투우사, 쿠로 로메로(Curro Romero)의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투우가 열리지 않을 때의 투우장 입장료는 일반 8유로, 시니어(65세 이상) 5유로를 받는다.

물론 투우가 열릴 때는 더욱 비싸진다.

투우 경기의 티켓 가격은 자리에 따라 20유로에서 120유로까지 다양하다.





알카사르는 겉으로 보기에는 투박하지만 세비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1248년 가톨릭 군대에 의해 탈환되어 14세기 페드로1세가 대규모로 개축했다.

내부는 알함브라 궁전과 흡사하게 보인다. 실제로 무어 장인이 무데하르 건축 양식으로 지은 것이다.

내부에는 대사의 방’, ‘술탄의 침실’, ‘인형의 정원등 볼 것들이 풍성하다.

알카사르는 무어인이 만든 스페인의 궁전 또는 요새를 뜻한다.


알카사르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산타 크루스라는 예쁜 골목길이 나온다.

예전에는 유대인 거주지역 이었다. 골목은 상점, 레스토랑, 바 등이 모여 있어 아기자기 하고 늘 인파로 북적인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바는 보데가 산타 크루즈(Bodega Santa Cruz)라는 곳이다.

작은 접시에 담은 타파스를 전문으로 한다. 타파스 한 접시의 가격은 2.5유로 미만이지만 맛은 좋다.

그 중에서 맥주와 함께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오징어 등 해산물 튀김 타파스다.





세비야 대성당은 1402년 부터 100년 동안에 걸쳐 지은 건축물이다.

대성당의 길이는 126m, 너비는 76m이며 히랄다 탑까지의 높이는 104.5m에 이른다.

히랄다 탑(La Giralda)은 대성당의 종탑을 말한다.

입장료 9유로을 내면 대성당을 관람 한 후 히랄다 탑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탑 꼭대기에서는 세비야 시내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다.


대성당에는 막달레나 예배당, 산 페드로 예배당 등 모두 80개의 예배당이 있다.

그 외에도 대성당 안에는 은으로 만든 900개의 은세공, 15세기에 제작된 스레인드글라스, 고대부터

20세기에 제작된 조각품, 15세기부터 19세기에 그려진 833점의 회화 등 수많은 보물들이 있다.

그래서 세비야 대성당은 스페인 최고의 박물관 중 하나로 간주하기도 한다.





콜럼버스는 1451년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터 직조 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도왔지만 지도 제작과 항해도 함께 공부했다.

언젠가는 바다로 진출하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아버지의 사업을 떠나 제노바 함대에 합류 지중해를 항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배가 난파되자 포르투갈에 남아 지도 제작자로 일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결혼하여 두 명의 아들도 낳았다.

이때 그는 마르코 폴로의 책을 읽고 아시아에 큰 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향신료, 아이보리, , 실크 등의 상품은 유럽에서 매우 인기있는 거래 품목이었다.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항해하면 중국으로 곧장 항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포루투갈에서 2,400마일만 가면 아시아가 나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지구는 그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더 컸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는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이 존재하고 있었다.

실제 거리도 10,000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어쨋든 그는 포르투갈의 왕에게 후원을 요청하지만 거절 당하고 만다. 영국과 프랑스 또한 거절했다.

7 년간의 노력 끝에 그는 마침내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1492 8 3 일 콜럼버스가 거느린 산타 마리아 등 3 대 함선은 대서양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10 주 후, 땅이 보이고 10 12 일 콜럼버스는 바하마에 도착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그 곳이 인도라고 믿었다. 10 12일은 후에 미국에서 콜럼버스의 날로 선포됐다.

콜럼버스는 원주민들을 집단학살하고 노예로 만든 잔혹한 정복자였다.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세계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갔을 것이다.

그의 불굴의 도전정신 앞에 나의 마지막 도전도 생각해 봤다.

 



, 사진: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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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의 이미지(2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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