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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그리스)
05/28/201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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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델포이



Delphi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를 지구의 중심이라 믿었다.

제우스가 동쪽과 서쪽 끝에서 동일한 속도로 날린 두 마리의 독수리.

독수리들이 만난 곳이 바로 델포이였기 때문이다.





대지의 배꼽을 나타내는 옴파로스(Omphalos)가 그 위치를 나타낸다.

하지만 유적지에 있는 옴파로스는 모조품이다

진품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로마 시대에 만든 사본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델포이는 원래 피톤(Python)이 살던 피토였다. 피톤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낳은 신화 속의 큰 뱀이다.

피톤은 이곳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며 가이아의 신탁을 전했다.

그러다가 제우스의 명을 받은 아폴론의 화살을 맞고 죽게 된다.





태양의 신, 예언의 신인 아폴론은 피토의 새 주인이 됐다.

아폴론은 뱀의 껍질을 벗긴 다음 석관에 넣어 봉하고 옴파로스 밑에 파묻는다.

이후 사람들은 아폴론 신탁을 통해 제우스의 뜻을 듣게 됐다.





델포이에서는 아폴론의 승리를 기념해 BC 586년부터 매 4년마다 피티아 제전을 열었다.

올림픽 제전보다는 190년 뒤진 것이다.

그러나 피티아 제전은 올림픽에는 없는 연극, 음악 등 예술을 총망라한 것이었다.





당시 신탁을 전하는 여사제는 피티아(Pythia)라 불렀다.

피티아는 흠이 없고 성격 좋은 주변 농부의 딸들 가운데 선발했다. 신탁은 세 명의 여사제가  담당했다.

그 중 두 명이 신탁을 받았고 한 명은 예비후보였다. 기원전 200년경 부터는 성직자 두 명이 성역을 감당했다.






성직자는 델포이의 주요 시민 중 한 명을 선정해 평생직으로 임명했다.

제사장은 신탁과 모든 축제 그리고 4년마다 열리는 피티아 제전을 담당했다.

신탁은 매일 진행하지는 않았다. 한 달에 한 번(매월 7), 그 것도 2월 부 10월까지 딱 9일만 허락됐다.





*신탁이 있는 날, 피티아는 지성소 삼각대에 앉아 가스를 마신다.

사람에게 환각을 주는 지하에서 올라 오는 가스다.

그렇게 신들린 상태에서 피티아는 시를 낭송하듯 신탁을 전한다.





*피티아는 당시 그리스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종교인이었다.

미켈란젤로도 바티칸 박물관 천장화(천지창조)에 피티아를 그려 놓았다.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신의 응답을 받기 위해 델포이로 모여 들었다.

그리스는 물론 터키, 북아프리카, 갈리아(현 프랑스)에서 오는 사람까지 있었다.





각국의 도시에서는 신탁을 받기 위해 많은 제물과 기념물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했다.

이렇게 하여 기원전 8세기부터 서기 2세기까지 델포이는 그리스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됐다.





델포이는 파르나소스 산이 병풍처럼 둘러 싸고 있는 아름다운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신전으로 들어 가는 길은 고색창연한 모자이크 길이다.





왼쪽 언덕으로는 신전이 오른쪽으로는 탁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청동기둥은 기원전 아테네와 스파르타 등 도시국가연합이 페르시아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원래 청동상은 뱀 세마리가 몸을 배배 꼬며 위로 올라간 상태로 만들었다.

하지만 뱀의 머리는 약탈당하고 지금은 몸통만 있는 상태로 남았다.

기념물은 전쟁에 승리하며 페르시아군에게 노획한 청동을 녹여 만든 것이다.





성스러운 길 입구에는 당시 재래시장 기능을 했던 아고라가 있다.

아고라는 수많은 방문객들로 인해 늘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신전 정문을 지나면 길 양쪽으로 세계 각국에서 헌납한 수많은 건축물과 3,000개 이상의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흔적만 남았다.





하지만 아테네 보물창고(Athenian Treasury) 만큼은 복원해 놓았다.

보물창고는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아테네의 승리를 기념해 지었다.

기원전 490년 당시에는 더욱 화려하고 큰 건축물이었다.





언덕 위 중심에는 아폴론 신전이 있다.

길이 60m, 너비 23m로 모두 38개의 도리스식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현재는 6개만 남았다.

이곳 신전 내부의 작은방에서 신탁이 이루어 진 것이다.





델포이 극장은 아폴론 신전 바로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음악, 연극 등을 하던 극장이 신전 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극장은 기원전 4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5천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극장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것이 델포이 운동장이다.

기원전 5세기에 세운 운동장은 6,500명의 관중이 앉을 수 있었다.

트랙의 길이는 178m, 너비는 26m. 눈을 감자 수많은 관중들의 고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눈을 뜨자 관중은 없고 고양이 한 마리가 운동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폴론 신탁은 언제나 정확했을까? 신탁은 확실한 대답을 준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해석에 따라 맞기도 했고 틀리기도 했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Croesus, BC 595-546)는 페르시아 제국을 공격하기 전 신탁을 물었다.

그대가 강을 건너면 위대한 제국은 멸망할 것이다피티아가 말했다.





페르시아를 위대한 제국으로 판단한 크로이소스는 공격을 감행했고, 패배하고 말았다.

위대한 제국은 페르시아가 아니라 크로이소스였다. 해석을 거꾸로 한 것이었다.





*서기 67년 로마의 네로 황제가 델포이를 방문했. 8년 전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30세의 패악한 왕이다.





당신이 이곳에 온 것이 신을 모독하는 일이다! 모친 살해자여! 73이라는 숫자가 당신의 몰락하는 시간이다”.





신탁을 물은 네로에게 피티아가 소리친 말이다. 진노한 네로는 여사제를 산채로 땅에 파묻었다.

그리고 500개가 넘는 동상과 기념물을 로마로 약탈해 갔다. 그는 73세까지 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것은 오판이었다. 다음해 네로는 갈바(Galba)의 반란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게 된다.

그 때 갈바의 나이가 73세였다.





서기 392,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하며 이교도 금지령을 내린다.





그 이후 델포이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고대 그리스어 델포이는 현대 그리어로는 델피라 한다.

 



, 사진: 서정





Ompha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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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의 이미지(3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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