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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성당과 카라바조의 그림(발레타)*
10/14/2013 07:43
조회  21369   |  추천   15   |  스크랩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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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성 요한 성당

Kon-Katidral ta' San ?wann

 
 
몰타공화국
 

 

 
 
*올해 1, 몰타(Malta)의 수도 발레타에 들렸다가 깜짝 놀랄 만한 보물을 하나 발견했다.
카라바조가 1608년에 제작한 대작, '세례 요한의 참수'를 본 것이다.
성 요한 성당, 작은 예배당(Oratory)에 걸려있는 이 작품의 사이즈는 361cm X 520cm.
 
최초의 카라바조 전기를 쓴 줄리오 만치니(Giulio Mancini)조반니 발리오네
(Giovanni Baglione)에 의하면 카라바조는 실물을 모델로 하여
그림을 그렸으며 제단화는 그림이 걸릴 곳에서 늘 작업했다고 한다.
 
'세례 요한의 참수'도 제단화가 내려다 보이는 바로 이 작은 예배당에서 작업했을 것이다.
 
 
 
 
 
 

*카라바조는 요한의 목에서 흘러 나온 붉은 피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나는 그의 작품 앞에서 전율했다.

 
 
 
 
 
 

발레타의 성 요한 성당은 그동안 내가 보아 온 성당 중에는 가장 화려한 성당이었다.

 

 

 
 
 

나는 그동안, 파리의 노틀담 대성당,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 바르셀로나의 성가족 성당,

스위스의 베른 대성당, 로잔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 밀라노 대성당, 뉴욕의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 워싱톤 대성당,

독일의 퀼른 대성당, 베를린 대성당, 마인츠 대성당 등 세계의 수많은 성당을 방문했지만..

발레타의 성 요한 성당 처럼 세밀한 조각들과 금빛 찬란한 내벽 장식을 본 적 없다.  

 

 

 

 

 

방문객의 눈을 휘둥글게 하는 이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성당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성 요한 성당은 11세기 후반에 설립된 종교 기사단인 성 요한 구호 기사단의 교회이다.

 

 

 

 

 

이 기사단은 1530년에 몰타 섬에 이주해 왔으며, 제롤라모 카사르에 의해 1578년 성당을 완공했다.

 

 

 

 

 

내부 디자인은 대부분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마티아 프레티(Mattia Preti)의 작품이다.

 

 

 
 
 

이탈리아 남부 타베르나(Taverna) 출신의 프레티는 로마와 나폴리에서 활동하다 1659년..

 

 

 

 
 

성 요한 기사단의 요청으로 몰타를 방문한 후 나머지 여생을 발레타에서 보낸 예술가이다.

 

 

 

 

그가 그린 작품으로는 성 요한의 일생을 그린 천장화(The Vault)..
 
 
 

 

레온과 포투갈 예배당(The chapel of the Langue of Castille, Leon and Portugal)..

 

 

 

 

 

성녀 카트리나의 신비한 혼인(Mystic Marriage of St. Catherine)..

 

 

 

 

 

 

아라곤(스페인예배당(The chapel of the Langue of Aragon) 등이 있다.

 

 

 
 
 
 

성당 안에는 각각 구호 기사단을 이루는 10개의 예배당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네이브(Nave)에는 405개의 용감했던 기사들의 대리석 묘비가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본당을 중심으로 양쪽에 도열된 예배당과 기도실은 다음과 같다.

 

 
 
 
 
 
 
 
 
The Sanctuary and High Altar
 
 
 
 
 
 
 
The chapel of the Langue of Castille,
Leon and Portugal
 
 
 
 
 
 
 
The chapel of the Langue of Provence
 
 
 
 
 
 
 
 
The chapel of the Langue of Aragon
 
 
 
 
 
 
 
The chapel of the Langue of Italy
 
 
 
 
 
 
 
The chapel of the Langue of Germany
 
 
 
 
 
 
 
The chapel of the Langue of France
 
 
 
 

 
 
The chapel of of the Anglo-Bavarian Langue
 
 
 
 
 
 
 
The chapel of Our Lady of Philermos
 
 
 
 
 
 
 
Mystic Marriage of St. Catherine
 
 
이렇게 황금으로 빛나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성당이지만.. 성 요한 성당의 최고 보물은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카라바조의 작품, 저술하는 히에로니무스(Saint Jerome Writing, 1607 - 1608)..

 

 

 
 
 
 
 

*그가 죽기 2년 전에 제작된, 세례자 요한의 참수(The Beheading of Saint John the Baptist)이다.

 
 
 
 
 
 
 

카라바조는 '미켈란젤로 메리시' 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의 카라바조라는 작은마을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그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이다.

카라바조란 이름은 그보다 앞서 활동했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구별하기 위해 후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살인자로 도피와 투옥생활을 했으며 필사적으로 사면을 구하다

38세의 젊은 나이에 포르토 에르콜레(Porto Ercole) 에서 숨을 거둔 예술가이다.

교황청 사법부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살인죄 외에도..

최소한 15번의 수사 기록에 등장했으며 일곱번 이상 투옥됐다고 한다.

하지만 카라바조가 그 때마다 쉽게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위대한 그림을

한 점이라도 더 소장하려는 당대의 실력자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바라조는 시모네 페테르차노(Simone Peterzano)의 도제로 화가 수업을 시작했다.

1592, 21 즈음에 로마에 도착했지만 그는 처음 2년 동안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때 처음 그린 작품중 하나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병든 바쿠스(Bacchino Malato)이다.

그는 그림 속에 자신을 끼워 넣기를 좋아했는데, 가난한 로마생활에서

그가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모델은 자기 자신뿐이었을 것이다.

 

 

 

 


 

15년이 넘는 작품활동 기간 동안 그는 병든 바쿠스, 메두사, 호른 주자,

등을 든 사람, 골리앗 등으로 자신의 그림에 자신을 등장시켰다.

 

카라바조가 1595년 부터 마다마 궁으로 들어 가 6년 동안 기거하며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Francesco Maria del Monte) 추기경의 후원때문이다.

이후 카라바조는 1606 5 28, 살인을 저지르고 나폴리로 도망갈 때까지

여러가지 사건에 연루되어 곤혹을 치루지만 그림 그리는 일 만큼은 결코 중단하지 않았다.

 

 

 

 

 
 
 

쫒기고 있는 나폴리에서도 그는 붓을 들어 채찍질 당하는 그리스도

자비의 일곱가지 기적등의 작품을 완성했다.

그 다음해에 건너 간 곳이 바로 성 요한 기사단의 요새인 몰타섬이다.

카라바조는 1608 7 14, 기사단의 상징인 백색의 팔모 십자가가 수놓인 검은 망토를 걸친다.

그는 기사단장의 재량으로 복종의 기사명예와 함께 황금 깃과 두 명의 노예까지 선물로 받았다.

기사단에 입단하게 된 그의 보답은 현재 오라토리에 진열된 두 점의 성화였다.

 

 

 

 



그러나, 기사가 된 지 겨우 4개월 만에 카라바조는 동료 기사와 싸움을 벌여 독방에 감금된다.

기사단에서는 재명됐고 추방령의 판결이 선언됐지만 그는 탈옥하여 시칠리아 섬으로 도망갔으며,

카라바조는 시칠리아의 시라큐스, 메시나, 팔르레모 등지에 1년간 머물면서 여러점의 작품을 완성한다.

 

1610년, 카라바조는 로마 교황청에서 자신을 사면을 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사면을 주선한 사람은 교황의 조카인 스피치오네 보르게세(Scipione Borghese) 추기경.

카라바조는 기쁜 마음을 안고 보르게세에게 줄 그림을 몇 점 배에 싣고 로마로 떠난다.

이것이 도피생활을 끝내려고 했던 그의 마지막 여행길이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그에게 벌어졌는지는 아직까지도 신비의 베일에 쌓여 있다.

다만 그는 1610 7 18일 사망했으며, 이 사실은 10일 후 로마에 소식이 전해진 것이었다.

 

 

 
 
 
 
 

*카라바조가 보르게세 추기경에게 선물할 그림 중에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작품도 있었다.

현재 로마의 보르게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작품의 모델은 누구였을까?

 

연민의 모습으로 적장의 머리카락을 움켜 잡고 있는 젊은 다윗도..

목이 잘려져 나가 입을 벌리고 있는 골리앗의 모습도 모두 카라바조 그 자신이었다.

 

 

그는 성질 급하고 화를 잘 내어 질풍노도(疾風怒濤)와도 같은 삶을 살았지만..

 

 

 

 

 

 

*아베 마리아(윌리암 고메즈 곡)를 부르는 ‘Patrick Garayt’의 낭랑한 목소리가..   

죄 많은 인생을 살았던 카라바조가 하나님 앞에서 고해(告解)하는 것처럼 내게는 들려 온다.

 

카라바조의 작품 앞에서 나의 눈시울은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주여 나의 죄를 용서하소서

 

 

, 사진: 서정

 

 

 

 

↓↓↓↓ 지중해의 작은 나라 몰타(Malta), 바로 가기 ↓↓↓↓

 

http://blog.koreadaily.com/nounkwak/723263

 
 
 
http://stjohnscocathedral.com/(성 요한 성당 웹사이트)
 
 
 
 

 

 

 

*표시의 이미지는 성 요한 성당 웹사이트와 구글에서,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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