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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과 이준 열사 기념관(헤이그)*
12/12/2011 06:35
조회  7928   |  추천   11   |  스크랩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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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열사 기념관

*

 

헤이그(네델란드)

 

 

 

 

 

2만국평화회의

*

**Second Hague Peace Conference (6 15 ~ 10 18, 1907
 
 
 
 1978년에 발간된 네델란드 연감에는 ‘1907 헤이그에서 한국인의 비극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한국인은 1905,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을사늑약(乙巳勒約)’ 무효와
      국권 회복을 세계 열강에 호소하기 위해2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던 사람이다.
 
 

* 그 분이 바로, 헤이그에서 순국하신 열사이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
 
      (‘윌리엄 태프트(W. H. Taft)’                                                    가쓰라 타로                                
 
 
 
 
   1905 7 29, 

      일본에서 가쓰라-태프트(Taft-Katsura Agreement)’ 밀약이 맺어졌다.

      미국은 필리핀을 차지하고 일본은 한국을 차지한다는 강대국 간의 비밀협정이다.

      가쓰라 다로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이었고 태프트(W. H. Taft)’는 미국의 육군장관이었다.

      이 비밀협정에 의해 미국의 한국문제 개입 가능성을 배제시킨 일본은..

      그 해 8월 제2차 영일동맹, 9월에는 포츠머스 조약(Treaty of Portsmouth)을 체결했다.

       

      미국이 한국을 일본에 넘겨준 사실을 모르고 있던 고종은 1905 10,

      미국인 헐버트(H. B. Hulbert)’를 통해 루스벨트에게 친서를 전달하려 했지만,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는 헐버트를 만나지 않았다.

*후에,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미국의 제27대 대통령이 됐다.(1909년 ~ 1913년)   

 

 

 

 

을사늑약 

 
    **난폭해 뵈는 젊은 시절의 칼잡이 이토.        *을사늑약 이후 스스로 통감이 됐던 이토.     
 
 
 
 

      한국에 대한 국제적 지배권을 획득한 일본은 곧바로 을사늑약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특명전권대사 자격으로 1905 11 9 서울에 이토 히로부미.  

      다음 날로 고종 황제를 위협하고 한일협약안을 제시하며 조약 체결을 강압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고종 황제는 이토 히로부미 집요한 강요에도 불구하고 조약 승인을 거부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궁궐 내외에 경계망을 펴고 포위함으로

대한제국 황궁은 공포 분위기에 싸이게 됐다.

      고종이 말을 안 듣자 이토는 전략을 바꿔 조정 대신들을 상대로 위협과 매수에 나섰다.

하야시 곤스케 11 11 외부대신 박제순 일본 공사관으로 불러 조약 체결을 강박했고,

 이토 모든 대신들을 그의 숙소로 불러 조약 체결에 찬성하도록 회유와 강압을 되풀이 했다.

       

      역적 이완용과 박제순 등의 지지를 얻게 된 이토는 11 17,

경운궁에서 어전회의를 열도록 압박했다.

      그러나 회의는 침통한 공기만 감돌았을 아무런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고종황제는 강압에 의한 조약 체결을 피할 목적으로 대신들에게 결정을 위임한 상태였다.

      어전회의가 5시간이 지나도록 결론에 이르지 않자 초조해진 이토

      군사령관과 헌병대장을 대동하고 일본헌병 수십 명의 호위를 받으며

      궐로 들어가 노골적으로 위협과 공갈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이토 직접 메모용지에 연필을 들고 대신들에게 가부(可否) 따져 물었다.

      그때,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 소리 높여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너무 떼를 쓰거든 죽여 버리라 고함을 쳤다.

      무조건 불가(不可) 쓴 대신은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이었다.

   

 

 

 

을사오적

(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늑약에 찬성한 다섯 명의 을사오적은 다음과 같.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곧이어, 외부대신 박제순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 간에한일협상조약 체결됐다.

      한일협상조약은 을사늑약의 정식 명칭이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박탈당했고

일본은  통감부와 이사청을 두어 한국의 모든 내정을 장악했다.

 

 

 

자결 순국 독립운동가 

 
 *이한응(李漢應)                                             *민영환(閔泳煥)

 

 

      이에, 영국 서리공사 이한응(李漢應)은 치욕을 참지 못하고 임지에서 음독자결했다.

      민영환(閔泳煥) 2천만 동포에게 남기는 유서를 남기고 단도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했다.

      이들외에도 특진관 조병세, 법부주사 송병찬, 전 참정(參政) 홍만식,

      참찬 이상상, 학부주사 이상철 등이 투신자결로 조약 반대의사를 천명했다.

 

 

 

 

헤이그 밀사 파견

(*고종 황제

 

      1907 4 20일 고종은 정사 이상설(李相卨), 부사 이준(李儁) , 부사 이위종(李瑋鍾)

      평화회의 특사로 내락하고 국새가 찍힌 백지 위임장을 내려 주었다.

     

      고종황제의 밀명을 품고 서울을 떠난 이준 열사는 이상설, 이위종 특사와 함께

      시베리아를 횡단해 독일 베를린, 벨기에 브뤼셀을 거쳐 네델란드 헤이그에 이르렀다.

 

 

**이준 열사 기념관 벽에 걸린 헤이그특사 이동경로.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한 세 명의 밀사는 일제의 방해로

*회의 참석 조차 할 수 없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이들은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자, 각국 대표들과 기자들에게 배포할 호소문을 만들었다.

호소문에는 을사늑약이 일본의 무력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것으로,

국제법상 무효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평화회의보

(

1907 630일 평화회의보(Courrier de la Conference de la Paix)대한제국

사람들의 사정을 듣고 "왜 대한제국을 제외시키는가!" 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평화회의보는 영국의 언론인 윌리엄 스테드가 발행하는 신문이었다.

윌리엄 스테드는 이위종과의 인터뷰 기사를 싣고, 기자협회 연설을 주선하기도 했다.

 아래의 글은 1907 75일자 '평화회의보'에 실린 이위종의 인터뷰 기사이다.

 

평화회의보는 "회식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허무를 일깨워 주기 위해

잔칫상에 해골 하나를 놓아두는 이집트인들의 관습"을 거론했다.

회의장에 초대받지 못한 이준 열사 일행을 "이집트 해골의 현대판" 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평화회의보 기자는 이위종을 학식이 깊고, 수개국어를 말하며,

철저하고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충만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다음은 인터뷰 기사의 전문이다.

 

 

 

                
         
**2차 만국회의 초청국 명단

 

 

 

축제 때의 해골

대한제국 이위종과의 회견

 

이집트인들에게는 잔치상에 해골 하나를 놓아두는 관습이 있었다. 

그 목적은 회식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허무를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영원불멸한 신의 특별한 은총으로 헤이그 회담은 이 같은 비망록을 소유하는 특권을 갖게 된다. 

오늘 바로 이 자리, 즉 드 리더잘 (De Ritterzaal ‘기사의 집으로 평화회의 장소)

닫혀 있는 문 앞에 앉아 있는 대한제국의 이위종은

몸소 그 옛날 이집트 해골의 현대판이 되고 있음을 스스로 절감하고 있다.

이위종은 학식이 깊고, 수 개 국어를 말하며, 철저하고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충만한 인물이다.

그러나 늙은 멤피스의 흉측스런 몰골이 회식자들의 폐부에 냉혹한 공포를

던져 주기 위해서 치밀하게 계산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위종은 열정적인 신념으로부터 관대한 착각으로 빠져들어,

기정사실에서 화신된 비웃음인 것이다. 

그는 운명이 조약에 서명한 것을 조롱하는 의문부호이다.

특히 그는 평화회의의 문턱에서 방황하면서 빈정대는

메피스트펠레스(Mephistopheles) , 부정의 영혼인 것이다.

 

기자 - 나는 이위종에게 질문했다.  여기서 무엇을 하십니까? 

왜 딱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이 모임의 평온을 깨뜨리십니까?”

이 - 이위종은 대답했다.

나는 흔히 제단이 헤이그에 있다고 말하는, 법과 정의 그리고 평화의 신을

혹시라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기자 - “드 마르땅(de Martens)씨가 1899

숲속의 집(‘Maison de Bois’ 1차 평화회의장)에서 이 제단을 찾았습니다.”

이 - “1899! 그때 이후로 법의 신께서는 무명의 신이 되셨군요. 

도대체 이 방 안에서 대표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기자 - “그들은 전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보장하기 위한 조약들을 체결할 것입니다.”

이 - 조소 어린 웃음과 함께조약들이요! 조약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난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 대한제국이 이 회의에서 제외되었습니까?

조약들이란 바로 위반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자 - “하지만 보십시오.  1905 11 17일 조약에 의해....”

이 - 말을 끊으며여기 이 대표들이 조약을 체결할 수 있습니까?”

기자 - “각국의 참여를 비준해야 하는 그들 군주들로부터 권한을 부여받는 한에서는 그렇습니다.”

이 - “!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1905년 조약이란 조약이 아니군요.

그것은 우리 황제 폐하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대한제국 외무대신과 체결한

하나의 협약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서명된 서류는 결코 비준된 적이 없습니다.

결국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 효력도 없는 것입니다.

대한제국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 조약은 무효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불법적이며 아무런 가치도 없는 서류로 인해

대한제국이 이번 회의에서 제외되었단 말입니다.”

기자 - “도대체 왕자께선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입니까?”

이 - “우리는 헤이그에 있는 법과 정의의 신의 제단에 호소하고

이 조약이 국제법상 유효한 것인지에 대한 판별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도대체 국제 중재 재판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우리가 항의해야 하며,

어디서 이같은 침탈행위를 유죄 선고받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기자 - “하지만 이 조약이 취소되었다고 해서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대한제국이 스스로의 외교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할지라도,

늘 일본의 수중에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 - “안타깝습니다. 

당신은 조약들이 일본만큼 힘이 있는 어느 강대국에 의해 합법적으로

비준되었다 할지라도 이들 조약의 효력을 믿지 않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1904년 조약으로, 일본이 대한제국의 독립과 보전을 보장했다는 사실과

일본이 우리 황제폐하의 신변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까?”

기자 -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 “하지만 이라뇨?”  강력히 되받았다. 

독립 군주를 자택에 감금해 두고서 신변을 보호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식민상태로 몰아넣고서 우리의 독립을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대한제국의 전체성은 일본이 한국을 분할해서 점차적으로 정복하지 않고

단번에 삼켜버렸기 때문에 유지되었을 뿐입니다.”

기자 -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 “그렇다면 이 세상에 정의란 없는 것이군요. 

여기 헤이그에 조차도!  당신들은 우리 대한제국인들에게 이렇게 얘기하려는 것이로군요.

결국 가증스럽게 당한 치욕을 회복할 길은 없고,

정당한 조약이 불법적으로 위반된 사실에 대한 한 민족의 항의가 무시되어질 수 있으며,

또 한 나라의 독립은 그것의 국제적인 보장 여부와 관계 없이 침탈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기자 - “당신은 일본이 강대국임을 잊고 계십니다.”

이 - “그렇다면 당신들이 말하는 법의 신이란 유령일 뿐이며,

정의를 존중한다는 것은 겉치레에 지나지 않고,

당신들의 기독교란 한낱 위선에 불과합니다.

왜 대한제국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대한제국이 약자이기 때문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정의, 권리 그리고 법에 대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왜 대포가 유일한 법이며 강대국들은 어떤 이유로도 처벌될 수 없다고 솔직히 시인하지 않습니까?”

기자 - “하지만...    변명했다.

 

이위종은 참지 못하고 계속했다.

 이 - “싫습니다. 정의에 관해서 나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소위 말하는 평화주의자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나에게서  당신 신앙에 대한 절대적 부정을 찾아 보시오. 

대한제국은 무장하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침략적 야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라였습니다. 

대한제국은 평화롭게 그리고 조용히 살아갈 것만을 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 평화론자들이 전도하는 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이위종은 여한 없이 계속했다.

 이 - “대한제국이 주변 강대국들에 대항해서 성공적으로 국토를

방어해 내기에 어려운 나라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대한제국은 구릉 하나 하나가 천연요새를 이루는 산악국가이며,

이천만 우리 민족은 우리나라를 극동의 스위스처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국에 7천의 군사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내가 여기 이 문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자신의 칼을 신뢰하는 대신에 법과 정의와 평화의 신에게 신뢰를 갖고 있는

모든 나라들을 기다리는 운명의 표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정의를 갈망하며 회의장(De Ridderzaal)’의 문 앞에 앉아 있는

이위종을 홀로 남겨두고 나는 멀어져 갔다.

 

분명, 올라프(Olaf) 왕의 사가(saga)의 메아리를 들은 듯 했다.

 

무력이 세계를 지배한다.

세계를 지배해왔다.

세계를 지배 할 것이다.

온유함은 연약한 것이다.

승리하는 것은 바로 무력이다.”

 

 

 

 

 
 
이준 열사 순국 

 

*이준 열사가 머물렀던 호텔방과 그의 유품들.

 

 

      그는 죽기 한마디 유언을 남겼다.

조국을 구해 주십시오! 일본이 대한제국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이준 열사 기념관

*

    

 )이준 열사 기념관으로 올라 가는 나의 가슴은 떨리고 있었다.       


 

   

    

    )100년 전, 나라잃은 슬픔을 안고 헤이그로 오셨던 대한제국의 영웅.        

 

 

    

그는 꺼져가는 대한제국의 정의를 살리기 위해..  

 

 

     )이상설, 이위종 두 분과 함께 고군분투하셨지만,      

 

 

    

)슬프게도, 대쪽같은 그의 의지는 통분을 참지 못하고이고 만다.    

 

 

 

    

)헤이그 특사활동 20일 만인 1907년 7월 14일.  

 

 

 

    

)드용 호텔(현 이준 열사 기념관)에서 이준 열사는 순국했다.    

 

 

 

   

)이준 열사의 죽음은 홧병에 의한 분사설, 감염설(일본 정보문서 기록),   

 


 

 

   

)또는 자살설과 독살설 등 여러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사진은 송창주 관장)  

 

 
 

 

     * 지난 16년 동안 이준 열사 기념관을 세우고 지켜온 분들은 이기항 선생과 송창주 관장.          


 


 
 

      

     이기항 선생(75)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주재원으로      

  네덜란드에 왔다 암스테르담에 눌러 앉은 사업가.    

       


 

      * 아내인 송창주 관장(72)은 이화여자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원 가정학과를 졸업했다.             

  

 


 

      * 이곳을 찿은 한국인들은 이준 열사에 대한 송창주 관장의 설명을 들으며..       


 

 

 

          ( 장군을 포함한 군인들은 흐트러지지 않는 차렷 자세로,                

  * 

 


 

      (민족사관고등학교등 젊은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감정이 복바쳐 오른 사람은 무릎 꿇고 묵념에 잠긴다.  

 


 

 

 

 

이준 열사 순국 이후..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헤이그 특사 파견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퇴위시켰다.

      그리고는, 1907 7 24.  

      이완용과 함께 법령제정권, 관리임명권, 행정권 일본관리의 임명     

      7개항을 내용으로정미7조약(일명 한일 신협약) 체결했다.     

         

 

    

      )일본 통감부는 궐석재판에서 이상설 정사에게는 사형,       

 

 

 

    

      )이준 열사와 이위종 부사에게는 종신징역형을 선고했다.      

       

      이후 통감부에 의한 차관정치가 시행되었고 4 후인 1910,     

      한일 강제합병으로 대한제국의 국체(國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이상설 정사

*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일제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은 선생은,

미국, 북간도,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프스크 등을 돌며 독립운동을 펼치시다,

니콜리스크에서 1917 3 2 48세를 일기로 순국하셨다.

선생은 임종을 지킨 동지들에게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있으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재도 바다에 날린 제사도 지내지 말라 유언을 남겼다.

 

 

 

 

이위종 특사

*

       

            *최초의 주러시아 공사였던 이범진과 아들 이위종.         *이위종(20)                       

 

                   

이위종 특사는 대한제국 외교관이었던 아버지(이범진) 때문에 미국에서 소년 시절,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중등학교와 군사학교를 마쳐 3개국어에 능통했다.

헤이그 현지에서는 대한제국 왕자로 소개되어 모든 회의와, 기자회견에서 주역을 담당했다.

이준 열사 순국 이후의 일들은 아직까지 잘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등지에서 항일운동을 한 것으로 전해 지고 있다.

**아버지 이범진 공사는 자결했고 형 이기종은 일본 헌병대의 고문으로 객사했다.    

 

 

 

 

 

이토 히로부미

*

       

*1909 10 26, 만주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대한의군 참모중장)에 의해 사살됐다.     

 

작성: 서정  

 

 

 


이준 열사    

1859 1 21 ~ 1907 7 14   

 
 

 

 

 

 

 

아리랑

 

 

 

 


 

*표시의 이미지는 구글에서,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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