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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스페인)
04/24/2020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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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ana





론다


 Ronda



그라나다에서 론다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운전하는 닥터리도 신나는 모양이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론다는 깊은 협곡을 사이에 두고 절벽위에 건설된 도시다.

1542년 무어인들이 쫒겨나자 시민들은 다리 건축을 원했다.

당시 협곡을 건너려면 아래길을 통해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축 비용 등 여러가지 문제로 세월은 흘러갔다.

18세기가 되자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며 론다에 황금 시기가 찾아왔다.

1735년부터 다리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실하게 짓는 바람에 1741년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이때 다리와 함께 떨어져 죽은 사람만 50명이다.


이후 두 사람의 뛰어난 건축가가 다리 건축에 뛰어 들었다.

1759년부터 짓기 시작한 현재의 다리는 1793년에 완공됐다.

새로운 기술로 지었다 해서 누에보 다리(Puente Nuevo) 이름 지었다.

누에보 다리는 길이가 66m. 하지만 다리의 높이는 98m나 된다.

깊은 절벽에 세워 다리의 길이 보다는 교각의 깊이가 더 깊어진 것이다.

두 개의 아치 사이에는 몇 개의 방도 마련돼 있다.

19세기에는 도둑 또는 정치범들의 감옥소로 사용된 방이다.

 멋진 다리지만 슬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다리는 위에서 보는 것 보다는 아래서 보는 것이 훨씬 더 멋있다.

다리 오른쪽으로 20분쯤 걸어 내려가면 무너진 성곽과 언덕이 나온다.

이 곳에서 바라 보는 누에보 다리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이 멋진 풍경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론다를 찾는다.




그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있다.

그는 일생동안 네 번 결혼하고 수많은 연애를 했다.

그가 좋아한 것은 연애 외에도 수렵, , 권투, 낚시, 여행 그리고 투우가 있다.

그가 론다를 좋아한 이유는 누에보 다리와 투우 경기때문이었다.

론다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 있다.

론다는 투우가 탄생한 곳이요 스페인 투우의 본 고장이었던 것이다.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찾으려면 키웨스트와 쿠바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두 곳 이상으로 그에게 영감을 준 국가가 있다. 바로 스페인이다.

헤밍웨이가 처음 스페인을 방문한 것은 1923.

그는 마드리드에서 투우 경기를 보고 투우에 완전히 빠지게 된다.

이후 팜플로나에서는 투우장에 직접 들어 가 성난 소와 마주하는 놀라운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1925년에는 론다 출신의 투우사 카예타노 오르데네즈(Cayetano Ordonez)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금새 친구가 됐다. 그리고 1926년에 발간한 소설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이다.

소설에서 헤밍웨이는 팜플로나와 투우사 이야기를 썼다.

1936, 스페인에서는 프랑코의 군부세력과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공화파 간의 내전이 벌어졌다.

다음해 헤밍웨이는 특파원으로 스페인에 파견되어 치열한 내전을 겪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 와 공화파에 구급차를 보내기 위한 기금 운동에 나섰다.

그는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하고 하루 만에 20 개의 구급차를 보낼 수 있는 기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발표한 소설이 바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였다.

소설 속의 폭파되는 다리도 론다의 누에보 다리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다이나마이트로 폭파시킬 수 있는 철재 다리로 바꿔 촬영했다.

헤밍웨이가 방문한 스페인의 도시로는 레온, 살라망카, 부르고스, 팜플로나, 마드리드, 쿠엥카,

세고비아, 아빌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그라나다, 세비야, 시에라, 론다 등이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투우사 카예타노 오르데네즈(Cayetano Ordonez)


론다 투우장은 누에보 다리를 건축한 알레후엘라에 의해 완공된 건축물이다.

신 고딕 양식으로 1784년 완공됐다. 투우장의 가장 유명한 투우사는 단연 페드로 로메로.

1754년 태어난 로메로는 은퇴하기 까지 무려 6천마리의 황소를 쓰러트렸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작은 상처 하나 없었다. 완벽한 투우경기를 벌였기 때문이다.

로메로는 1839년 사망했으며 그의 유물이 투우장 1층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는 스페인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투우사다.

박물관에는 그의 할아버지 프란시스코와 아버지 후안 페드로의 유물도 있다.

그들 또한 유명한 투우사였다. 투우장은 5,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투우사는 마따도르(Matador)라고 한다. 투우경기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람이다.

투우경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삐까도르(Picador)가 말을 타고 나온다.

삐까도르는 소의 숨통을 창으로 찔러 성을 돋은다.

다음에는 반데리에로(Banderrillero) 세 명이 차례로 등장 소의 등에 두 개씩의 알룩달룩한 창을 꽂는다.

이렇게 하면  모두 여섯개의 창이 소의 등에 꽂히게 된다.

이때 마따도르가 등장 붉은 천(물레따)을 흔들며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연출한다.

그러다 물레따 속에 숨겨놨던 칼(Espada)를 빼어 든다.

마따도르가 찌른 칼은 급소를 관통하며 소의 심장까지 깊숙히 들어가게 된다.

용맹했던 소는 숨을 거두고 귀나 꼬리는 마따도르에게, 고기는 식당으로 보내게 된다.

잔인해 보이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투우를 예술이라 생각한다.

소설가 헤밍웨이도 격렬한 죽음을 볼 수 있는 투우를 사랑했다.






헤밍웨이는 1899 7 21 미국 일리노이 주의 오크파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수렵을 좋아하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음악을 사랑하는 성악가였다.

헤밍웨이가 29세가 되던 해, 아버지는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당뇨병과 심장병, 플로리다 부동산 투자 실패가 원인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평생 헤밍웨이를 괴롭혔다.

헤밍웨이는 1954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56년 다시 스페인을 방문했다. 당시 스페인 사람들에게 헤밍웨이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사인을 요구하고  손을 잡고 춤추며 그를 환영했다.


죽기 1년 전인 1960 년에도 스페인을 찾았다.

이번에는 친구이자 투우사인 오도네즈를 만나기 위해서 였다.

이때 그는 양극성 장, 술중독, 뇌손상으로 인한 우울증의 고통 속에 있었다.

그러나 투우 경기를 보고 술을 마시면 잠시나마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스페인을 떠나면 다시는 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까지 지연시켰다.

이때 마지막으로 그의 생일을 맞이 한 곳이 바로 론다였다.




젊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918

헤밍웨이의 가족들(오른쪽에 서있는 소년이 헤밍웨이), 1905


헤밍웨이는 미국으로 돌아 온 후 1961 7 2,

아이다호 자택에서 엽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 사진: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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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와 카예타노 오르데네즈가 함께 있는 흑백 사진과 맨 아래 6장의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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