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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스페인)
04/10/2020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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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ana






알함브라 궁전



La Alhambra








스페인에서 택시 타기가 가장 편리한 곳은 그라나다이다.

우버를 부르고 기다릴 필요도 없다. 택시비가 아주 먼 거리가 아니면 5-8 유로면 충분하다.

시내에서 알함브라 궁전을 가고 오는 것도 우리는 택시를 이용했다.

특히 벤 택시를 이용하면 6명이 함께 탈 수 있어 많은 절약을 할 수 있었.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이란. 성채의 모든 벽이 붉은색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역사는 알카사바(Alcazaba) 요새로 부터 시작한다.

요새는 9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지었다. 알함브라 궁전 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당시에는 24개의 망루와 군인들의 숙사, 무기고, 마구간 등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벽과 약간의 흔적만 남았다.

이후 13세기에 나스리 왕조의 왕실을 요새 안에 짓기 시작했다.

모하메드 2세와 무하마드 3세는 공중목욕탕과 모스크를 지었고,

유수프 1세와 무하마드 5세는 스르 궁전(Palacios Nazaries)을 지었다.

이때가 바로 알함브라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기였다.











나스르 궁전은 알함브라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중요한 곳이다.

알함브라 궁전 티켓도 스르 궁전을 보기 위해 구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티켓 구입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최소한 방문 3개월 전에 인터넷으로 구입해야 한다.

나는 10년 전에는 인터넷을 통하지 않고 쉽게 티켓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알함브라 궁전은 10년 사이 너무 유명해져 있었다.

그동안 방문객 수가 급격히 늘어 나 매년 삼백 만명이 알함브라 궁전을 찾는다.

한 때 무어인의 낙원이었던 궁전은 현재 스페인 최고의 관광지가 된 것이다.

나스르 궁전을 입장하려면 티켓에 명시된 입장시간을 맞춰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으면 입장할 수 없다. 궁전 입장객도 한정돼 있다.

성수기에는 6,600, 비수기에는 5,400만 입장시킨.









헤네랄리페(Generalife)무하마드 2세 시대에 만든 정원이다.

건축가의 정원또는 가장 높은 정원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왕의 휴식처이기도 했던 정원에는 수많은 나무와 꽃들로 장식돼 있다.

멀리서 쉐프 한 명이 바구니를 들고 등장했다. 레스토랑에서 사용할 허브를 채취하려 온 것이다.

꽃밭에는 로즈마리, 아니카, 페퍼민트 등 다양한 허브와 식재료들이 재배되고 있었다.

쉐프는 6-7 종류의 허브를 채취한 뒤 수줍게 웃으며 총총걸음으로 사라진다.

정원은 나무와 꽃 그리고 분수가 있어 새 소리와 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은 알함브라 궁전 내 다른 건축물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카를로스 5세가 이슬람 건축과는 달리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원형 중정을 에워싼 회랑에는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 기둥이 세워져 있다.










카를로스 5세 궁전 바로 뒤에는 알함브라 산타 마리아 교회(Iglesia de Santa Maria de la Alhambra)가 자리 잡고 있다.

교회는 1308년에 건축된 이슬람 사원을 부수고 지은 것이다.

이것은 당시 스페인 전역에서 일어 난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교회는 우아한 종탑, 본당 그리고 본당 양쪽으로 세 개의 작은 예배당을 지었다.

중앙 제단에는 1634알폰소 데 메나가 제작한 십자가상의 그리스도가 세워져 있다.

아래에는 예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피에타 조각상이 있으며

양쪽으로는 성 우르술라(Santa Ursula)와 성 수잔나(Santa Susana)의 조각상이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하이라이트는 나스르 궁전이다.

왕의 집무실 겸 생활 공간이었던 궁전은 현존하는 이슬람 건축물 중에는 최고의 극치를 보여준다.

수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무어인들은 그라나다에 특출한 건축물들을 세웠다.

꽃과 문자 등을 이용한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문양은 관광객들의 넋을 잃게 만든다.

왕이 집무를 보던 방은 메수아르의 방(Sala del Mexuar)이다.

놀라운 것은 에어컨 시설이 없던 시절에도 왕은 여름에는 시원한 방에서 지냈고

겨울에는 따뜻한 방에서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온도를 식힌 대리석으로 만든 방은 여름에, 온도를 따뜻하게 하는 돌로 지은 방은 겨울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궁전에서 나오면 아라야네스 중정(Patio de los Arrayanes)으로 나가게 된다.

커다란 직사각형의 연못과 분수가 있는 곳이다. 분수는 길이 124피트, 27피트 깊이는 5피트였다.

연못에는 황금빛 물고기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연못 주위에는 수많은 장미꽃에 둘러싸여 있었다. 수영장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라나다의 나스리 왕조 마지막 술탄은 보압딜(Boabdil) 왕이었다.

그는 1492 12일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에게 궁전 열쇠를 넘기고 항복한다.

보압딜이 항복을 택한 것은 스페인 제국에 그라나다를 내 주는 대신

무어인들의 재산, 종교, 생활양식은 영원히 보장 받는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모로코로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보압딜은 알함브라 성이 보이는 마지막 언덕에서 왕궁을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너는 남자처럼 용감하게 싸워 왕국을 지키지 못하고 여자처럼 눈물이나 흘리고 있구나!’

왕의 어머니가 보압딜에게 한 말이다. 그 곳을 사람들은 무어인의 한숨이라 부른다.

보압딜은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 모로코 페스(Fez)로 건너갔다.

페스에서 그는 새로운 성을 짓고 42년을 더 살았다.

 

 

, 사진: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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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아래 4장의 이미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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