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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독일)
11/12/20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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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schland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Garmisch-Partenkirchen



두 개의 마을이 합치면 도시가 된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가 좋은 예일 것이다.

독일에도 그런 도시가 있다. 스키 리조트 도시로 유명한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이다.





서쪽의 가르미슈와 동쪽의 파르텐키르헨은 1935년까지는 서로 다른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두 마을이 합져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1936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한 히틀러의 강제 조치였다.





1936년은 나치 독일이 제4회 동계올림픽과 제 11회 하계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특별한 해였다.

사상 최초로 텔레비전 생중계가 실시되고 조선에서는 일장기를 달고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가 마라톤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으며 6개월 전에는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

동계올림픽에 조선의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 선수가 빙상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비록 일장기를 달았지만 조선 선수로는 최초의 올림픽 참가였다. 동계 올림픽에서는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하지만 하계 올림픽에서는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남승룡 선수는 동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파르텐키르헨은 2천년 전에는 파르타늄(Partanum) 이라는 로마 도시였다.

기원전 40년 경에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거주지로 세운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파르타늄은 베네치아에서 아우구스부르크로 연결되는 무역로의 중요한 정류장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고 마을은 활기에 넘쳤다.





사람들은 무역을 하며 추크슈피체 산에 오르고 또 강에서 래프팅을 즐겼다.

하지만 30년 전쟁으로 인해 주민들은 최악의 빈곤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곳에 기독교 신앙이 들어 온 것은 8세기경. 1865년에는 대화재로 마을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기도 했다.





불탔던 성모승천교회(Maria Himmelfahrt Partenkirchen) 교회가 새로이 지어진 것은 1871년이다.

예배당의 중앙제단에는 이그나즈 귄터(Ignaz Gunther)가 제작한 십자가상의 예수님이 걸려있다.

귄터는 18세기 바이에른 지역에서 활동한 로코코 미술의 대가다.





길을 걷다 보니 나무 깍아 색을 입힌 사람들의 조각이 눈에 뛴다.

초록색, 빨간색 등의 옷을 입은 사람들은 몸매가 모두 통통하다.

진열장 앞에 세워 놓은 것을 보니 모두 판매하는 작품인 듯 했다. 통나무로 만든 특별한 미술작품이다.





깨끗한 중앙 거리에는 미텐발트와 오버아머가우처럼 뤼프틀말레라이(벽화)가 그려져 있는 건물들이 많다.

 뮌헨에서 파르텐키르헨까지 철도가 연결된 것은 1889.

지금은 뮌헨에서 기차로 1시간 20분이면 파르텐키르헨에 도착한다.





가르미슈의 골동품점에는 수염이 멋지게 난 한 산악인의 초상화가 진열돼 있다.

그는 가까이에 있는 추크슈피체 산에 올랐을 것이다.





가르미슈에도 파르텐키르헨만큼 아름다운 뤼프틀말레라이가 많이 보였다.

가을에 추수하는 풍경, 소와 함께 밭을 가는 풍경,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벽화만 보며 걸어도 낭만의 유럽을 느낄 수 있다.





성 마틴 교구 성당(pfarrkirche St. Martin)은 마을에서는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성당으로 들어 가니 신부님이 신도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예배당은 독일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이다.





가르미슈는 추크슈피체 산으로 가는 관문이지만 유명한 장소가 한군데  더 있다.

바로 파르트나흐클람(Partnachklamm)이라는 곳이다.





바로 파르트나흐클람(Partnachklamm)이라는 곳이다.

이 계곡 사이로는 알프스산 꼭대기에서 내려 오는 거센 물결이 세차게 흐른다.

차가운 공기와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하지만, 이곳을 올라 가려면 옷이 흠뻑 젖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계곡 위에서 실폭포가 쉴 새 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동굴 속의 장엄한 폭포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계곡으로 가고 오는 길은 평화롭다.





한 농가에는 흑돼지, 뿔이 있는 갈색 염소 그리고 양떼들이 보였다.

덩치 큰 염소가 다가 오자 양떼들은 슬금슬금 몸을 피한다. 힘없는 자의 슬픔이다.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의 가장 유명한 거주자 중에는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가 있다.

슈트라우스는 1864년 당시 뮌헨 왕립 오페라의 수석 호른 주자였던 프란츠 슈트라우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음악 공부는 4세 때 부터 시작했으며 6세 때 첫 작곡을 했다.

10세 때에는 바그너의 악극 로엔그린과 탄호이저를 관람하여 감동하지만

보수적인 아버지는 바그너의 음악을 열등적이 것으로 간주하고 그의 음악을 배우지 못하게 했다.





16세가 되어서야 슈트라우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악보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가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에 집을 짓고 정착한 것은 46세가 되던 해인 1908.





오페라 살로메를 작곡하고 받은 로열티로 지은 3층짜리 집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41년을 지낸 후 1949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짜라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림자 없는 여인, 장미의 기사, 살로메,

돈키호테, 가정 교향곡, 알프스 교향곡 외에도 수많은 가곡들이 있다.





*그리고 단 2개뿐인 호른 협주곡 작품은 슈트라우스가 호른 연주자였던 아버지에게 바치는 음악의 헌정이었다.

호른 협주곡 1번은 19세 때 작곡했고 호른 협주곡 2번은 78세 때 작곡한 작품이다.

지금 흐르고 있는 곡은 호른 협주곡 1번이다.

 

, 사진: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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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의 이미지(1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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