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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과 풀라(크로아티아)
06/19/2019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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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이스트라 반도





로빈 풀라



Rovinj & Pula



크로아티아는 세계의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국가다.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 플리트비체 등 환상의 여행지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세계의 사진작가들도 크로아티아를 사랑한다. 셔터만 누르면 최고의 사진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진작가들이 선호하는 크로아티아 여행지 중에 로빈이라는 곳이 있다.

바로 이스트라(Istra) 반도에  속해 있는 작은 도시다.

이스트라는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사이에 있는 반도다. 서쪽에 혹처럼 튀어 나와 있다.





반도의 역사는 파란만장했다. 6세기에는 비잔티 통치하에 있었고 8세기에는 프랑크 족이 통치했다.

중세에는 오랜 기간 베네치아 공화국 영향 아래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이 됐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탈리아 영토가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가 됐다가 1991년 독립해 크로아티아가 된 것이다.




       


이곳에는 두 개의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 바로 로빈(Rovinj: 왼쪽)과 플라(Pula: 오른쪽).





풀라는 이스트라 반도에서는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다.

이곳에 가면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원형 경기장을 볼 수 있다.





경기장은 기원전 27년부터 서기 68년 사이에 지었다. 콜로세움보다 수 십년 앞선 것이다. 

처음에는 목재로 지었다. 그러다가 제4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돌로 대체했다.





경기장에는 총 15개의 출입문이 있고 사자상등 여러개의 조각상이 있다.

관중은 모두 23,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는 등록되지 못했다.

시에서 두 번이나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경기장 지하에는 고대 로마시대에 쓰던 암포라(Amphoras)가 수백 개 쌓여 있다.





암포라는 목이 좁고 양 손잡이가 달린 큰 항아리를 말한다. 풀라는 고대 로마 때부터 포도주 양조로 유명했다.





세르기우스 개선문은 기원전 1세기 악티움 해전 승리를 기념해 세운 것이다.

원래는 개선문 위에 세르기우스 삼형제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형제들은 해전 당시 큰 활약을 펼쳤다.





한 카페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앉아 있는 동상을 발견했다.

조이스는 1904년 더블린을 떠나 풀라에서 6개월을 지낸바 있다.

카페가 있는 건물 윗층이 그가 일하던 장소였다.





당시 조이스는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 장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다음해 그는 베를리츠 스쿨이 있는 트리에스테로 떠났다.

조이스는 1922년 불멸의 소설 율리시스(Ulysses)를 발표했다. 카페의 이름이 바로 율리시스다.





*이름마저 로맨틱한 로빈(Rovinj)은 반도에서는 최초로 생긴 도시다.

인구는 만 사천명 정도. 풀라에서는 22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가면 40분이면 도착한다.





로빈 구시가로 가는 길은 항구를 지나야 했다. 성수기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겨울 풍경이라 쓸쓸해 보이지만 정겹다. 배 위로는 갈매기들이 날고 있다.





갈매기 일곱 마리가 원을 그리며 날았다.





중앙 광장에는 작은 분수가 하나 있다.

분수의 중앙에는 큰 물고기를 들고 있는 소년 동상이 세워져 있다.





겨울이라 관광객은 없고 분수는 얼어 고드름이 됐다. 그래도 크로아티아 어린이들은 웃으며 즐거워 한다.

두 소녀가 V자로 두 손가락을 들며 웃었다. 나도 반갑게 웃으며 인사해 주었다.





발비문(Balbi Arch)은 구시가로 들어 가는 관문이다. 1679년에 지은 것이다.





좁은 골목길은 그리시아 거리(Ulica Grisia). 골목길은 평화롭고 고즈넉 하다.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는 아름다운 길이다. 놀랍게도 로빈의 많은 골목길이 대리석 길이다.





자전거는 아무데나 놓여 있고, 노란색 스쿠터는 벽 한 켠에 세워져 있다.





로빈의 골목길 끝은 모두 해안이다.





여름에는 수영하는 사람들로 꽉차는 곳이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는 종탑과 성 유페미아 성당(Church of St. Euphemia)이 있다.

로빈에서는 가장 높고 가장 큰 건축물이다. 60m 높이의 탑 꼭대기에는 성 유페미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원래 이곳에는 성 조지 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서기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살해했다.





그 중에는 칼케돈에 사는 유페미아라는 소녀도 있었다.

유페미아가 우상(아레스) 숭배를 거부하자 그녀는 잔인한 형벌을 받게 된다. 사자 우리에 던져진 것이다.





304 9 16 , 유페미아는 죽었지만 사자는 그녀의 몸은 삼키지 않았다.

칼케돈 사람들은 620년까지 순교자의 시신을 잘 보존했다.

후에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진 석관이 로빈으로 떠내려 오게 된 것이다.





*800 7 월에 일어난 강한 폭풍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석관을 성 조지 성당으로 모시려 했지만 계속 실패한다.

그러자 한 소년이 두 암소를 끌고 언덕으로 석관을 끌어 올렸다.





이때부터 로빈 사람들은 이 일을 기적으로 여기게 된다.

성 조지 성당은 이후 성 유페미아 성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성 유페미아가 로빈의 수호성인이 된 것이다.

유페미아가 선종할 때 나이는 15세였다.



 

, 사진: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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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의 이미지(2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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