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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
06/10/201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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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atia





두브로브니크



Dubrovnik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거야! 누군가 두브로브니크를 보고 탄식조로 뱉은 말이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의 수도도 아니다. 거기에 수도권 안의 인구는 3만명도 채 안된다.





하지만 두브로브니크를 방문한 관광객은 작년 천이백만명을 돌파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관광객 숫자다.





여기에는 한국인 관광객도 한몫했다. 현재 한국인이 선호하는 최고의 유럽도시이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는 서쪽으로는 아드리아 해, 육지로는 헝가리,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두브로브니크가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발전한 것은 해상국으로 번영했던 16세기경.

당시에는 두브로브니크 공화국이었다.





크로아티아에는 예전부터 대리석이 풍부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도 크로아티아산 대리석으로 지은 건물들이 많을 정도다.

바닥도 대리석, 건물도 대리석, 골목길도 대리석, 동상도 대리석, 보이는 것이 모두 대리석이다.





두브로브니크 공화국은 지금으로부터 600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을 폐지시켰다.

이는 전세계에서 노예제도를 가장 먼저 폐지한 국가의 기록이다.





영국은 1807, 미국은 1865년에 와서야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시민들도 두브로브니크가 예제도 폐지의 선구자였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역사, 유산, 문화의 화려한 왕관을 쓰고 있는 두브로브니크.

이름에 걸맞게 미국 TV 드라마 왕좌의 게임촬영장소로도 이용됐다.





도시 곳곳이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시가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큰 오노프리오 분수(Big Onofrio’s Fountain). 1438년에 지어진 분수다.

분수는 돔 모양의 지붕 아래 16면에 얼굴 조각상과 기둥으로 세워져 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최초의 수로시설이다. 시민들의 식수 해결을 위해 12km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여 들인 것이다.





마침 축제에 참가한 크로아티아 아이들을 분수 앞에서 만났다.





페이스 페인팅을 하며 간지럽다고 즐거워 하는 아이들.





작은 기쁨에도 활짝 웃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동심이다.





옆에 있는 건물은 성 사비오 성당이다.

1520년 지진에도 살아 남은 시민들이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분수에서 부터 시작되는 넓은 길은 플라차(Placa) 거리다. 큰 거리라는 뜻의 스트라둔(Stradun) 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리석 바닥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인해 매끄럽게 닳았다.





거리의 1층은 레스토랑 또는 기념품 상점 등으로 이용되고 위층은 대부분 주거용 집이다.





300m 길이의 거리 끝에는 루자 광장이 있다. 이곳에는 구시청사가 있고 스폰자 궁전과 렉터 궁전이 있다.





렉토 궁전 중앙홀에는 미카엘 프라자토(Michaeli Prazatto)의 반신 동상이 세워져 있다.

프라자토는 전 재산을 공화국에 기부한 사람이다. 시민들의 많은 존경을 받았다.





궁전 안뜰은 계단과 기둥, 바닥이 모두 돌로 섬세하게 만들어졌다.





특히 오른손으로 난간을 쥐고 있는 계단 조형물이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





구시청사 건물 앞에는 돌고래가 조각된 작은 오노프리오 분수가 있다.

아기의 입에서 나오는 물은 지금도 식수로 사용된다.





옆에는 16세기에 활동한 유명한 극작가 마린 드르직(Marin Drzic)의 동상이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동상의 코를 만지고 사진촬영을 한다. 드르직의 코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성 블라시오 성당(Church of St. Blasius)은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사랑 받는 성당이다.

입구 위에 세워져 있는 동상이 성 블라시오, 양쪽 옆으로 성 제룸과 성 요한의 동상이 있다.





성 블라시오는 4세기에 활동한 14성인 중 한 분이다.

서기 316, 로마 총독은 블라시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저버릴 것을 강요하나 그는 순응하지 않는다.





화가 난 총독은 형리에게 금속 빗으로 몸을 찢으라는 명령을 한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블라시오는 이후 참수됐다.





서기 971 2 3, 한 베네치아 함선이 물을 공급받기 위해 두브로브니크 항구에 정박한다.





그러나 물을 공급받으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이 함선은 기회를 틈타 두브로브니크를 공격하려던 베네치아의 군선이었다.





그 때 스토이코(Stojko)라는 성직자가 교회 문이 열린 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 갔다.

안에는 천사를 대동한 하얀머리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노인은 말하기를 베네치아인들이 곧 공격할 것이니 빨리 시의회에 알리라고 말한다.

성직자가 누구신가 물었을 때 노인은 블라시오라고 답한다.





성문은 굳게 닫혔고 두브로브니크의 방어 준비는 철저하게 끝났다.

베네치아 함선은 성문 닫힌 것에 놀라 기습공격을 중단하고 도망치고 말았다.





 그날 이후부터 성 블라시오는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이 된 것이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2 3일이면 이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축제에는 성인의 뼈와 손이 들어 있는 유물함을 들고 거리 행진을 한다.

그리고 주교는 모든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에게 축복을 내린다. 두브로브니크 최고의 축제일인 것이다.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성벽 투어다.





2km 의 성벽을 한바퀴 도는데 빨리 걸으면 한 시간, 천천히 감상하며 걸으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회색 성벽과 붉은색 지붕, 에메랄드빛의 바다가 만들어 낸 풍경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아드리아 해 최고의 풍광이다.

하지만 두브로브니크에도 전쟁의 아픔이 있었다.





1991년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하기 위해 내전을 치룬 것이다.

이때 두브로브니크도 도시의 80%가 불에 타고 말았다. 내전의 아픔은 구시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힘을 모아 도시를 다시 재건시켰다.

새 기와는 내전 후에 새로 입힌 것이고, 색이 바랜 것은 전쟁에서 살아 남은 것이다.





내전 당시에는 하루에 2천발의 포탄이 바다로 쏟아지기도 했다.

그리고 중세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두브로브니크.





성벽에서 바라 보니 도시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두브로브니크는 시간을 여행하는 도시인가?

어디선가 들려 오는 사랑의 은하수 OST.

 

 

, 사진: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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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의 이미지(1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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