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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 (아크로티리)
04/30/201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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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ce


산토리니


Santorini






청동기 시대의 도시



아크로티리



Akrotiri



테라(현 산토리니)는 기원전 1600년경 까지는 둥근 섬이었다.

어느날 지축이 흔들리자 재빠른 사람들은 재산을 챙겨 즉시 섬을 떠났다.

이어 화산이 폭발하고 칼데라 지형을 이루며 산토리니는 초승달 모양의 섬이 된 것이다.

둥글던 섬은 산토리니와 작게 잘린 네아 카메니, 팔레아 카메니, 티라시아, 아스프로니시 등 5개의 섬으로 나뉘어 졌다.





나는 산토리니에서 지내는 3일동안 칼데라와 다른 4개의 섬을 바라 보며 지냈다.

숙소 바로 앞에 칼데라와 다른 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칼데라는 화산 폭발로 인해 화산 꼭대기가 크게 패이며 생긴 구멍을 말한다.

백두산 천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하지만 산토리니의 폭발 규모는 백두산하고는 비교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다.

바닷물이 그대로 밀려 와 칼데라는 바다 밑으로 완전히 가라 앉는다.

깊은 화산 호수가 아니라 깊은 화산 바다가 된 것이다.





섬이 산산조각나고 있는 그 때 아크로티리도 200피트 화산재 아래 깊숙히 묻히게 된다.





아크로티리는 산토리니 남서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고대 유적지다.





19세기 후반까지는 유적이 있는지 조차 주민들은 몰랐다.

그러다가 1967년부터 그리스 고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발굴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유적의 곳곳에는 수 천년 전 쏟아진 화산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에는 뜨거운 부석과 화산재였을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도자기, 항아리, 프레스코화 등 수많은 유적들을 발굴해 냈다.





큰 항아리(Pithos)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술, 곡식 등을 보관하는데 사용하던 용기다.

아무 문양도 없는 한국 항아리와는 달리 이 항아리에는 여러가지 문양이 그려져 있다.

3600년 전 항아리나 지금 항아리나 쓰는 용도나 모양은 모두 똑같다.






곰처럼 보이는데 사자의 머리라고 하는 각배(Rhyton)도 발굴했다.

각배는 짐승의 머리를 흙으로 빗어 만든 음료 용기를 말한다.





아크로티리는 놀랄 정도로 정교한 도시였다. 광범위한 배수 시설은 물론 실내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사람들은 생생한 프레스코화를 그리고 포도주를 만들었으며 고급 도자기를 생산했다.





도시의 건물도 1층 집이 아니었다. 2층과 3층 주택에 살았고 난방장치가 있어 온수와 냉수를 함께 사용했다.

돌 이음새도 아무런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나 견고한지 개미 한 마리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봄 프레스코화는 바람에 흔들리는 백합, , 바위, 날아 다니는 제비 등 봄의 풍경을 그대로 포착한 작품이다.

지금도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니 놀랍다.





권투하는 두 소년은 유적지 2층 건물에서 발굴한 프레스코화다.

붉은색 옷, 면도한 머리, 길게 묶은 머리를 보면 두 사람 모두 소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왼쪽 소년은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발목 등에 보석을 착용했지만 다른 소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는 수묵화로 그린 한 쌍의 영양 프레스코화가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수묵화는 아니고 눈, , , , 뿔은 모두 채색된 그림이다.

서로 사랑스럽게 바라 보는 두 영양의 모습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프레스코화들은 모두 아테네에 있는 국립 고고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 외에 어부, 돌고래, 원숭이 프레스코화 등 몇 개의 프레스코화는 선사시대 테라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학자들은 이 프레스코화를 테라 프레스코(Thera frescoes)화라 부른다.





사람들은 아크로티리를 에게해의 폼페이라고 한다.

폼페이는 기원전 600년 전에 건설되어 79년에 멸망한 도시다.





그러나 아크로티리는 기원전 2700년 부터 기원전 1600년 사이에 있던 고대 미노스인들의 고향이다.

폼페이보다 수 천 년이나 더 앞선 문명의 도시였던 것이다





*폼페이를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이탈리아의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

그는 폼페이 유적 발굴대장으로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어떠한 곳에서도 시체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신 용암과 화산재가 식어진 흙더미 사이에 이상한 형태의 빈 공간들이 남아 있었다.





피오렐리는 이 의문의 공간을 주목하고 그곳에 석고를 부어 넣는다.

석고가 굳은 다음 훍을 긁어 내자 하얀 석고는 놀라운 형체를 들어 낸다.





빈 공간에는 당시 용암에 사라져 버린 사람들과 동물들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하얀 석고는 폼페이의 마지막 순간을 생생하게 재현시켰다.

폼페이에서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2,000여명의 사망자가 있었다.





아크로티리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명의 희생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여인들의 장식품인 귀걸이, 목걸이 등 귀금속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폼페이처럼 빈 공간을 발견한 것도 아니다.

폭발을 예견한 주민들은 귀금속을 챙겨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허겁지겁 배를 타고 가다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한 것일까?

고고학자들이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한 아크로티리의 미스터리다.





*당시 생긴 칼데라는 4 마일 정도의 너비였으며 쓰나미는 이집트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발견된 귀금속은 1999년 발굴한 진흙 조각에 금을 입힌 작은 황금염소 입상이 유일하다.

 



, 사진: 서정




여행팁: 아크로티리 유적지

비수기 일반: 6유로 (11월부터 3월까지)

성수기 일반: 12유로 (4월부터 10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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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의 이미지(3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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