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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베르니(프랑스)
01/01/201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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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지베르니



Giverny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86세까지 장수한 화가다. (지베르니 정원에서)





*젊어서는 여러 곳을 전전했다. (젊은시절의 모네)





그러나 마지막 43년은 지베르니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바로 노르망디 레지옹 동쪽 끝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다.





모네의 집으로 가는 길은 고즈넉한 시골길이다.





길가의 한 카페가 보인다. 모네가 친구들과 앉아 커피를 마시던 곳이다.





앞에는 빨간 파라솔이 있는 가든 카페도 있다.





모네가 살던 집은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모네가 좋아한 분홍색과 초록색의 예쁜집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일본 그림과 일본 도자기가 여러개 진열돼 있다.

젊은시절 모네는 일본 채색판화(우키요에)에 크게 심취했었다.





당시 우키요에는 파리만국박람회를 통해 유럽에 전해졌다.





이때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모네의 집에 일본인들의 방문이 유난히 많은 이유다.





에트르타, 르아브르, 트루빌, 옹플뢰르, 루앙 대성당 등 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 모네.





생활이 조금 나아지자 그는 점찍고 있던 지베르니에 둥지를 틀었다.





리고는 직선형 패턴의 화단을 만들고 수 천개의 꽃을 정원에 심는다.





데이지와 양귀비, 장미와 코스모스 그리고 희귀한 품종의 꽃들이다.





그는 돈이 들어도 새로운 풍종을 찾았고 친구들도 모네를 도왔다.





그는 내가 버는 돈은 모두 정원 가꾸는데 들어 간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친구인 클레망소와 카유보트는 각기 다른 품종의 꽃들을 서로 교환하기도 했다.





그만큼 모네가 지베르니에 들인 정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정원이 아름답다는 소문이 나자 전원생활 잡지사에서 취재한 후 극찬하기도 했다.





1890, 모네는 집 아래에 있는 넓은 땅을 구입한다.





이곳에 그는 작은 수로를 만들고 주위에는 대나무, 버드나무, 등나무 등을 심었다.





연못에는 군데군데 수련도 심었다. 후에 수련은 멋진 군락을 이루게 된다.





모네는 흐믓해 하며 연못 위로 일본식 홍예교까지 만들었다.

이제 모네는 날씨에 관계없이 원하는 그림을 싫컷 그릴 수 있었다.





수련, 붓꽃, 모네의 집 정원, 뱃놀이, 일본풍 다리 등이 모두 이곳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연작인 루앙 대성당도 1882년과 1883년 사이에 그린 것이지만 마무리는 이곳에서 했다.





울창한 나무 사이 연못 위로 수련의 아련한 모습이 보인다.

모네의 정원은 정말 아름답다.





방문객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넘쳐흐른다. 나도 행복했다.





지베르니에는 모네의 정원 외에도 인상파 미술관(Musee des Impressionnismes Giverny)이 있다.





프랑스 인상주의 예술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 곳이다.





산뜻한 현대식 건물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들과 모네의 자화상 등 많은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을 나오면 장미, 튤립 등 다채로운 꽃들로 꾸며진 정원이 나온다.





모네의 정원만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뒷뜰로 가니 건초더미(Les Meules)몇 개 보였다.

그림으로만 보던 건초더미를 미술관 뒷뜰에서 본 것이다.





모네는 1890년 부터 이곳 들판에서 건초더미를 그렸다고 한다.





건초더미가 있던 장소에 인상파 미술관이 세워진 것이다.

모네는 지베르니로 이사하고 얼마 후 건초더미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개의 캔버스를 놓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그렸다.

햇빛과 대기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의 변화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미술품 수집가와 관람객들은 건초더미 작품에 열광했다.

모네는 25개의 건초더미 작품을 비롯 모두 2,500점이 넘는 회화, 데생, 파스텔화를 남겼다.





지베르니의 인구는 모두 500명이다.





그러나 지베르니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매년 60만명이 넘는다.





이것은 노르망디에서는 몽 생 미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방문객이다.





만약 모네가 이곳에 이사하지 않았다면 지베르니는 프랑스의 평범한 시골로 전락했을 것이다.





현재 지베르니의 주민 중 약 25%는 모네의 집 또는 미술관에 직장을 갖고 있다.





모네 덕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노르망디의 루앙, 에트르타 등 여러 곳을 그림으로 남기고 지베르니에 정착한 모네.

그는 노르망디를 진정으로 사랑한 프랑스의 자랑스러운 화가였다.





프랑스 정부는 1888년 그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려 했지만 모네는 거절한다.





1920년에도 프랑스인 최고의 명예인 학사원 회원 자격마저 거절했다.





모네는 자신의 영예와 특권보다는 가족의 행복을 먼저 생각한 화가였다.

그의 첫 번째 부인은 카미유 동시외(Camille Doncieux)였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두 명의 아들이 태어났다.





1876, 모네는 부자였던 에르네스트 오슈데(Ernest Hoschede)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오슈데의 후원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던 차 카미유가 아프기 시작한다.





얼마 후에는 오슈데가 사치스러운 생활 끝에 파산하고 만다.





그리고는 채권자를 피해 혼자 벨기에로 피신하고 말았다.





갈 곳이 없어진 오슈데의 아내 알리스는 여섯 자녀를 데리고 모네의 집으로 오게 된다.





모네가 함께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후 알리스는 카미유를 정성스럽게 간호하나 카미유는 병마를 이겨내지 못했다.





카미유가 세상을 떠나고 에르네스트마저 객사하자 알리스는 모네의 두 번째 아내가 됐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 Claude Monet, Alice Monet, Jean-Pierre Hoschede, Jacques Hoschede,

Blanhe Hoschede, Jean Monet, Michel Monet, Martha Hoschede, Germaine Hoschede, Suzanne Hoschede.

 

이후 두 사람은 여덟 명의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게 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1911, 알리스마저 세상을 떠난다.





슬픔에 잠긴 모네는 우을증에 시달리며 2년동안 그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1926, 모네도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은 지베르니 교회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