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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해병대 입대 44년이 되는 날(하)
01/10/201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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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해병대 입대 44년이 되는 날!

하편)

해병대 시절을 회상하면 자동적으로 얼굴이 연상되는 사람이 여러 명 있다. 우리 중대 중대장이었던 배상기 중대장(나중에 해병 포항부대 사단장까지 역임)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배상기 중대장은 나를 ‘중대 연애편지 담당자’로 임명할 정도로 아꼈다. 제대할 때까지 중대의 거의 모든 펜팔 편지는 내가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조부로부터 부친으로부터 한학을 익히고 책 읽기를 좋아한 덕분에 그런 평가를 받았는데 덕분에 고된 훈련생활을 하는 가운데도 재미난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해병대는 완전무장 구보를 많이 한다. 특히 그 당시는 매주 토요일은 완전무장 구보를 한다. 무장구보가 12킬로를 질주로 40분대에 완착해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타 중대와 시합까지 벌였으니 고생이 오죽했겠는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출전하기 전에 모든 병사에게 매(빠따)를 먼저 친다. 아마 중대장으로 오고 난 그 주 무장구보에 앞서 "사람은 누구나 낙오할 수 있다. 그러나 해병은 낙오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배 중대장은 훈시를 곧 잘 하곤 했다. 요즈음 같은면 인격이 어떻고 하면서 매만 이야기 하겠지만 얼마나 멋진 말인가.

또 한 사람은 진해 훈련소에서 해군 해병 1기, 해병 266기, 해군 160기 훈련병들을 가르쳤던 해병 하사 신용행 교관이다. 요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이 아니라 저승사자나 야차 같은 사람이었다. 당시 그는 훈련병들에게 ‘하리마오’(인도네시아어로 호랑이라는 뜻)라고 자신의 별명을 소개했다. 별명 그대로 해병대를 길러내기에 아주 적합한 교관이었다. 경우에 어긋난다 싶으면 충격적일 정도로 이른바 매질을 했고, 식사시간을 30초밖에 안 주었으며, “동작 그만과 식사 끝!”을 자기 마음대로 외쳤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바드득 이를 갈며 “이 개XX들”이라면서 음산하게 훈련병을 노려보았다. 다른 훈련병들은 그러한 신 교관에게 겁을 많이 먹었지만 나는 그 교관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해서 길러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를 통해서 전우애가 무엇이며 팀웍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훈련소에 입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74년 1월23일은 설날이었다. 아주 추운 겨울날 밤으로 기억된다. 불침번을 끝내고 막 잠에 곯아 떨어졌는데 고막을 찢을 듯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이어 “완전무장! 선착순!”이란 명령이 떨어졌다. 선착순! 완력으로 다져진 내 몸은 마치 스프링 튀어 오르듯 침상에서 튀어 올라 재빨리 완전무장을 하고 연병장에 1등으로 뛰어 나갔다. 그러나 내게 돌아온 건 외출이나 외박 같은 상이 아닌 ‘빠따’라는 벌이었다.

당시 훈련병 중대장을 맡고 있던 신 교관은 내게 매질을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해병대는 너 혼자만 잘해서 되는 곳이 아니다! 동료를 챙기고 함께 할 때 비로소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팀!, 단합!’은 더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다. 팀웍이 좋을 때 성공도 할 수 있고 비로소 빛이 나는 것이다. 함께 하는 것과 더불어 해병대가 강조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단정한 복장이다. 해병대는 휴가를 나가거나 부대 안에서나 단정한 복장, 깨끗한 복장을 강조한다. 이미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던 ‘양반은 옷 매무새 부터 단정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우리회사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복장 단정이다. 건전한 정신은 단정한 복장에서부터 비롯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살고 있다.

그 밖에도 해병대 시절 배우고 익힌 여러 가지들을 평생 동안 생활에서 응용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나는 지금도 회의를 시작하거나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 꼭 “팀! 뉴스타!”하고 세 번씩 복창을 하게 한다. 해병대 시절 중대장이 “나가자!” 하면 중대원들이 “해병대!”하고 복창했던 것을 응용한 것이다. 그것은 직원들의 팀웍을 일사불란하게 다지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조직을 믿는다는 것이기도 하다. 복창을 하면서 스스로 마음 가짐을 올바르게 하겠다는 뜻이고 조직의 일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병대는 옷이나 모자 등 눈에 띄는 모든 곳에 해병대의 로고를 붙여서 마음으로부터 확신을 가지게 한다. 우리 뉴스타 그룹도 마찬가지다. 옷이란 옷에는 모두 뉴스타 로고를 새기게 하며 심지어 골프채, 체육복, 자동차 번호판, 개인 가구까지 전부 뉴스타 로고가 박혀 있다. 일종의 ‘뉴스타 혼’을 심는 작업이라고나 할까.

이렇듯 해병대는 내 인생의 대학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과 가치관을 심어 준 곳이 바로 해병대이다. ‘흘러가는 물결 그늘 아래 편지를 띄우고’로 시작되는 이른바 ‘곤조가’,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로 씌어 있는 해병대 명찰, 그리고 각종 로고! 지금 보아도 멋진 대학이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해병대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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