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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안식으로 들어갈 자의 두려워할 일 -히3:12~4:2-
01/06/201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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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안식으로 들어갈 자의 두려워할 일 -3:124:2-

 

안식을 향하여 가는 길은 싸우는 길이요, 환난과 역경을 통과하는 길이니 안식에 들어가기까지는 두려워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소망 없는 공포를 말한 것은 아닙니다. 소망이 확실한 사람으로서 두려워할 일을 말한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어떤 군대가 원수에게 죽을까 봐 무서워 떤다는 것은 실패의 근본입니다. 그러나 승리를 이루지 못할까 봐 떠는 마음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갈 때, 나는 죽고라도 승리를 이루는 것을 목적한다면 이러한 군대는 강병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일국의 영토를 위하여 싸우는 군대로서 목적을 위하여 이루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요, 우리는 영원한 안식을 확신하는 소망이 있다면 여기에 이르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일이 없이는 안 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 들어간 줄 알고 잠자는 것도 잘못이요, 목적을 향하여 가다가 원수가 무서워 후퇴한다는 것도 잘못일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를 두려워할 것보다도 하나님이 두려워서 죽어도 나간다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안식으로 인도하시는데 이 하나님을 순종치 않을 수 없다는 데서 떠는 심정일 것입니다. 이제 두려워하는 자의 할 일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1. 형제 중에 악심을 품고 떨어지는 자가 있을까 봐 염려하라는 것입니다.(12)

우리가 만일 내가 죽을까 봐 떤다는 것은 합당치 않지만 어떤 형제가 잘못될까 봐 떠는 심정이 있다면 사랑의 양심에서 움직이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종이 형제가 잘못되는 일을 보고도 안심하고 있다면 이것은 합당치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양 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항상 애타는 심정을 가졌다는 것을 늘 말한 것입니다(12:15).

 

2. 유혹을 받아 강퍅해질까 봐 조심해야 합니다.(13)

우리는 항상 유혹이 없다는 것은 성서적이 아니고, 유혹이 있으나 피차 권면하여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데서 항상 형제 가운데 유혹이 있을까 봐 조심하고 떠는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가는 길이었으나 강퍅해지는 무리가 있으므로 수많은 대중이 재앙을 받고 화를 받은 일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합니다.(14)

아무리 확실한 소망이 있고 확실한 안식의 도리를 안다 해도 끝까지 굳게 잡는 것이 없다면 하와가 말씀의 칼을 잡지 못하므로 떨어지듯이, 굳게 잡는 자라야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말세 진리가 틀림없다고 말하면서 굳게 잡는 그것이 없다면 이것은 아무런 효과를 낼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확실한 말씀을 주는 동시에 빼앗는 마귀도 대립을 시키는 것입니다. 만일 확실한 것을 주고 빼앗는 대적을 두지 않는다면 누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1518)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를 마셨으나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원망이 있고 순종치 않을 때 전부 광야에서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말일에 안식에 들어가는 무리에게 준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도 짐짓 말씀을 가감한다면 재앙을 받는다는 것이 계시록의 원 대지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 할 때 하나님은 어느 민족보다도 야곱을 더 사랑해서 인도하는데도 불구하고 짐짓 순종치 않을 때 격노치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의 피를 문에 바르고 나오는 이스라엘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거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는 영적 이스라엘이 예언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다는 것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4:910에 누구든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는 자는 영원히 멸망이라는 것은 교회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5. 안식에 미치지 못할까 봐 떨어야 한다 (4:12)

우리는 주님 다시 오셔서 들림 받을 때까지 가는 길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거쳐서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치고 들어가는 일과 같기 때문입니다. 40년 광야에서 만나를 먹던 무리 중 여호수아 갈렙 만 안식에 들어가고 육십만 대중이 다 쓰러진 것은 우리에게 주는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10:2223에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온다고 한 것은 온 세계 중 끝까지 행할 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길을 떠나는 일도 해야 할 일이나 목적지에 도착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요시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이날까지 기독교가 내려오다가 말세 예언을 믿지 않고 망한다면 이스라엘 대중 60만 명 중 두 사람만 남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도 시대적인 말씀을 믿는 것이니 말씀을 듣고도 화합지 아니하면 안식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슬픔 중에 슬픔은 안식의 길을 가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쓰러지는 인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1:4).

 

결 론

우리는 소망 없는 인간이라면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죽을 바에는 해본다는 발악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들을 황충이라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고 두려워하는 일도 있고, 소망 없이 공포 중에 떨다가 죽는 일도 있고, 소망 없이 발악하는 단결도 있고, 소망이 확실해서 용기를 내는 단결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려움이란 소망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며 화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불길이 붙는 데서 한 생명도 잃을까 봐 떠는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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