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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스가랴 변론 증거. 9장(1). 평화의 왕, 만왕의 왕. 그리스도의 화평과 심판. (슥9:1~10)
08/20/2019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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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스가랴 변론 증거. 9(1). 평화의 왕, 만왕의 왕. 그리스도의 화평과 심판. (9:1~10)

 

# 세상의 지혜와 은금이 소용없음, 악의 세력은 완전히 없앰, 나귀타는 겸손한 왕이심, 이방에게 화평의 복음을 전함,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헬라를 치게 됨, 남방 회리바람처럼 행하심, 양떼 같이 보호하고 구원함, 면류관의 보석같이 빛남 #

 

   본장은 8장과 같이 이 땅에 새로운 시대가 올 때 평화왕국의 왕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그런데 나귀를 타고 오시는 주님은 겸손과 평화의 왕뿐이 아니라 심판주 예수님도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심판하고 평화의 새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적 이스라엘 백성은 심판주 예수님의 역사는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 요절: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작은 나귀니라.

* 강해) 완전 평화왕국의 지도자는 가장 겸손한 자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 9:1~4.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 그 접경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임하리라.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은즉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찌라.

* 강해) 이 땅에 새로운 시대가 올 때 평화왕국의 왕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르친 말씀인데 이 평화의 왕은 불의한 자의 호화로운 것을 용납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만왕의 왕이 세계를 통치하는 데는 이방 세력을 모두 없애고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으로 새 시대를 이룹니다. 이방 세력은 은금이 티끌같이 많지만 다 없앱니다. 새 시대는 백성과 왕족이 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왕을 섬깁니다이방 중의 이방은 무신론 유물론 사상의 공산당 마귀 세력입니다.


* 9:5~8.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 강해) 완전 평화라는 것은 악의 세력과의 평화를 가질 수 없고 악의 세력을 없이하므로 지상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덮어 놓고 평화왕국을 이룬다는 것이 아니고 한번 복음을 전해 놓고 안 들을 때에는 악의 세력을 없이합니다.

이방중의 이방은 무신론 유물론의 악인의 공산당이며 죄인은 믿지 않는 자입니다. 평화왕국 새 시대에는 원수의 세력을 완전히 없앱니다.

 

*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 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 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작은 나귀니라.

* 강해) 완전 평화왕국의 지도자는 가장 겸손한 자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는 평화의 왕이라고 선지가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이 평화의 왕이 된 적이 없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올라 갈 때에 즉시 왕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만찬 때에 십자가에 죽고 삼일 만에 살아난다고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안 된다고 하니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구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이루는 것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알려주셔야만 알게 됩니다그리고 심판주의 역사를 모르고 유대인이 실패했고 흑암에 빠진 것입니다.

 

@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이는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작은 나귀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12:12~15)

 

& 예수께서 나귀 타고 오심으로 되는 일.(9:9).

   만일 예수께서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이 없이 되었다면 성경이 그대로 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귀를 타신 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을 보인 것이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그 길은 여호와의 땅에 빛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이루기 위한 왕으로서 상경했던 것입니다.

모든 제자들은 그때 단번에 예수님이 왕이 되는 줄 알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모든 대중은 예수가 왕이라고 호산나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어긋났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볼 때 절망 낙심해서 원망하고 욕하며 침을 뱉고 비웃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즉 진리를 모르는 인간들이 호기심 명예심에서 날뛴 것뿐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면 자기네 나라에서 왕이 되고 세계를 다스린다는 신앙관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본문 성경인 슥99절 이하를 똑똑히 알았던들 그렇게도 낙심해서 넘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성경에서 일점일획도 어기지 못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을 자기 욕망에 채우는 허영심에서 날뛰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스가랴9:9에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온다는 것만 보고 그 아래는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금일도 성경을 이와 같은 상태에서 자기 주관에 붙이는 신앙이란 어려운 일이 올 때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 겸손하게 나귀를 타심.(9)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시어 나사렛 동네의 목수 생활을 거쳐 불쌍한 양떼를 위하여 쉬지 못하고 일하는 길을 거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모든 유대인들은 호산나를 부르며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힐 적에 그들은 훼방을 하고 조롱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네가 왕이라면 너를 때리는 우리는 누구냐하면서 예수를 핍박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일언반구에 불평의 말 한마디 없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말씀이 이 무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화목제를 드리는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 9: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 강해) 이 평화의 통치는 민족적 국경에 차별이 없는 세계적인 평화를 가르치되 하나님의 화평의 도를 전하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에 화평이 있고 인간과 인간과에 화평이 있을 것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세상에 전쟁이 없는 평화왕국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해서인데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하고야 그 정권이 세계 통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은 지혜, 지식, 능력, 권세가 옵니다. 예수님과 화평하면 하나님께 있는 것 다 우리에게 옵니다. 기도 응답 없는 것은 하나님과 화평치 못한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면 하나님과 원수요, 사명 맡아서 사명 않고 잠만 자면 하나님과 원수요, 무장한 사명자가 성경 잘 안보고 기도 않고 태만하면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화평한 사람은 일거동작 말 한마디 무엇이든지 상급이 됩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화평한 인격을 이룬 종의 수가 차면 세상 끝입니다. 화평을 전하고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통일의 지상 천년평화왕국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 이방에 화평을 전하는 역사.(9:10).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딸아 기뻐하라는 말씀을 하시고 그리스도로 먼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한 후에 그 정권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르고 세계를 통치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방인을 짐승같이 보는 과오를 범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교인들은 이방은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흑암에 빠져 있던 것입니다. 만일 바리새교인들이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았던들 바울은 그다지 박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위 전통을 찾는 바리새교인들은 이방에 복음을 전한다하여 염병 같은 놈이라고 했습니다. 금일도 성경을 자세히 읽지도 않고 남을 비판하는 자는 바리새교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함

   십자가는 잃었던 백성을 찾는데 있어서 아무리 과거에는 이방과 유대가 원수였지만 이방인을 압박하던 유대인들이 사도가 되었을 때는 오히려 이방 사람에게 핍박을 받으면서 화평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율법 시대에는 유대인이 이방 사람은 대하지도 않고 좌담을 하거나 음식을 함께 먹은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통하여 화평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동기는 베드로가 해변 욥바 땅 피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묵시를 보았습니다. 이 묵시는 기도 중 하늘로부터 둥근 보자기가 내려 왔는데 보자기 속에 더러운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소리가 들리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물건은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는 음성이 2. 3차 들려왔습니다.

그때에 문 밖에서 베드로를 찾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이방 사람 고넬료가 보낸 하인이었습니다. 그때에 성령께서 의심 말고 따라가라는 지시를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순종의 걸음을 걸어 이방 사람의 집에 처음으로 발걸음을 놓게 되었습니다. 고넬료는 말하기를 자기 집에서 기도를 하던 중 천사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해변 욥바 땅 피장이 시몬의 집에 베드로라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을 데려다 복을 받으라고 했는데 이렇게 오시니 감사하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입을 열어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게 했으니 이 복음을 들어라.” 하면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했을 때에 그 말을 듣던 이방인들이 즉시 성신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성신을 부어주니 우리가 어찌하여 이방 사람을 무시할 수 있느냐는 생각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여 온 세계에 전파된 것입니다. 이로서 이방에 화평을 전한다는 말씀이 오늘날 응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1412절 계명성도 천사의 타락이 아닌 그 당시 바벨론의 왕의 교만함과 비참한 최후를 들어 인간 종말의 북방 이방인 공산당의 패권자들의 교만과 종말을 참혹을 얘기 한 것으로 천사의 타락으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또한 사40장의 3절에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는 은혜시대 천국복음(24:14)의 시작을 9절에 아름다운 소식은 재림의 주를 영접하는 말세 복음의 영원한 복음(14:6)을 말한 것인데 영혼 구원의 천국복음만 믿으면 안 되고 영육구원의 예언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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