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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변론 증거 72. 58장.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 안식일, 금식, 에덴 축복.
05/14/202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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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변론 증거 72. 58.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 안식일, 금식, 에덴 축복.

(58:1~14)

 

# 허물과 죄를 고함, 헛된 금식, 열납 될 금식, 앞뒤에서 호위, 응답, 젊어지는

역사,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울 인격, 주일을 바로 지키는 일 #

  

   본장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완전한 축복을 주고자 하시되 어떠한 자가 되어야만 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가르치되 주일을 철저히 지키고 철저한 회개를 외치라고 말씀했습니다. 에덴동산 회복의 왕국건설을 한 말세 사명자들에게 눈물 고통 질병 사망이 없고 부족이 없고 해함도 상함도 없는 지상 천년왕국의 영육간의 안식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 요절: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 강해) 주의 인도하심이 같이 하므로 메마르지 않고 심령의 만족과 몸의 건강과 넘치는 샘같이 복을 받아 많은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는 열매가 있게 될 것입니다.

 

* 58:1.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 강해)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완전한 축복을 주고자 하시되 어떠한 자가 되어야만 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가르치되 철저한 회개를 외치라고 말씀했습니다. 심판 날에 불신자가 아니라 야곱의 집에 죄를 지적하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경고의 변론의 권세역사입니다. 믿는 자에게 대하여 하는데 특히 말세 복음을 받은 자들이 해당됩니다. 문서운동과 유튜브의 변론을 통하여 선지서의 본문을 밝히는 것이 허물과 죄를 지적하는 것이 됩니다. 무엇을 죄로 여기며 무슨 죄가 있느냐를 말합니다. 원죄와 자범죄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3:8)

 

* 58:2~5.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며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 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 될 날이라 하겠느냐.

* 강해) 하나님을 날마다 찾고 옳은 길 알기를 즐거워하며 의로운 판단을 구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즐겨한다 하여도 그들의 기도를 받을 수 없는 조건은  오락을 찾는 일 남을 시켜서 부리기를 좋아하는 일 다투고 싸우는 일, 이러한 일이 있으므로 이것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야곱의 집이라도 복을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기뻐하여야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희생 봉사와 섬김의 생활을 해야만 열매가 있는데 남 시키기만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서만 싸워야 하는데 다툰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일은 하지 않고 남을 시키기 좋아하면서 기도하니 응답이 없습니다. 공연히 남을 헐뜯고 흉보고 특히 목회자들이 그러합니다오늘의 기독교가 세 가지가 걸리는데 오락이요 향락이요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이 통 없습니다.

 

* 58:6~9.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 강해) 하나님께서 귀한 사명을 맡긴 것은 형제를 구원하고 돕기 위해서 맡긴 것이니 원수의 세력과 싸우는 세상에서 형제를 위하여 희생적인 봉사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완전한 빛의 역사를 일으키는 동시에 고칠 것을 고쳐 주며 여호와께서 영광으로 호위하며 응답의 역사를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남의 결박을 풀어 줄려고 해야 하는데  힘이 드는 것을 풀어주고 억압을 풀어주고 억울함을 당할 때 벗겨주려는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 육적 다 말입니다.

대접받고 환영 받을 때 응답이 오는 것이 아니고 날 괴롭히고 근심을 주고 고통을 주는 사람이 올 때 그것을 어떻게 하든지 살려보고 할 때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환경이 좋을 때 응답이 오는 것이 아니고 환경이 나쁠 때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쓸 때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시아에 평화가 왔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하겠습니까? 우리나라가 난제가 쌓이고 평화를 보존하기 어렵고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때에 하나님의 권세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국가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므로 완전무장하여서 환란 재앙의 날에 많은 사람을 살리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북방 정권과 바벨론 정권과 음녀 정권 교권에 사로잡힌 양떼를 살리기를 소원해서 하나님께서 알아 줄 만큼 사랑해야 합니다.

 

@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4:2)

@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52:12)

@ 야곱아 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2:12~13)

@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4:5~6)

@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25:31~33)

@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

(128)

 

&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9).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해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무거운 멍에를 자기가 벗고 남에게 메우려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의 잘못을 볼 때에 고치려는 마음이 없고 손가락질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허망한 말로 남을 해치려는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이 세 가지가 있는 자는 도저히 응답을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을 받으려는 것도 마땅한 일이지만 버릴 것을 먼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축복 받는 비결.(58:9~10).

   하나님은 복의 근원인 동시에 복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조건 없이 복을 준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어떤 자가 되어야 말세에 큰 축복을 받는다는데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은

   첫째 항상 인도하되 심령의 만족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모든 것이 잘되는 것 같으나 영혼이 만족치 못하는 일이라면 이것은 하나님께로 오는 축복일 수 없습니다.

   둘째 뼈가 견고케 되는 것이니 이것은 소성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11).

하나님의 축복은 피곤에 잠긴 것이 아니고 정상적인 샘물같이 솟아오르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황폐한 곳을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새 시대를 가르친 것이니 완전한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 받는 종을 통하여 아름다운 새 시대를 건설할 자를 일으키게 된 것을 완전한 축복이라 한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화려한 생활이 있다 하여도 이것은 황폐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 58:10~12.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 강해)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것은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 가운데 주린 자를 불쌍히 보는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자가 된다면 어두움을 물리치고 나가는 동시에 주의 인도하심이 같이 하므로 메마르지 않고 심령의 만족과 몸의 건강과 넘치는 샘같이 복을 받아 많은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는 열매가 있게 될 것입니다. 새 시대 들어가는 변화성도의 마음이 이러해야 합니다.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설교를 치면 은혜 못 받고 강퍅해 집니다. 눈물겨운 심정으로 부드러운 마음으로 심령에 만족을 주어서 새 시대 건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을 괴롭히면 안 됩니다. 성경 본문대로 전하고 증거 하면 괴로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만족케 해주면 영계가 올라갑니다. 뼈를 견고케 한다는 것은 은혜로 모든 질병이 고쳐지고 젊어지는 역사입니다.

 

@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66:14)

 

& 주린 자에게 심정을 동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10).

   만일 남의 주린 사정을 보고도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양심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남의 딱한 일을 볼 때에 마음이 동하여 하나님을 향할 때 하나님은 그 심정을 보고 움직여 주시는 것입니다.

&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인격.(10).

   오늘날 참된 종이라는 것은 마음이 괴로워하는 자를 만족케 해 줄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마음이 괴로워하는 자에게는 몽학적 교훈이 필요치 않고, 완전 변론의 역사가 있어야만 될 것입니다. 은혜 시대의 역사는 젖을 주는 것이라면, 괴로워하는 마음에 만족을 주는 교훈은 감추었던 만나가 될 것입니다.

이 시국에는 사상과 양심이 바른 성도들에게 괴로움이 되는 일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방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괴롭고, 남방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괴롭고, 동서방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괴로운 형편에 있는 것이 이 때입니다. 몰라서 죄를 짓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사상으로, 정치로, 교회로, 가정으로 변해진다는 것은 극상 포도를 심은 농부가 들 포도가 된 것을 보고 괴로워하는 것과 같이 사상, 양심이 바른 참된 하나님의 종이 괴롭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들에게는 천국 복음을 말해서 마음에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요, 심판과 새 시대에 대한 진리를 완전 변론으로 증거 해서 괴로워하던 종의 마음에 의문을 풀어 줄 때에 자동적으로 만족을 가지게 됩니다. 피곤한 그 마음이 각성을 받고, 분명히 이때는 우리가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때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괴롭던 모든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 될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므로 해결될 것을 확신하게 되므로 마음에 만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초림의 주가 오실 때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그 죄를 사함 받으므로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국의 여러 가지 문제가 마음에 괴로움이 된 사람에게 완전 변론의 말씀을 증거 하게 되면 모든 어려운 난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됩니다. 이것은 말씀대로 시국이 이렇게 되었으니 말씀대로 어떠한 노선을 가야만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때에 마음이 괴롭던 자들이 만족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었던 영들이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을 증거 하는 종들을 통하여 중생을 받았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환난과 재앙을 만난 사람들이 이루어질 예언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게 될 때에 마음에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심정을 알아주는 것이 첫째 할 일입니다. 아무리 남에게 육적으로 도움이 있다 하여도 그 마음을 만족케 하는 일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를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의 종이 양떼의 마음을 만족케 못하고 괴롭게 한다면 자동적으로 흑암이 올 것입니다.

& 어디서든지 항상 만족을 누리는 인격.(11).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인격이 되려면 아무리 메마르고 적막한 자리에 간다 하여도 항상 만족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조금도 피곤이 없는 인격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괴로운 것이 남아 있다면 자신부터 고쳐야 될 것이 있는 인격이니,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독교 종말에 역사를 일으킬 종은 은혜 시대보다도 더 만족한 것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은혜 시대의 종인 바울은 겉 사람은 날마다 후패하나 속사람은 새롭다고 하였지만, 인간 종말에 남을 종이 될 사람은 영이 소성함같이 몸도 아울러 소성함을 받는 역사가 있으므로 그 몸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 많은 열매를 맺는 인격.(12).

   이 땅에서 가장 열매가 많은 인격을 가진 자는 새 시대로 많은 사람을 인도하는 사명자입니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가진 자는 대중적인 구원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영혼 구원을 목적했습니다. 그러나 인간 종말에 새 시대를 이루는 종은 순식간에 새로운 왕국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하게 됩니다.(66:7-9). 천국은 단체적으로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 죽어서 그 영혼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역사는 전 세계 인류가 전멸을 당하는 날에 단체적으로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복 있는 자는 무너진 데를 다시 세우는 일을 하는 종입니다. 에덴동산을 복구하여 새 시대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울 인격.(58:10~12).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쓰시는 사람은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종이라는 것을 본문에 가르쳤습니다. 이날까지에 우리 기독교는 몽학적 교훈의 역사를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몽학적 교훈을 하는 때가 있었고, 경고의 나팔을 부는 선지 시대가 있었습니다.

구약 때에 몽학적 교훈은 모세 오경이니, 없던 성전을 세웠고 없던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그대로 그 법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친 동시에 제사하는 법을 가르쳤고, 성전 짓는 법을 가르쳐서 그 말씀대로 나라 헌법이 되었고, 그 말씀대로 성전이 이루어졌고, 그 말씀대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족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가 지나서 선지 예언 시대라는 것은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운다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예언한 때를 말합니다. 부패한 정부와 부패한 선지와 부패한 성전의 모든 것은 다 황폐화되고 말 것을 가르쳤으며, 거기에서 새로운 순의 종이 나와 예루살렘이 다시 복구될 것을 가르친 것이 선지 예언입니다이와 같이 신약 시대에도 새로운 사람들이 중생을 받아 뭉쳐지는 단체를 교회 단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 때에 몽학적 교훈이 되는 모세 오경에 가르친 말씀대로 이루어진 교회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몽학적 교훈이 완성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날까지 기독교는 이스라엘 왕국의 몽학적 교훈이 신약 교회에 완전한 열매가 되는 교회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 시대에 경고의 예언의 말씀이 구약 말기에 증거가 나타난 것은 신약 종말에 완전한 열매가 될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울 종의 인격은 어떠한 것이냐? 사람이 무너뜨리는 일은 하기 쉬워도,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귀한 일입니다. 오늘날 심령 부흥회가 각 곳에서 열리고 있지만 이것은 완전한 역사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 가장 큰 역사입니다.

 

&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일 (58:10)

심령의 괴로움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려는 마음은 있으나 그대로 되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자를 가르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한 것은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괴로워하는 마음에 만족을 주는 역사는 다음과 같은 3대 원칙이 있습니다.

1) 괴로워하는 그 심정이 소망에서 만족을 얻도록 가르치는 설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설교라는 것은 소망의 확실성을 중심한 설교라야 괴로운 마음에 만족을 주는 것입니다.

2) 설교자의 마음에 뜨거운 사랑의 불꽃이 있을 적에 같은 말씀을 전해도 괴로움을 느끼던 마음들이 새 힘을 얻고 새로운 출발을 가져오는 변동이 있게 됩니다.

3) 확실성이 있는 설교입니다. 설교라는 자체는 듣는 사람이 확실하다는 신념이 마음에서 생기는 시간에 흑암을 끼고 들어오던 괴로움은 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설교자가 소망을 말하고 열심 있게 말한다 하여도 듣는 사람이 정확하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을 때 오히려 흑암이 들어갑니다.

만일 말세종이 정확한 종말관을 바로 말하지 못한다면 환란 중에 고통을 당하는 심령에 만족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 58: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 강해) 특히 복 받을 자가 되려면 성일에 오락을 금하며 그날을 존귀하게 알며 사적의 일을 위하여 길을 행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금하고 거룩한 날에 정성을 다하는 자라면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동시에 성산의 축복을 기업으로 누릴 것입니다. 새 시대 가서 영광을 누리려면 주의 날을 거룩히 하라는 것입니다.

주일날은 만족한 은혜를 받아야만 합니다. 흡족한 은혜를 받으려면 한 시간 전에 준비성가 하고 기도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모하고 절대로 사사로운 말과 일을 하지 않고 여호와 안에서 즐거워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왕권의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즐겁고 존귀한 날입니다.(13).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날은 땅의 것을 위하여 사는 날이 아니요, 하늘의 것을 위하여 사는 날입니다. 어떤 교회가 안식일에 하늘의 것을 받는 체험이 없다면 자동적으로 그 날은 외식이 되고 말 것입니다엿새 동안에 마음이 상처를 받고, 피곤해지고, 복잡해졌다 하더라도 안식일에 교회로 와서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새로운 역사를 받게 될 때에 극도로 즐거워집니다.

그리고 가장 존귀한 날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에는 대 사업보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아는 사람이 일을 중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볼 때에 가장 존귀한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안식일에 즐거워하는 마음이 자동적으로 생기도록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그 생활은 아무런 열매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에 있어서 자동적으로 외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안식의 축복을 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은 안식일에 모여서 우렁차게 호소 성가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집에서 기도의 힘을 잃었던 사람도 성전에 나와서 호소 성가를 올리게 될 때에 새로 나리는 역사를 받게 되므로 메마른 땅에서 시들은 풀이 단비를 맞고 소성하듯이 소성함을 받게 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새 시대를 목적한 진리를 중심하여 새일 성가를 내려 보내신 것은 그 기도 호소문을 통하여 안식일마다 무한한 축복을 내리기 위한 방법입니다. 우리 촛대교회에서는 새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이슬과 단비 같이 역사가 내리므로 누구든지 믿음으로만 부르게 되면 산 체험을 가지게 됩니다.

아무리 피곤하던 사람이라도 이 성가를 부르게 될 때에 분명히 소성함을 받게 되는 모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안식일에 이 성가를 통하여 나리는 흡족한 은혜를 항상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오락을 한다는 것은 은혜가 나리지 않는 교회에서 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락보다도 하늘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가지고 그날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 사적을 떠난 공적의 날입니다.(13).

   안식일에는 단체적인 행동을 해야 됩니다. 사사로운 행동이나 말을 하지 말고, 공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과 대중을 복 받게 하는 일을 중심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교인이 교회를 나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예배한다는 것은 벌써 공적 교회를 무시하는 일이니, 죄를 범하고 있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사적 생활에 대한 일이나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서 한 단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를 위한 것보다도 대중을 위해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력을 둘 때에 자동적으로 거룩한 단체가 되어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예배를 드리게 되며,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강단에서는 종은 하나님께서 그날에 하실 말씀을 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제물로 올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렁찬 호소를 올려야 합니다. 제물은 이미 그리스도의 몸으로 제사를 완성한 것이니, 우리는 이 몸을 바쳐 예배할 때에 지성소에 있는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통하여 응답이 내리는 것입니다. 강단에 선 종이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입을 열어 설교할 때에 그 말을 통하여 대중이 만족함을 받는 일이 있게 되므로 교회는 날마다 신령한 은총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예배를 인도하는 종이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지 못하고 강단에 선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세상으로 흩어지게 되는 일이 있으므로 그 교회는 속화되고 말 것입니다.

 

&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날입니다.(14).

   우리는 안식일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얻는 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안식일에 극장을 가고, 야외 소풍을 가고, 운동회를 하고, 오락회를 열고, 파티를 연다면 벌써 여호와 안에서 떠난 행동입니다.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교회가 될 때에 세상 오락이라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통하여 교회 전체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보다도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 안식일과 예배에 대하여 (58:13-14)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되 시대적인 진리에 따라 예배를 받으십니다. 율법시대에는 율법을 따라 중심을 바치는 제사를 받으셨고, 은혜시대에는 은혜 시대의 복음에 의하여 중심으로 바치는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가는 자로서는 다음과 같은 예배와 성일의 의의를 가져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일을 주신 것은 그 시대 사람에게 축복을 주자는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사58:13-14은 환란 시대에 남은 자로서 받는 축복을 가르쳐서 말씀한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세에 새 시대를 이루는 성남 성녀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키는 성일은 모세의 율법에 해당되는 성일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피를 받은 자로서 마땅히 축복을 받아야할 첫날이 이레 중 첫날입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사망을 맛보시고 음부에까지 내려간 날이 토요일이요, 사망을 뚫고 다시 올라온 날이 이레 중 첫날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에 축복한 토요일이 둘째 아담에게 준 축복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안식일에 축복을 받는 날이니 이레 중 첫날입니다.

 

  # 안식일과 즐거움.(58:13~14).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즐거운 일을 다 마치시고 안식하신 날입니다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하실 때에 즐거워하신 것은 없었던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일 천지 창조가 없었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부부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이 가만히 있다면 즐거움이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하시지 않으시고 영원히 홀로 계신다면 아무런 영광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마다 크게 즐거워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대 사업을 마치시고 축복하신 날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 하므로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는 축복을 받지 못하고 슬퍼하시는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아무리 타락한 인생이라도 다시 그 축복을 주시고자 하는 거룩하신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을 지키는 자에게 거룩한 뜻을 알게도 하시고, 그 복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시대와 신약시대의 안식일에 대해서 그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율법시대의 안식일은 몽학적이라면 신약 시대의 안식일은 완전히 이루어지는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언적인 성전에서 지켰던 안식일은 열매가 될 교회가 누릴 안식을 보여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의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따라 행하시는 날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은혜를 따라 행하시는 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완전 승리의 열매를 이루신 이레 중 첫날이 되는 그날에 부활하신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받기도 하시고, 은혜를 내리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법에 의한 안식이므로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장 귀하고도 즐거운 날은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존귀한 날은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예배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에 복을 받는 자가 되어야만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은 완전한 축복을 주시는 신이신 동시에 복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해야만 준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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