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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변론 증거 31. 10장(2). 쓴 시련, 다시 예언.(계10:8~11)
09/11/2019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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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변론 증거 31. 10(2). 쓴 시련, 다시 예언.(10:8~11)

 

# 작은 책을 먹음, 쓴 것을 통과, 다시 예언 #

 

* 10:8~9. 하늘에서 나서 네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작은 책을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 강해) 이러한 계시를 보는 사도 요한에게 그 작은 책을 먹으라고 한 것은 말세의 종은 완전계시의 비밀인 다림줄의 진리를 몽땅 가감 없이 완전무장을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계시로 먹었지만 우리는 진짜로 먹어야 합니다. 완전히 깨달아야 합니다. 일곱 인으로 봉한 계시록을 완전히 먹은 종은 완전 변론의 대표적인 종이 나타날 것을 뜻한 것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자기가 연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먹을 때가 올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1 2:20)

@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1 2:27)

 

* 10:10~11.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 강해) 이 작은 책이 입에는 꿀같이 단데 배에서는 쓰게 된다는 것은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먹고 그대로 싸우려면 쓴잔인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배에서 쓰다는 것은 내부적인 시련으로 가정의 시련과 교회 내부의 시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의 말씀대로 붉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가 합하여 세계적인 큰 세력을 잡고 환란이 일어나는 때이므로 그 세력과 싸우는 데는 순교적인 생활이 없이는 전할 수 없을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좋은 소식을 알려주나 곤란이 온다는 것입니다.

3:2에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이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였습니다. 예언 기간은 3년 반입니다. 잠간만 참으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과 육이 아울러 구원 받는 기쁜 소식인데 그러나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시련기가 온다는 것입니다.

다시 예언하여야 한다는 것은 말세의 계시록의 뜻을 알려서 전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처음의 전해진 계시록의 뜻을 해석하여 전하라는 것입니다. 8:20에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쫓을찌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리라고 하시었습니다. 말세 비밀인 계시록은 이날까지 가르쳐 전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먼저 수고하신 종들이 부족하여 몰랐다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알려준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약속 공개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일이지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여 하는 일은 아닙니다. 여기 사도 요한을 보고 세계만방에 전하라 하심은 말일의 사명자들을 보고 한 말로 생각해야 합니다. 21:22에 요한을 내가 올 때까지 머물러 두시겠다고 주님이 말씀할 때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요한은 죽지 않는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사도 요한에게 주신 사명은 주님 다시 올 때가 되어서 그가 받은 계시록을 바로 알려주어서 전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 것입니다.

만일 이 계시의 예언을 분명히 모른다면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절대로 요한 계시록의 해석의 말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맞지 아니하면 흑암 중에서 빛을 보지 못합니다. 새 시대에 못 들어갑니다. 7절을 보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시었습니다. 초림의 주를 영접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은 베드로의 사명으로 양을 먹이는 것이며 재림의 주를 영접하는 하나님의 비밀은 요한의 사명입니다. (21) 즉 베드로 계통의 사도 사명과 요한 계통의 다시 예언의 선지 사명입니다.

 

@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1:19)

@ 그 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무릇 찌끼 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 (1:12)

@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21:17)

@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21:23)

@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전12:28)

 

# 쓴 것을 통과: 쓴 것이라는 것은 그 말씀이 쓰다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완전히 깨달은 종으로서 사단의 피해를 당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쓴잔을 통과했고 말세 종은 작은 책을 꿀같이 먹었으므로 쓴잔을 통과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사명이니 그것이 쓴잔이 되었고 말세의 종은 작은 책을 완전히 먹고 그것을 전할 수 있는 인격에 도달하기 위해서 쓴잔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쓴 것을 통과한 후에야 대표적인 종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예수님도 말세의 종도 다 쓴 것을 통과한 후에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세의 종은 천국을 위한 사명이 아니요 일곱째 나팔을 부는 때에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 나라가 되는 이 역사에 대표적인 종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스가랴 3장에서도 말씀의 대표와 순의 종이 나올 때 두 번 그슬린 나무가 된다고 변론했습니다. 그러므로 대표도 언약의 대표 아브라함이 있고, 율법의 대표 모세가 있고, 구원의 대표 그리스도가 있고, 다시 예언의 대표 순의 종이 있어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천하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는 그 언약은 모세의 받은 율법으로써 예언적인 선지 국가가 이루어지므로 민족적인 종교가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완성하시므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고 말세의 종이 다시 예언함으로써 완전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 진리의 영계 싸움과 시련, 가정 내의 시련을 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표적인 종에게는 쓴잔을 통과하고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리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리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나냐 하실 때에(3:2).

@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48:10)

@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40:27)

@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10:36)

@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6:4)

@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52:14)

@ 전에는 네가 버림을 입으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로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60:15)

@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황충을 지으시매 황충이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7:1~2)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를 열국 중에 미약하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2)

@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49:14~16)

 

# 다시 예언; 다시 예언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심판의 경고를 뜻한 것이니 모든 선지들이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묵시를 본 말씀을 말세의 대표적인 종을 통하여서 선지들의 받은 묵시를 다시 예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있으려면 작은 책의 비밀을 꿀같이 먹고 마귀와 싸우는 시련에서 승리를 이루는 인격이 됨으로써 세계적인 역사가 있을 것을 뜻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를 보았지만 이것은 사도 요한의 사명적인 뢰자의 영감의 역사를 할 때가 올 것을 보여준 것뿐입니다.

많은 제자가 있었지만 베드로에게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라는 사명을 주었으므로 이름대로 역사 했고 요한은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우뢰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심판의 역사를 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예언이라는 것은 용서 없는 심판의 다림줄을 뜻한 것입니다.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다림줄의 진리를 누구나 다 듣도록 세계적으로 전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말씀을 정확히 알도록 증거하고야 심판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일 큰 것은 다시 예언의 사명이니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에게 제일 큰 문제를 놓고 말한 것은 심판과 새 시대를 중점 했음으로써 종말의 종은 일점일획도 가감할 수 없고 여호와의 말씀을 다시 예언하는 것만으로 세계통일의 역사를 가져 올 것입니다.

지금 이사야와 소선지서 강해를 보면 다시 예언이라는 것이 2,700여년전 선지의 예언이 지금 이 시대의 상황을 정확히 예언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항상 인터넷, 유트뷰을 통하여 볼 수 있으니 과학발전도 복음을 세계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전하는 도구로 쓰는 것입니다.

# 증인 된 자격과 사명 #

하나님께서 독생 성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증거 할 신앙의 대상자로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친히 제자를 불러서 항상 같이 하게 하는 동시에 우리 주님께서 3년간 함께 하던 종들을 증인으로 세우시고 주님은 승천하신 것입니다.

먼저 제자를 세울 때 완전한 종으로 쓴 것이 아니고 완전한 종이 될 수 있는 증인을 삼아서 그들이 보고 듣고 만진 바를 증거 하므로 누구든지 그 증거를 믿으므로 만이 구원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 다시 예언자의 자격과 사명.(10:7~11)

심판기에 심판의 대상자는 붉은 말, 검은 말, 얼룩말인데 심판자는 백마 탄자입니다. 이 진리를 증거 하려면 하나님의 비밀이 옛날 선지자들에세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먼저 꿀같이 받아먹되 사람에게 받아먹는 것이 아니고 직접 하나님께로 받아먹은 자로서 아무리 쓴 시련이 와도 달게 먹은 책을 토하지 않고 끝까지 이기고 나간 자라야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은혜시대의 종은 중생을 받은 자라면 자기가 받은 체험이 있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죄 사함 받고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예언자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책에 기록한 대로 몽땅 먹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그 종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 한 사람에게 기독교 종말의 비밀을 다 알려 주므로 꿀 같이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판기에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종에게 꿀같이 먹도록 알려줄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쓴 것을 통과시키는 것은 꿀같이 먹은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나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완전히 변론하여 다시 예언하려면 그만한 영계에 도달하도록 쓴 시련을 통과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다시 용서할 기회가 없는 때이니 만큼 미리 시험을 통과시킨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대표의 사람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왜냐 할 때에 심판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구원문제가 아니요, 세계인류가 전멸되는 그날에 받는 구원은 인류적인 큰 구원이 되는 문제이므로 세계통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영계에 올라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죽기까지 순종했으므로 세계 인류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열매로 나타났고 말세에 다시 예언자가 나옴으로써 환란과 재앙 속에서 세계 인류가 그 예언을 듣고 지키므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을 믿으므로 가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다시 예언하는 말을 순종해야만 재앙을 면하고 천년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11:1에 성전과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 한 것은 세계적인 대표의 사람의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종들이 통일될 것을 뜻한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 지도자들의 영계혼란과 진리말씀에 혼선을 바로 잡는 것은 다시 예언자가 나오므로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대표적인 사람을 먼저 세우고야 역사하는 것이니 할례언약에 아브라함, 율법과 계명에 모세, 부활을 증거 하는 일에 열두 사도, 예언을 다시 예언하는 일에 두 증인 이렇게 되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이 다 이루어지므로 지상평화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오바다에서 한 여인의 태에서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 싸운 것 같이 한 교회에서 에서적인 사명자와 야곱적인 사명자가 진리의 싸움을 할 것을 사66:5~6에 예언했습니다. 가정 시험이 주님과 같이 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와 거짓 선지자 850명과 싸운 것같이 진리의 싸움인 것입니다.

# 배에서 쓰게 될 때에 명령을 받는 일 (10:10-11)

이것은 대표적인 사도요한이 받아먹고 쓴 것을 체험한 묵시는 말세에 대표적인 사람이 될 일을 보여준 것입니다. 배에서 쓰다는 것은 쓴 고통이 내부에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표의 사람에게 이런 내부적인 쓴 고통을 주는 것은 그 종으로 하여금 좀 더 겸손하고 강한 새 힘을 받게 하는 모략적인 방법입니다.

내부적인 쓴 고통이 올 적에 세계적인 진출을 가져 온다 것입니다. 예수도 12제자 안에 내부적인 사람으로 말미암아 쓴 것을 맛보았고 말세의 종도 그같은 쓴 고통을 지나서야 큰 사명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예언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국제 정세가 예언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는 살 수 없을 때가 닥쳐올 때에 홀연히 되어 질 일을 말한 것입니다. 가정 내의 시련과 교회 내의 영계 싸움과 시련을 뜻한 것입니다.

 

@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아 그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훤화하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66:5~6)

@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1:10)

@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10:36)

@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7:3~5)

& 선지서를 전하는 말세 증인(10:5~11).

사도 요한은 묵시를 볼 때 사자같이 부르짖는 광경에 큰 소리로 외치기를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고 우렁찬 음성을 듣게 되었는데 이것은 천사가 전한다는 것을 본 것은 아니고 말세의 사명자가 이와 같이 외쳐야 할 광경을 보여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한 일이 선지서와 같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목적으로 말했다면 말세증인은 하나님의 심판의 비밀인 선지서와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이것은 세상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을 목적한 해석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강론인 편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았다면 완전계시인 계시록을 통하여 심판기에 될 일을 분명히 알되 선지서를 바로 알게 됩니다. 세밀히 말하면 바울이 이사야서를 든 것은 그리스도 한 분만을 목적하여 들었고, 말세증인이 선지서를 드는 것은 심판기에 남은 종과 남은 백성들에게 세상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데는 어떻게 된다는 사실을 강론하여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가 세상에 와서 행한 일을 밝히 증거 하기 위한 목적이요, 말세증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으로서 당할 환란과 또 환란 가운데 받을 보호와 환란 중에 역사하는 역사와 거짓선지자의 미혹을 바로 알려주어서 미혹 받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죽음을 맛보지 않고 안식에 들어갈 백성들을 살길로 인도하자는 목적입니다. 편지서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고 계시록은 예언을 지켜야만 구원받는다고 했으니 이것은 합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시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증거 할 때 예언을 지켜야 한다고 했어도 탈선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일만 바로 증거 했기 때문에 탈선된 교훈은 조금도 강론한 일이 없습니다.

말세증인은 심판 날에 재앙을 받지 않도록 하는 사명이 있으니 이 예언의 말씀을 증거 해야만 탈선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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