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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변론 증거 20. 6장(3). 순교자의 호소.(계6:9~17)
07/10/2019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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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변론 증거 20. 6(3). 순교자의 호소.(6:9~17)

 

# 순교자 호소, 순교자 동무, 신원, 흰 두루마기, 수가 차는 일 #

 

* 6:9~11.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 강해)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절개와 자기가 받은 증거가 있는 믿음으로 승리한 순교자들입니다.

호소하였다는 것은 극도로 성도들이 곤란한 사정을 당하는 형편임을 보임입니다.

다섯 째 인을 떼실 때에 모든 순교자의 영들이 심판을 독촉합니다. 이것은 이날까지 억울한 성도들의 피 값을 갚아 줄 심판이 가까웠다는 것인데 주님께서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준다는 것은 그 영들에게 신부자격(왕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잠시 동안만 기다려서 순교자의 뒤를 따를 자들의 수가 차기를 기다리라는 것은 종말의 역사를 뜻한 것이니 심판의 다림줄을 쥐고 청황색 말의 세력과 싸워야 할 용사들이 그 수가 차는 일입니다. 여기에 주님께서 죽임을 받으라고 말한 것은 순교적인 생활을 가르친 것입니다. 누구든지 종말에 순교적인 생활이 없이 진리를 바로 증거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순교자 동무로 인정받는 단체 나와야 하는데 동방역사의 시발점을 이룰 하나님이 붙드는 단체, 신으로 되는 단체, 예수를 위해 죽겠다하는 해산의 수고를 각자가 다하는 단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상적으로 정치적으로 서로 합할 수 없는 현실을 당한 성도들은 정신을 차려 기도할 때입니다. 1:12~13에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함과 같이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위하여 악인을 방관하십니다. 인간들은 때를 모르고 하나님을 만홀히 알고 악을 따르고 있습니다. 흰 두루마기는 신부의 자격을 인정하는 것인데 계19:8에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하였습니다. 죽임을 받아 수가 차는 것은 144천 명의 수가 차는 일입니다. 죽임을 받은 것은 갈5:24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하였으며 계7:3에 이마에 인치기 까지나 계12:11에 어린 양의 피와 말씀 증거를 인하여 이기었다는 말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17:14에 부르심을 얻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긴다 한 것입니다. 잠시 동안 쉬라는 것은 임박하였다는 것인데 배신 배도자들의 정권이 높아가는 것은 환란이 가까운 증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을 맞기 위한 쓴 것 통과한 종들이 권세 받고 나가 증거, 순교자 동무로 인정받은 사람이 아니고는 촛대교회 강단에 못섭니다. 순교자 호소로 내려온 새 힘으로 옳은 종이 되고 세계를 지도하는 나라가 되고 우리나라를 진정으로 해방시키는 일이 됩니다. 권세 새 힘으로 무장된 인격으로 공산당을 치게 되는데 하늘 문을 여시고 내려 보낼 것입니다.

 

-. 순교자의 호소; 왜 호소하느냐?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사랑하는 종들을 순교하도록 한 것도 비밀이 있고 끝 날에 수를 채우기를 기다리는 비밀도 있습니다.

인간이 볼 때는 사랑하는 종들이 억울하게 순교 당한 일이 슬픔이 아닐 수 없으나 순교는 사랑하는 종에게 주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 발자취를 따르는 형제가 되고 동무가 되는 것이 영광이요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날까지 모든 선지와 사도와 성도들은 교회를 개척하여 세우기 위하여 어느 국가 민족 할 것 없이 피를 흘리지 않고는 참된 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방 신의 종교가 가득하고 이방적인 풍속에 젖어 있고 이방의 정권이 다스리고 있는 그 나라에 전도를 개척할 때 이방적인 종교나 풍속이나 정치에 대한 일을 대항하는 진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세상을 이기는 것이 신앙이라고 요1 5:4에 말했는데 신앙이란 타협이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수많은 종들이 피를 흘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기가 오는 말기에 교회가 극도로 부패해서 타협과 세속으로 흐르는 동시에 참된 종들의 신앙 사상과는 거리가 먼 개포도 같은 자리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피 값을 갚아 주는 역사가 일어나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 수가 차는 일;

피 값을 갚아줄 책임은 주님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을 바로 전하기 위해서 흘린 피니 그 피를 무효로 돌린다는 것은 공의가 아닙니다. 만일 금일의 타협적인 신앙 노선을 그대로 둔다면 그들의 피는 억울한 호소를 아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교계는 백마에서 시작된 교회가 백마적인 사상에서 청황색 말의 사상으로 변해지는 때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심판이 나리는 때의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잠시만 기다리라는 뜻으로 순교자에게 흰 옷을 준 것은 내가 너희를 신부의 자격으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앞서간 선지들의 피를 인정하신다면 그 피의 발자취를 따르는 형제와 동무되는 종들의 수가 차기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말세의 심판권을 새로 받고 나갈 종들의 수를 채우는 기간은 잠깐 동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죽음을 당한다는 것은 말세의 종들도 자기 사명을 지켜 끝까지 나가는 자는 순교의 반열에 드는 산 순교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처럼 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주님이 썩지 않고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함 같이 말세의 남은 종들도 순교의 생활에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수라는 것은 십사만 사천 명의 수가 찬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직까지 심판의 역사가 나리지 않는 것은 그 수가 차기를 기다리는 잠시라는 기간입니다. 이제 시련기를 거쳐서 환란기에 남은 종은 인간성, 죄악성 자체를 죽이고 나가는 순교적인 생활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순교자의 호소의 원한이 이루어지는 강권 역사는 말세의 수가 차는 역사로 종말을 짓는 것이니 잠시 동안에 수가 차는 일은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강권 발동의 강권역사가 내리기 때문입니다(7:3,11:3). 다시 말하면 눅14:23에 나가서 강권하여 데려다가 혼인 석을 채우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종말의 수는 자기의 기도가 부족해도 순교자의 원한이 이루어지는 강권 역사에 끌려서 사명자가 되는 일도 있고 하루아침에 자기 인간성이 죽는 강권 역사도 있을 것입니다(3:9).

하나님은 무소불능하신 신이신 동시에 사랑의 신이시니 자기의 예정한 수는 어떻게 하든지 채우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가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14:23).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은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죄하리라.(3:9).

 

-. 수가 차기를 기다리는 주님의 심정;

일찍이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홀로 세계를 통치할 수 없으므로 만국을 통치할 자들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시면서 기도하시는 주님의 심정은 무엇이냐?

참된 제자가 생기기를 원하시는 심정(16:21~28) 주님께서는 무한한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계시지만 목숨을 아끼는 자에게는 줄 수가 없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에게만 주시되 부족이 있다하여도 대언기도 하시면서 승리하도록 역사를 하십니다. 인간이 볼 때에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하여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합당한 자로 보시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가진 자를 기뻐하시는 심정(18:35,2:4~5) 누구든지 예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가 되려면 중심으로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불타야 하며 중심으로 형제의 죄를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참고 기다리는 심정

첫째: 사랑하는 제자들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기도하는 심정.

둘째: 사랑하는 자들이 실수가 있다하여도 참고 용서하시는 심정.

셋째: 왕권의 수가 차기를 기다리는 심정.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종들을 말씀대로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보기 위하여 마귀의 세력을 허락해서 괴롭힐 때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심정을 가지셨습니다.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심정이 없다면 왕권 반열에 들 자는 이 세상에서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일이 있으므로 완전한 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주님과 같이 참고 기다리는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30:18). 주님께서는 심판기가 임박할 때에 잠깐이라는 기간을 두고 택한 종들을 극도로 까불어 보시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순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순교자의 반열에 드는 자라야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11:9~12).

@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26:19).

@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7:22).

 

# 잠시 동안 쉬라는데 대하여 (6:11)

 

이것은 순교자의 영들이 안타까워 호소할 때에 잠깐 동안만 조용히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 잠깐이라는 것은 때가 됐다는 뜻이니 잠시라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다는 뜻이 내포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강한 발동을 시키겠다는 뜻이 내포된 것입니다.

2)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다림줄을 띄우는 순교자의 동무가 나타날 때부터 마지막 경고니 수에 들지 못한 자는 다시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이때는 잠시라는 생각을 가지고 롯의 처와 같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잠시라는 것을 가지고 참으라는 것입니다. 이때에 마음을 태만히 먹으면 다 떨어지고 만다는 것이니 순교적인 각오를 가지고 돌진의 용사가 되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 6:12~17절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는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 강해)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은 큰 변사를 가르침인데 사24:16이하에 궤휼자가 일으키는 환란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원한을 풀어 주는 진노의 날은 큰 지진 같은 변사가 일어나고 해가 총담 같이 검게 되는 일은 캄캄한 흑암의 시대가 온다는 것인데 달이 핏빛같이 되는 것은 도저히 이 땅에 빛을 받아서 비치는 달과 같은 성도의 역할이 없게 되며 별들이 떨어지는 것은 옳은 지도자가 권리를 박탈당하는 일입니다. 즉 증인권세 역사가 시작되면 모든 종들의 자격이 소용없는 것입니다.

해가 빛을 잃었다는 것은 어두움의 권세가 성하다는 뜻입니다. 14:5~6에 그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시대가 전환되는 때입니다.

수정통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달이 피 빛 같다는 것은 악화를 말함입니다. 7:2에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없고 피를 흘리려고 매복한다 하였습니다. 별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정의의 지도자가 나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3:9에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은혜시대의 십자가의 법에서 환란시대의 예언의 법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마치 마가의 다락방에서 은혜시대 교회가 시작되고 유대교는 마귀의 단체가 되듯이 말입니다. 십자가상에서 주님이 돌아가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찧어지는 것은 시대가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시대에서 은혜시대로 넘어간 것입니다.

하늘이 종이 축같이 말려들어가는 것은 은혜시대가 끝이 난다는 것인데 이 땅에 은혜로운 일은 다 걷어 가고 진노가 오는 날인데 각 산과 섬이 제자리를 떠난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계급이 없어지는 혼돈시기가(24:1 이하에 온 땅이 공하하고 뒤집어엎어 일반이 된다함) 오고 보니 인간의 정권을 잡은 자들이나 경제의 세력을 잡은 자나 강한 자나 약한 자나 다 공포 속에서 떨면서 어찌할 줄을 모르는 진노의 날 입니다. 64:1에 생각밖에 두려운 일이라 하였고 사19:5~10에 다 마음에 근심한다 하였습니다. 어린 양의 진노를 가리우라 하는 것은 수치와 공포를 당하고 후회 막심한 자리에서 도저히 그 날에 설 수 없이 다 망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2:10에 바위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하였습니다.

누가 능히 서리요함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11에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다하였습니다. 정치부패, 종교부패, 인심악화가 되어 노아 홍수 심판 때보다 더 진노할 수밖에 없는 때를 만나 세상의 되는 일을 볼 때에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냥 둘 수 없는 세상입니다. 이제 좀 더 영계가 올라가고 좀 더 거룩하고 죄과를 소멸 받아 좀 더 신과 같은 사람이 되기 전에는 할 수 없고 이제는 모세 같이 역사하기 전엔 할 수 없고 엘리야 같이 되기 전에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첫째 화(5개월), 둘째 화, 셋째 화, 3차 대전, 후 삼년 반, 대접재앙(30), 아마겟돈(45)까지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광경입니다. 지금 각성 받아 신앙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나라는 심판의 환란이 임박한데 환란이 오면 세화가 한 번에 미치게 됩니다.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환란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 6장을 보여준 목적은 진노의 날이 임박한 때를 알려준 경고 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진노의 날은 4대 병마가 대립되다가 청황색 말의 세력(용공 협상)이 강해지는 날이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나라는 협상시대가 끝나가는 시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문재인 정권이 청황색 말의 용공 협상 시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입니다.

 

@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9:16)

@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12:3) ; 십사만 사천 명의 인 맞은 종들이며 세세왕권의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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