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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변론 증거 9. 2장. 에베소 교회; 일곱별, 일곱 금촛대, 처음 사랑과 촛대 문제. (계2:1~7)
05/01/201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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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변론 증거 9. 2. 에베소 교회; 일곱별, 일곱 금촛대, 처음 사랑과 촛대 문제. (2:1~7)

 

주님께서 촛대교회 사자에게 보낸 편지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하나님의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가르쳤습니다. 즉 재림의 주를 맞이할 촛대교회의 신앙 표준으로서 책망 받을 일, 칭찬 받을 일을 가르친 것입니다.

 

2. 에베소 교회 ; 처음 사랑과 촛대 문제.(2:1~7)

 

*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처음 사랑과 촛대문제#

 

* 2:1~2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 가 드러낸 것과

* 강해) 일곱 교회의 주님의 모습은 심판주의 모습으로 일곱별을 붙잡은 것은 촛대교회의 종은 주님의 손에 붙들린 종이라는 것이며 인 맞은 십사만 사천 명의 변화성도의 왕권 받은 종들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고 궁창의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는 세세왕권을 받는 것입니다. 일곱 금 촛대는 종말에 잠든 영혼을 깨우치는 슥4:1~2의 완전준비 된 신령한 교회로 복구된 말세 사명자를 일으켜 역사할 순금등대 제단의 촛대교회입니다.

서아시아의 모교회가 될 만한 교회로서 수고와 인내와 철저한 치리를 칭찬하시고 악한 자를 용납지 않았지 거짓 된 자 드러냈지 정통 교회라는 것입니다. 인 맞지 못한 종은 5개월 환란에 괴로움을 당하고 후 삼년 반 환란에 빠지게 됩니다.

 

@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1:12)

@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1:16)

@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12:3)

@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6:13)

@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7:3~4)

@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9:4~6)

@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4:1~3)

 

* 2:3~5절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강해) 열심 있는 교권 정통의 큰 모교회지만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시고 이것이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 없는 조건이 되며 사랑의 본질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며 촛대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촛대를 옮기는 것은 사명이 옮겨지는 것입니다(1:5,11).

3장의 이스라엘의 부패와 사59장의 심판기의 최고의 악(교권 부패)과 최고의 의(새로운 종)가 이루어지는 강권역사의 새로운 종의 역사입니다. 율법시대의 바리새 교권에서 마가의 다락방에 성신강림으로 은혜교회가 되듯이 말입니다.

-. 진리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진리 때문에 사랑하고 진리 때문에 교제가 되어야 합니다(21~3). 예언의 말씀을 떠난 사랑도 안 되며, 예언의 말씀을 가감해도 재앙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사랑으로는 촛대교회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겸손한 사랑으로 하늘 본부에서 행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겸손이 없는 사랑은 촛대교회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은 하나님께로 온 사랑이니 변하면 개포도라는 것이며 처음사랑보다도 좀더 강권으로 사랑을 베풀라는 것이 기독교 종말의 역사입니다.(14:23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 사랑의 본질이 무엇이냐?

살려보려는 불타는 마음의 십자가의 사랑 그대로입니다.

진리의 진실한 사랑이니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니 외식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참는 사랑이니 아무리 처음에 시작을 바로 했다 하여도 끝까지 난관을 돌파하고 참는 것이 없는 사랑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촛대교회는 사랑의 본질을 잃지 않아야만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촛대교회는 사랑의 불이 붙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 촛대를 옮기는 문제

이 문제는 촛대교회가 나오는 모 교회와 관련이 있으며 말1,2장처럼 제단과 제사장이 부패하고 불법이 성하여 사랑이 식어지므로 율법의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구원의 사랑이 이방인에게 옮긴 것처럼 말세복음을 받았지만 사랑의 불길의 성신 충만함을 받지 못한 부패한 교권인(3, 59) 자칭 유대인 교권 세력에게 예언의 말씀대로 말씀(다림줄) 때문에 쫓겨남을(66:5) 당하여 순금등대(4:1~2) 촛대 교회를 이루게 되고 말3:1~4과 같이 시련과 연단을 통하여 의로운 제단과 의로운 제사, 의로운 제물을 드리는 역사로 진리의 사랑으로 순금등대 제단을 이루어 촛대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순금등대란 바벨론화 되고 속화되고 부패한 자리에서 새로이 세워지는 제단(4:2)을 의미하는 것이며 있던 교회가 새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권과의 영계싸움입니다.(66:5~6)

 

@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아 그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훤화하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66:5~7)

@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59:16)

@ 너희는 목도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 하리라(1:5).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1:11).

 

-. 이는 사9:1~2절에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는 역사로 율법시대에서 마가의 다락방으로 성신이 임하므로 은혜교회가 생겨났고(육적 이스라엘에서 영적 이스라엘), 60:1~3절에서 어두움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는 흑암과 계9:1~2 해와 공기가 어두워지는 흑암에서 계12:1절의 큰 이적으로 해를 입은 여자의 기적과 이적과 같은 역사로 장차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남자아이를 낳아(66:7, 12:5) 은혜시대에서 심판기의 환란시대의 촛대교회가 나타나게 됨으로 예언이 성취 되는 것입니다.

-. 옮기는 것은 쫓겨난 자로 강국을 이루는 예정 속에서 사66:5~6, 56:6~8, 59:14~18, 4:6~13, 3:18~20의 말씀에 떠는 자들이 부패된 교권세력에서 쫓겨나고 심판이 시작되는 말씀이 응하는 것입니다(11:12). 4:16~50절에 보면 주님께서 회당에서 사61:1,2절을 읽으시고 그 말씀이 오늘 내게 응한다 할 때에 쫓아냄을 당하셨으며, 교권 세력에게 바알세불이라는 왕 마귀의 비방을 들으셨고, 요셉도 왕 되는 꿈 이야기를 할 때 미워하고 결국은 쫓아냄을 당하였고, 야곱도 장자의 명분을 얻으니 어쩔 수 없이 쫓겨남을 당하였고, 모세도 동족을 위하다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쫓겨나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냈으며,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아 왕으로 인정되니 7년 동안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으며, 사도 요한(보아너게; 우뢰의 아들)도 로마 박해에도 참게 되고 해를 주지 못하게 되니 쫓겨나 밧모 섬으로 가게 되어 계시록을 쓰는 영광을 받았고, 이뇌자(우뢰의 아들; 보아너게) 목사님도 사59:21절이 신이 입에 임했다하니 미워하고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고 왕 마귀라는 비방을 들으신 것입니다. 그 사명의 계대자로 순의 종도 슥6:12절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의 순의 응답(2001.9.15~16.)을 받은 후 서책을 많이 본다는 비방과 가정 제단에 몇몇 성도가 참여 했다는 비방으로 격동 받은 황충이의 세력에게 쫓겨남을(2002.11.24) 당하고 왕 마귀라는 비방을 수없이 듣게 되었는데 그것이 다 계통적인 역사인 것입니다.

예언은 오바댜 성경처럼 한 어머니 리브가의 태에서 난 에서와 야곱 중에 사랑을 받고 왕국을 이룰 야곱이 쫓겨나는 신세가 된 것처럼 한 교회 안에서 에서적인 사명자와 와 야곱적인 사명자가 나올 것을 예언하시고 에서적인 교권 세력이 야곱적인 다윗왕국을 이룰 순의 종의 무리를 쫓아내 말씀이 응한 것입니다. 주님도 쫓겨남(4)

 

@ 다리오 왕 이년 십일월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니라.(1:7)

 

# 쫓겨난 자로 강국을 이루는 역사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을 처음에는 쫓겨나게 하시고 다음에는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 과거의 역사요 현재의 역사요 미래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어찌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쫓겨남을 당하게 하느냐?

택한 자의 진실성을 알아보자는 목적입니다.

당신의 능력을 세상이 알도록 하자는 목적입니다.

영광을 받기 위한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 영광을 받으시는 일은 쫓겨남을 받은 자가 원수를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악의 세력을 강하게 해서 당신의 사람을 대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원수의 세력을 이길 수 없으므로 쫓겨나게 되지만 끝까지 싸워 나갈 때에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함께 하시므로 완전한 강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쫓겨난 자와 같이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 이 말씀과 변론들이 응하는 것이 슥6:10에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었다는 말씀이 2002.11.24일에 응하여 말씀 무장이 시작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마치 마가의 다락방에 성신이 임하므로 은혜 시대 교회가 시작된 것과 같이 권리행사가 임하여 촛대교회 역사를 시작할 곳으로 예언된 장소가 요시아의 집으로 스바냐는 숨긴다는 뜻으로 은밀히 진행되는데 요시아는 개혁시키고 고친다는 사명으로 모든 부패한 기독교의 형식 제도 행정을 개혁시키고 고쳐서 신령한 단체로 새로운 제단과 교회가 일어날 것을 뜻했습니다.

헬렘(타파)과 도비야(선하다)와 여다야(여호와의 찬송)와 헨(은혜)은 슥1:20에 네 공장(왕국건설 사명자, 목수, 기술자)으로 사명결합을 이루는 선구적인 종 4명으로 모든 것을 타파하고 나갈 때 일이 선하게 되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은 은혜로 되는 것이니 감사할 뿐이라는 뜻입니다.

 

# 처음 사랑을 버린 일에 대해 (2:4)

기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종교가 아니요 하나님이 인간을 불쌍히 보시고 죄에서 구원하고 환란에서 구원코자 하는 목적이니 모든 것을 다 잘했다 하더라도 남을 구원해 보려는 열심히 식어지면 하나님은 역사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고 남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날마다 사랑을 받는 양심에서 움직이는 회개와 활동이 있어야만 됩니다.

 

* 2:6~7.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먹게 하리라.

* 강해) 니골라당은 사도의 교훈을 반대하는 것인데 이것을 미워한 것은 잘 한일이라는 것으로 주님이 미워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적인 순교사상의 살리려는 진리 사랑을 본 받아야 합니다. 미워 할 사람은 미워해야 참사랑이며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을 미워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음녀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목적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까지 역사하는 것이니 끝까지 싸워 승리하는 교회가 되어야만 재림의 주를 맞이하고 몸이 살아서 회복된 에덴동산인 새 시대의 생명나무 과실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궁세계에도 생명나무의 생명과가 있지만 여기서는 지상 평화 왕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바로 섰다하여도 종말에 허락을 받고 나오는 마귀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면 진노의 날에 남은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귀참소를 이기는 것은 피와 말씀증거인데 계12장의 비밀입니다.

 

*. 처음 사랑과 촛대 문제(2:1-7).

인간은 사랑이란 것을 원하고 또는 사랑을 남에게 주고 싶어 하는 것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덮어놓고 사랑을 받고 덮어놓고 준다는 것으로써 촛대교회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파가 되는 처음 사랑을 잃어 버렸다면 오메가인 촛대교회를 이룰 수는 전혀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시초가 인간에게서 온 것이 아니고 완전한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처음 열매가 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이 인간이 처음으로 맛보는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가지고 온 실천의 사랑은 인간 도덕, 수양, 어떠한 교제적인 인간의 사랑을 초월한 처음 되는 사랑의 열매가 이루어진 것이 십자가의 피라는 것입니다.

이제 처음 사랑과 촛대 역사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완전한 사랑으로 섰으니 그것으로 끝을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떠한 교회가 완전한 사랑의 본질인 그 정신, 사랑, 중심을 잃었다면 이것은 참포도를 심었지마는 맛이 변한 들포도가 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인생의 완전이라는 것은 완전한 사랑을 받은 데서부터 싹이 튼 것이니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이방에 전파된 것도 완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그대로 남에게 주기 위해서 피를 쏟은 것이 순교적인 선교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3, -4:11에 온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목숨을 바쳐서 남을 살리겠다는 것이 온전한 사랑의 불길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에 이것이 없다면 기독교는 세계를 정복할 수는 도저히 없었을 것입니다.

 

1. 진리의 사랑으로 시작되었으니 진리의 사랑으로 마쳐야 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신자가 사랑을 주장해도 진리의 사랑이 아니라면 이것은 마귀를 초대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 때문에 사랑하고 진리 때문에 서로 교제가 된다는 것은 기독교 처음 사랑의 본질이 되는 것입니다(요한1-3). 만일 기독교가 종말의 예언의 말씀을 떠나서 사랑으로써 뭉쳐지자는 통합 운동이 된다면 예언의 말씀을 가해도 감해도 재앙이라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사람이 자동적으로 될 것이니 이러한 사랑을 가진 기독교는 촛대 역사를 일으킬 수가 없을 것입니다.

 

2. 기독교 사랑은 겸손한 사랑입니다.

만일 남이 나를 유익하게 한다면 사랑을 하고 유익이 안 되면 배척을 한다는 것은 거짓선지의 사랑일 것입니다(3:5-6). 하나님의 아들이 말구유에 탄생을 했다는 것이 기독교 사랑의 시발점입니다. 겸손한 자리에서부터 걸어간 일이 사랑을 가지고 온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겸손한 출생, 겸손한 노동, 겸손한 전도, 겸손한 죽음, 겸손한 부활, 겸손한 승천의 주로서 지금도 죄인을 향하여 울면서 약한 자에게 능력을, 어리석은 자에게 지혜를, 범죄한 자에게 속죄의 은총을 주기 위해서 겸손히 인간을 대해 주고 계신 사랑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효과를 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겸손한 사랑이 하늘 본부에서 행하는 역사라면 겸손이 없는 사랑은 촛대 역사를 일으킬 수 없을 것입니다.

 

*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는 것은 세계 인류에게 전한 표어가 됩니다. 아무리 서 아시아의 모교회지만 촛대를 거두시겠다고 말씀한 것은 전 세계 기독교의 지침이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사명적인 모교회지만 처음 사랑을 잃고 보니 아무런 사명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완전한 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종말의 사랑은 좀더 강권적인 사랑이 있어서 소경 귀머거리 절뚝발이 같은 영계를 가진 자라도 끌어다가 내 집을 채우리라는 것이 기독교 종말적인 오메가의 역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보다는 좀 더 강권으로 사랑을 베풀려는 것이 기독교 종말의 역사이니 처음 사랑을 잃었다면 종말의 역사와는 하등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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