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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변론 15. 3장. 라오디게아 교회(계3:14~22)
12/06/20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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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변론 증거 15. 3. 라오디게아 교회(3:14~22)

 

# 주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요구하는 일, 주고 싶은 사랑으로 징계하심 #

 

* 아무리 모든 일이 부족함이 없이 부요 하다 해도 영적 활동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고 남은 교회가 될 수 없으며 재림의 주를 영접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3:14~15.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네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 강해) 주님은 충성되고 참된 증인으로 만왕의 왕이 되셨고 창조주가 되십니다. 이 교회는 가장 화려한 교회이니 인간의 육안으로 볼 때에 부족함이 없는 교회이나 영적으로 아무런 역사가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역사도 없고 마귀시험도 없고 핍박도 없는 교회, 열심이 없고 아무 영의 역사도 없는 교회입니다.

 

@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8:31~32).

 

# 차지도 덥지도 않는데 대해 (3:15)

이것은 영계 운동을 아무런 관심조차 없고 잠자는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아무런 영적 활동이 없는 뜻입니다. 세상 향락에 도취되어 말은 교회 같으나 세상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에 떨어진 것을 말한 것입니다.

 

*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 강해) 교회가 신령한 역사가 없다면 자동적으로 주님의 입에서 토함을 받을 것입니다. 아무 맛이 없는 음식같이 아무것도 받는 것이 없고 성신의 역사가 없으니 환란 날에 남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이 펄 펄 붙고 내려오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소용이 없는 교회입니다. 소금이 짠맛이 없으면 소용이 없어 버리는 것 같이 성도가 예수의 맛과 향기가 없다면 무엇에 쓰겠습니까? 포도나무가 열매의 즙이 맛이 없다면 아무 쓸모없는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성신의 역사입니다.

 

@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12:29).

 

*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 강해) 물질향락에 도취가 되어 영적에 대한 아무런 관심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유형적인 교회는 발전 했지만 영적은 벌거벗고 눈멀고 가난하게 된 소경이고 거지입니다.

 

# 나는 부자라 하는데 대해 (3:17)

인간의 육안으로 볼 때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계는 다 황폐된 교회를 가르쳤습니다.

 

*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것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강해) 주님은 주고 싶은 사랑으로 그들에게 권하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사랑이란 것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것을 가지신 주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완전한 것을 주고 싶어 하시되 죄를 용납할 수는 없으므로 죄를 없이 하기 위하여 징계를 하시고 회개할 때에 죄를 없이 하는 동시에 완전한 것을 주시는 것을 주님의 완전한 사랑과 징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사는 생활이 있어야 됩니다. 살려면 내 것이 희생이 있어야 되는데 사는 것이 없다면 은혜를 못 받지요. 더러운 것 주고 깨끗한 것 사고, 어리석은 것 주고 지혜를 사고, 약한 것 주고 능력을 사고, 썩을 것 주고 영원한 것 사고, 땅의 것을 주고 하늘의 것을 사고, 불탈 것을 주고 불타지 않을 것을 산다는 것인데 그러려면 일단 회개가 있어야 되고 희생과 수고가 있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섬기는 생활을 해야 열매가 있게 됩니다. 신앙에 방해가 되는 것을 버리는 희생이 필요하고 사도 바울처럼 과거에 가졌던 명예와 권세를 분토 같이 여긴다 그 말입니다.

-. 주고 싶은 사랑으로 권함 소위 하나님의 교회에 사자라 하면서 가난하고 헐벗고 캄캄한 사람이 되었어도 주님은 양떼를 불쌍히 보는 사랑 속에서 그 종에게 부요한 것을 주고 싶어 하시며 흰옷을 주고자 하는 동시에 그 눈도 밝게 해서 올바른 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권할 때에 완전한 것을 사라고 한 것은

완전치 못한 것을 주님께 맡기고 완전한 것을 받아 가지라는 것입니다.

희생할 때에 주님께서 완전한 것을 준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아끼지 않고 순종할 때에 주님께서 완전한 것을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완전한 것을 받지 못하는 것은 희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였고 집이나 전토나 부모나 형제까지라도 다 버리고 따라 오는 자라야 된다는 것은 희생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유익이 많이 있다하여도 주님께서 내게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생각에서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자라야 주의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완전한 것은 성신의 불을 충만히 받아 변화성도의 인격을 갖추어 왕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 강해) 심지어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여 열심 있는 회개를 요구합니다. 택한 종은 말세종이 되고야 견디지 견딜 재간이 없어 촛대교회(변화성도 수도원)로 오고야 말 것입니다.

 

-. 주고 싶은 사랑으로 징계함; 주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주고자 할 때에 권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요, 권해도 순종치 않을 때에는 징계를 해서라도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징계라는 것은 주고자 한데서 오는 것이니 누구든지 징계를 받을 때에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열심을 내야만 합니다.

징계를 받고도 열심을 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인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고 싶은 사랑에 불타는 심정에서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인데 열심을 내는 자에게만 좋은 것, 은혜를 주신다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요구는 괴로운 일에 열심을 내는 자를 원하시는 것이며 징계가 올 때 열심을 내면 영적 향상이 되기 때문이며 징계를 받고 열심을 낼 때에 주님은 오히려 징계를 하시고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 열심을 내 달라는 것입니다 (19)

이것이 주고 싶은 주님의 사랑에 불타는 심정에서 안타까워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열심을 내는 자에게만 준다는 것이 은혜를 주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열심을 안 내는 게으른 자에게는 징계를 하는 것이요, 열심을 내야만 좋은 것을 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자가 열심이 없이 잠을 잔다면 그대로 은혜를 주시는 주님은 아닙니다. 열심이 나도록 때리는 것입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열심을 내고 괴로운 일을 당할 때는 열심이 없으니 주님의 요구는 괴로운 일에 열심을 내는 자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즉 징계가 올 때 열심을 내면 영적 향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식을 책망할 때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면 부모는 만족한 마음으로 더 기뻐할 것입니다.

 

@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라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자를 순종할지니라(6:9).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12:8).

 

#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는 것에 대해 (3:19)

하나님께서 아무리 세속에 빠졌다하더라도 중심 신앙 사상이 바로선 사람은 강권으로 징계하시어서 깨닫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 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강해) 주님은 문을 두드리는 안타까운 재촉을 할 때에 이러한 잠든 교회도 왕권을 주고 싶은 사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문을 열라.

 

-. 주고 싶은 사랑에서 문을 두드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것을 사랑하는 종에게 주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불타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을 믿고 마음의 문을 여는 자라면 얼마든지 만족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족이라는 것은 인간의 물질을 초월 한데서 있는 것이니 하늘의 것을 먹고 마시는 생활에 들어가므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신앙이라는 것은 직접으로 먹고 마시는 체험이 있음으로써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성신 충만함을 받고 하늘 영양을 받는 단계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 문을 열어 달라는 것임; 주님께서는 마음 문을 열고 있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은혜를 주는 것이로되 마음 문을 닫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정상적인 은혜를 계속 받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항상 간절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가리킨 것으로 항상 자기 부족을 깨닫는 심정에서 좀더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재촉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혹 마음을 닫고 기도를 아니 하여도 괴로움이 없다면 이 사람은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주님이 항상 마음을 재촉한다는 뜻을 가리킨 것입니다. 성령이 내게 함께하는 증거는 항상 듣고 마음을 열고 먹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듣고 먹는 자는 완전한 그리스도와 같은 지위를 소유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 향상의 큰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4:13).

 

* 3:21~2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강해) 보좌에 함께 앉기를 요구하심;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가 당신과 같이 보좌에 앉기를 재촉합니다. 이 보좌라는 것은 왕권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랑하는 종들을 남보다 더 징계를 하고 두드려서 재촉하는 것은 최대의 목적인 왕국의 보좌를 주겠다는 사랑의 요구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요구는 주님밖에 가진 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기는 자를 만들기 위해서 열심을 내라, 문을 열라, 함께 먹자 하시는 것입니다.

 

-. 주고 싶은 사랑으로 보좌에 함께 앉게 함;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가장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은 보좌에 앉아서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서 영광을 누리게 하겠다는 것이 역사를 나리는 한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싸워 이기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징계를 하시면서 지혜도 총명도 능력도 권세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주고 싶어 하시는 그 사랑을 믿고 항상 문을 열고 영접하는 것 밖에는 아무런 것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알아 순종하는 자라면 아무리 부족이 있다 하여도 완전한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무리 부패한 사람이라도 징계하시면서 완전한 것을 주어 영광의 자리를 주시겠다는 것을 가르친 말씀이니 우리는 그 사랑 속에서 먹고 마시므로 최고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인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든지 문만 열면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서 하늘의 것을 먹고 마실 수 있는 생활에서 구름타고 하늘로 올라가서 세세왕권을 받습니다.

 

@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12:6).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 주님께서 이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은 교파를 초월하여 주의 재림을 맞이할 교회로서 신앙 표준이 되며 신앙의 참된 정로는 무엇이냐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 주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요구하는 일(3:14-22)

주님은 역사하실 때 사랑하는 자에게 대하여 모든 일을 진행하시되 사랑의 법만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인 동시에 징계를 나리는 것은 특히 사랑하는 자에게 요구하는 바를 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요구 없이 덮어놓고 징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부모가 자식을 책망할 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없이 공연히 성이 나서 책망한다면 오히려 책망을 받는 자녀에게 큰 저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책망하고 징계할 때 무엇을 요구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있어서 자식을 책망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향하여 징계하시면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이 먼저 구하니까 준다는 것이 아니요 주님께서 먼저 사랑하는 자를 향하여 요구하는 바를 믿고 순종하는 것을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복음적 신앙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주고 싶은 사랑 속에 요구하는 심정을 만족하게 들어준다면 보좌에 앉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은 나의 요구를 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 주고 싶은 사랑과 징계(3:18-22).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오직 주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것을 가지신 주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완전한 것을 주고 싶어 하시되 죄를 용납할 수는 없으므로 죄를 없이하기 위하여 징계를 하시고 회개할 때에 죄를 없이하는 동시에 완전한 것을 주시는 것을 주님의 완전한 사랑과 징계라는 것입니다.

 

 

계시록 변론, 이사야 변론, 선지서 변론, 조직 신학, 새 노래

초판 2015.8.15.

재판 2015.9.24.

다시 예언자(순의 종). 이 새 순 선지자

사랑과 은혜와 구원의 방주

순금등대 촛대중앙교회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12:23)

보아너게 선지학교, 변화성도 수도원

말씀(증인)권세 부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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