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branch
Leesaesoon(newbranch)
기타 블로거

Blog Open 04.13.2016

전체     395782
오늘방문     132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636 명
  달력
 
이사야 변론 증거 49. 39장. 히스기야의 타협. 용공 협상.(사39:1~8)
02/14/2020 23:10
조회  125   |  추천   2   |  스크랩   0
IP 122.xx.xx.222

이사야 변론 증거 49. 39. 히스기야의 타협. 용공 협상.(39:1~8)

 

# 바베론 사신을 받아들임, 모든 보물을 보여줌, 이사야 책망, 바벨론에 옮기고 포로가 됨 #

 

본장은 아무리 기도로써 승리한 용사일지라도 경솔히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타협이 있을 때 이것은 실패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가르친 교훈이니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의 예물을 받고 너무 기분 좋은 흥분에 도취가 되어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지도 않고 거룩한 예루살렘 궁중의 소유를 더러운 바벨론 사상을 가진 자에게 보여주고 그를 거룩한 처소를 받아 들였다는 것은 큰 과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바벨론 사신이 본 모든 소유가 바벨론으로 옮겨지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와 같이 거룩한 예루살렘의 모든 소유가 심지어 성전에 있는 거룩한 기명까지 바벨론에 옮겨가고 예루살렘의 성전이 황폐가 됐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예언대로 왕손 중에 바벨론 포로가 되어 왕궁의 환관이 된 사실입니다.(다니엘과 세 친구).

이것은 말세에 주의 종들에게 주는 교훈이니 하나님의 종으로서 경만한 자가 되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소의 유익이 있더라도 악의 세력과 불의의 세력을 용납하고 타협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 왕하20:12~19.

 

* 39:1~8.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글과 예물을 보낸지라. 히스기야가 사자를 인하여 기뻐하여 그에게 궁중 보물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와 보물고에 있는 것을 다 보였으니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은 지라.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가로되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이사야가 가로되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보물은 보이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이른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또 가로되 나의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

 

* 강해) 북방이 무너지는 기도도 있었고 자기 몸에 병이 다 물러가고 병마가 물러가 몸이 건강해졌다 하더라도 타협을 했으니 큰 죄라는 것입니다.

바벨론 사신이 예물을 가지고 들어 올 때에 너무 반가워서 궁전에 있는 모든 보물을 사신들에게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 이사야의 입에서 말씀이 나오기를 어찌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와 하나님의 거룩한 모든 그 보화를 마귀 자식인 바벨론 사신에게 다 보여줬느냐? 그들이 본 것을 모두 바벨론에 가져가리라는 예언입니다. 물론 바벨론에게 예루살렘이 망했고 예언대도 됐는데 이 사실이 지금 우리에게 큰 교훈입니다. 공산당에서 나오는 성직자는 거짓 목자로 공산당에 충성하는 자들인데 그것을 다 받아드리는 것은 큰 죄입니다. 사상이 변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회개하여 하여야 받아드리는 것이 기독교 사랑이지 회개가 없는데 받아드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음녀입니다. 진리를 대적하고 수 없는 기독교인을 죽이고 박해한 마귀세력의 공산 사상을 회개치 아니하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 사상입니다. 요즈음 기독교가 사랑이라는 명목아래 너무 음녀 짓을 많이 합니다.

용서 받지 못할 죄악입니다. 죄를 회개하여 용서 받는 것이 사랑이지 죄를 용납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악한 일입니다. 히스기야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고 히스기야의 받았던 사명이 우리 사명인데 타협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철의 장막 속에서 신음하는 양떼를 불쌍히 여겨야지 공산당을 용납하는 것은 말이 안 되고 공산당을 쳐부수고 양떼를 구원한다는 사상이 바른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사상을 보시는데 진리의 말씀사상이 있어야 하고 애국 애족사상과 멸공 사상이 투철해야 합니다.

 

@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1:7).

@ 보라 그들의 용사가 밖에서 부르짖으며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며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치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사람을 생각지 아니하며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레바논은 부끄러워 마르고 사론은 사막과 같고 바산과 갈멜은 목엽을 떨어치는도다.(33:7~9)

 

 

 

 


이 블로그의 인기글

이사야 변론 증거 49. 39장. 히스기야의 타협. 용공 협상.(사39:1~8)